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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Z Jun 02. 2022

'자궁 심부 내막증'을 진단받았습니다 - 01

모양이 좋지 않으니 조직 검사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자궁내막에 7cm 종양이 있어요. 암인지 아닌지는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는데, 모양이 좋지 않아서 빨리 검사를 해봐야 좋을 것 같아요."

큰마음을 먹고 방문해야 하는 산부인과 의원에서 선생님이 설명해 준 내 자궁 상태 설명은 내 생각과는 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몇 번을 가더라도 초면 같은 산 부 인 과 의원

산부인과 의원을 방문한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 임에 분명하다.

큰 용기를 필요하게 만드는 삼박자 중 최고는 굴욕 의자 그다음은 오리주둥이, 그리고 남자 의사 선생님이면 출산의 경험이 있는 나 조차도 그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 힘들다.

사실 여러 가지 증상들이 몇 개월째 나를 괴롭혔지만, 그 큰 문턱을 넘을 정도는 아니어서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며 수개월을 흘러 보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적극적으로 병명을 찾고 나에게 정확한 진단을 내려 줄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빨리 이겨 낼 수 있었을 텐데... 역시 병은 키우는 게 아닌데...)

하지만 병원 진료를 미루고 미루다 몇 개월 째 지속되는 하혈 하는 듯 한 생리량과 내 생리주기 32일 중 생리하는 5일 빼고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급작스럽게 병원 진료를 감행하게 되었다.

원래 질염이 잦은지라 산부인과를 그나마 자주 가는 편이었는데, 원래 진료를 봐주시는 여자 선생님은 출산휴가로 자리를 비우셨고, 나머지 두 분의 여의사들은 대기가 너무 길어서 당일 진료는 힘들고, 예약하고 다음에 다시 방문하라고 접수 직원이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쇠뿔도 단숨에 빼라고 이미 빼든 칼자루는 다시 집어넣기 머쓱하니 무라도 썰려고 당일 진료가 되는 선생님을 여쭤 보았고, 빠른 진료가 가능한 대표원장님을 추천해 주었다.

대표원장님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TV에도 몇 번이나 산부인과 전문의로 나오신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여자 환자가  주(主)인 산부인과 의원에선 남자 선생님은 인기가 없는 게 분명하다. 긴 대기도 없이 거의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두어 명의 산모와 그녀들의 남편들이 그 선생님의 진료실을 들어갔다 나왔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오늘 무슨 증상으로 오셨어요?"라고 의사 선생님들의 첫 진료 멘트를 나에게 물으셨다.

"선생님, 몇 달째 생리양이 너무 많고요, 밤에 잠을 잘 때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자겠어서요."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왜 병원 가기 전엔 나의 증상들을 의사에게 다 나열하고 오겠다고 곱씹고 또 곱씹으며 방문하지만, 의사 앞에 앉으면 왜 점집 무당 앞에 앉은 듯 '너 어디 한번 맞춰봐라 용한지 안 용한지 내가 지켜봐 주마'의 심정이 되듯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초음파로 자궁을 한 번 보자고 하셨고, 친절한 간호사는 나에게 소독되어있는 비닐에 들어있는 월남치마를 하나 건네주며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하였다.

한눈에 봐도 촌스러운 보라색 월남치마는 아마도 피가 묻어도 크게 티가나지 않도록 선택된 색깔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월남치마를 휘날리며, 굴욕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간호사는 의사가 진료에 용의 하게 나의 자세를 고쳐주고, 의사를 불렀다.

나와 의사 사이에는 얇은 천 하나가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는 민망함을 없애려고 설치한 게 분명하였다. 그러니 나의 시선은 나의 상태를 보여줄 모니터에 고정되었다.

의사는 라텍스가 씌워진 초음파 기계를 나의 자궁경부에 집어넣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나의 시선이 고정된 모니터를 집중해 보았다.

내가 보아도 깨끗한 무언가와는 달랐다.

이리저리 초음파 기계의 위치를 바꾸며 삑삑 사진을 찍어대던 의사는 이윽고 웅얼거리며 말을 꺼냈다.

"자궁내막에 7cm 정도의 종양이 있어요. 암인지 아닌지는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는데, 모양이 좋지 않아서 빨리 조직검사를 해 봐야 좋을 것 같아요. 바로 진행할까요?"

뭔가 의사에게 친절을 바라진 않았지만 나의 마음의 준비가 어떻게 되든 간에, 밑도 끝도 없이 나에게는 핵폭탄 급인 이야기를 아주 남의 일처럼 투척해 주셨다.

"네, 바로 검사해주세요." 누가 이 상황에서 다음에 검사할게요 할 수 있을까?

조직을 떼 내는 거라 아플 거라고, 검사  출혈이 있을 거라고도 얘기해주셨다.

통증을 잘 참는 나인데, 진짜 좀 아팠다. 간호사는 소리 지르는 사람도 많은데 정말 잘 참으신다고 칭찬 아닌 칭찬도 해주셨다.

그리고 올해는 짝수 해라 짝수해에 태어난 나는, 나라에서 무료로 검사해주는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같이 마쳤다.

문자로 검사 결과가 발송될 것이며, 혹시라도 나의 종양에게 문제가 있으면 전화로 연락 준다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리야 엄마에게 전화 걸어줘.'라고 하고 싶었지만 걱정만 끼치는 딸이라 이번만은 결과 나올 때까지 말씀드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남편과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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