첫번째남자
건물주아들과 25년을 살고 있다. 물론 건물주아들은 내가 처음 만날 때 부르던 이름이다.
25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드라마처럼 내 뇌리를 스치며 펼쳐진다. 그 수많은 시간들 무던히 열심히 살아오신 시아버지는 10여 년을 병마와 싸우시다 가셨다.
문명의 혜택이라고는 받을 것이 없는 섬에서 나고 자란 우리 형제에게...
누군가가 인생을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면 지금의 내가 서있는 길이 아닌 또 다른 길에 서있을까?
내가 아는 시아버지는 평생을 열심히만 살아오신 그런 성실하신 분이셨다. 우리가 자라던 그 시절엔 그저 열심히 사는 게 교과서처럼 읽히던 때이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평생을 묵묵히 열심히만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다.
묵묵히 열심히만 사시다 떠나신 시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유산을 남기셨다. 단돈 천만 원, 백만 원도 아닌 그저 교훈만 남기시고 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아주 오랜만에 거의 모든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결혼을 할 당시 시댁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친척들은 건물주이자 부자로 불리었다. 우리는 얼마 후 건물을 팔게 되면서 그 부자대열에서 빠지게 되었다.
부자가 아닌 우리 가족은 부자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마치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랄까 뭐 그러했다.
그 덕에 힘겹게 지금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3대 가는 부자 없다"
이 말뜻은 집안 가문을 처음으로 일으켜 세운 사람은 성공하나, 그 성공을 보존하기란 그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금세 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기업들이 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곳만 해도 그렇다, 20년 전에 엄청난 매출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던 곳들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 시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몇몇 분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몸서 느끼며 배울 수 있었다.
그 몇몇 분들이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인생사 돌고 도는 세상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밤을 새워 할아버지를 보내드렸지만,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참 감사하다고 했다. 그토록 얘기하고픈 말들을 떠나시면서 들려주시고 가셨다.
손에 쥐어주신 것은 없다. 마음으로 전해주시고 가셨다.
아마도 나에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한 푼도 남기시지 않으시고 떠나신 시아버지를 원망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나에게 선물이었다. 아무리 엄마가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한들 아이들의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
어릴 적 배우지 못한 것을 지금도 나는 채우는 중이다. 얼마 전 만난 한분은 대학을 정상적인 수순을 밟으며 졸업을 하신 분이시다.
그러하기에 대학에 대한 미련이 없는 듯 얘기하셨다. 나를 아마도 이해 못 하실 듯하다.
세이노의 가르침에 있는 문구하나가 떠오르는 시점이었다.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주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인 나는 세이노의 가르침과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내가 배우지 못하고 받지 못한 것들을 보상이라도 받을 것처럼 말이다.
물론 정답은 없을 것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바르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도쏠비치는 진도여행길을 열어준 고마운 곳이다. 바닷가 해변의 바로 앞 절벽들을 마주해 진도의 어린이들은 그 누가 감히 그곳을 투자처로 생각을 했을까?
그렇다!
배워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시점이다.
그래서 배움은 필수요건이다. 배움의 종류는 다양하다. 꼭 학문적으로 대학이라는 곳일 필요는 없다. 개인마다 배움의 필요요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의 유산은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