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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 Feb 21. 2021

어느 겨울밤의 기억

가야 할 곳이 있다면 가게 된다, 깊은 밤을 헤매서라도

2002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겨울밤, 

나는 혼자 어두운 산길을 가고 있었다. 

산속으로 진입해들어가자 모든 불빛이 사라졌고, 나는 내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딱 그만큼만 볼 수 있었다. 조수석에 커다란 지도책을 펴놓은 채 차는 더듬더듬 나아갔다. 헤드라이트불빛이 비추는 딱 그만큼씩. 


이십대후반,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도무지 알 수 없던 시절, 

입사 2년차 조연출의 삶은 초라했고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단했다. 드라마 하나가 끝나면 다른 드라마로, 일은 끝이 없었고, 촬영현장에서 밤샘은 너무도 흔했다. 온갖 잡다한 일들을 정리해야 하는 조연출은 그중에서도 가장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드라마 촬영현장 속의 내가 너무 하찮다는 사실, 그 하찮음에 비해 노동강도는 극심한 것이 못내 괴로웠다.  


간절하게 자유가 그리웠다. 무엇을 향한 자유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주문처럼 시를 외웠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한때 내 전부였던 남자가 그로부터 2년전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건네준 시집 속의 시였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이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이라던 그 시. 그와 이별한 뒤에도 나의 이별은 끝나지 않았다. 나의 이별은 2년내내 진행중이었다.(그리고 그후로도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시집 앞에 적힌 그의 글씨를 볼때마다 그리움이 치밀었다. 신분상의 방패처럼 기능해주었던 대학 캠퍼스는 더 이상 없었다. 나는 명실상부한 '성인'이 되어 세상이라는 전쟁터의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었다. 

자세히 분석할 것도 없이, 그냥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일도 사랑도,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매일매일을 삶 속에서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렇게 흘러가다보면 어디에 도달할지 그곳이 과연 내가 원하던 바로 거기일지... 


그래서 토요일 밤까지 이어졌던 촬영을 마치고 산속에 있는 펜션으로 혼자 떠나기로 한 것이다. 월요일 출근시간 전까지는 여의도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전날 인터넷을 뒤져 펜션을 예약했다. 토요일 밤 아주 늦어서야 도착할 거라고 말해두었다. 밤 아홉시가 넘어서 끝난 촬영현장에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일요일... 내가 누릴 수 있는 온전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원했던 자유. 


지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펜션은 산 속 깊은 곳에 있었다. 아니면 늦은 밤, 운전에 서투른 길치인 내가 아주 많이 헤맸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어떤 불빛도 없는 좁은 산길을 아주 오랫동안 헤맸었다. 길을 잃어도 나 대신 운전을 해줄 사람은 없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불빛으로 내가 갈 길을 밝혀줄 사람은 없었다. 무서워하는 내 손을 잡아주며 달래줄 사람은 없었다. 나는 오직 내 힘으로 내가 목적한 곳으로 가야만 했다. 내 차가 비추는 헤드라이트에만 의지하면서 말이다. 이런 게 인생이구나. 생각했다. 삶은 혼자 가야 하는 길이라고.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고. 결국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하고, 결국 해낼 수도 못해낼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내 몫이라고. 


운전해가다가 길이 끊겨 돌아나오기를 몇번, 차를 세우고 펜션에 전화를 걸었다.  펜션의 주인아저씨는 내가 찾아오기 쉽게 '일부러 마당에다 불을 환하게 켜 놓았다'고 했다. 지금 어디냐고 묻는 아저씨에게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에. 초소 지났어요? 초소가 있어요? 올라오다보면 초소가 있어요. 그래요? 본 것도 같은데...  수수께기같은 문답을 한참 나누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왠지 안심이 되었다. 다시 어두운 산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아저씨가 나를 위해 환하게 밝혀두었다던 그 마당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밤 나 말고는 예약한 손님이 없었던 그 펜션의 마당은 넓었고 아저씨 말대로 켤 수 있는 불은 다 켜져있어서 밝았다. 환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오직 나만의 온전한 하루를 지낼 곳... 바로 여기였다. 


그때가 2002년 2월쯤이라고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그곳에 머무는 짧은 동안 방안에 있던 아주 작은 TV로 '겨울연가'를 봤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날밤의 모든 것들, 헤드라이트가 비추던 흙길과 펜션의 노란 불빛, 차에서 내리던 순간 뺨에 와 닿던 새벽의 찬공기가 바로 지금의 감각처럼 생생한 이유는, 여전히 내가 그날밤을 인생의 메타포로 간직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내가 걷던 길과 지금 걷고 있는 길은 많이 다른 것 같아도 본질적으로는 같다. 여전히 나는 홀로 걷고 있으니까. 불빛 한 점 없는 캄캄한 길, 어디에서 끊길지 모르는 길을 나의 헤드라이트에만 의지해 가고 있으니까. 

두렵고 외로운 것은 그대로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여기가 아니기만 하면 되는 어떤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 가고 싶은 곳이 있는 사람이다. 결국 나는 내가 가야 할 곳, 불이 따뜻하게 밝혀진 그곳에 도착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길을 잃어도, 길이 끊겨도, 잠시 멈춰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서 다시 운전대를 잡으면 된다는 것을.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는 법이니까. 지금 당장 노랗게 빛나는 마당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그곳에 가게 될 것이다. 헤드라이트 불빛만으로, 충분하다. 


인생에서는 그만큼 '목표'가 중요하다. 

철지난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듯한 말이지만 나는 요즘 '목표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목표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 인생이 더듬거리다가도, 휘청대다가도 방향을 잡는다. 그날밤의 기억처럼,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야 할 곳이 있다면, 언젠가는 나는 그곳에 도착하게 될 테니까. 헤매면서, 돌아나오면서, 멈춰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눈앞의 작은 길을 밝히면서, 결국은 그곳에 갈 수 있다. 그것은, 오래전 어느 겨울밤이 가르쳐준 분명한 진실이다. 

그러므로, 어디로 가고 싶은가.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가야 할 곳이 있다면, 어떻게든 길은 찾을 수 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나타나고 만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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