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교살이 중
봄방학을 목전에 둔 금요일, 원래 저학년 수업은 오후에 있지만, 4학년 테스트 일정으로 인해 이날은 1학년 수업이 오전으로 옮겨졌다. 오전에 만난 1학년 학생들은 평소보다 집중도가 좋아 수업 분위기가 역대 최고로 좋았다. 오후 시간대에는 아이들이 피곤해 집중도가 낮아지거나 산만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오전 수업이 그렇게 매끄럽게 진행돼가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모든 학년을 오전에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테지.
이날 미술 수업에서는 지난번에 만든 스크래치 보드 위에 각자가 그리고 싶은 동물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진행했다. 아이들이 스크래치 보드에 그림을 그리는 사각사각 소리가 교실 안을 채웠다. 두 번째 프로젝트인 ‘종이 퍼펫 만들기’ 준비를 위해 교실 앞쪽에 둔 재료를 가지러 갔다가 몸을 돌리는 순간, 두 아이가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리 없이, 작은 주먹들이 오가고 있었다. 어이없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을 황급히 떼어 놓고 난 후 보니, 다툼을 했던 한 아이의 얼굴에 빨간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포트 콜을 받고 교장선생님께서 교실로 오셨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드리자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셨다. 싸움의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다툼이 시작된 정황을 고려했을 때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뺨을 맞은 아이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는 이상, 이 싸움에는 분명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했다. 그리고 피해자는 손자국을 만든 아이가 아니라, 그 손자국을 빰에 받은 아이였다.
교장 선생님께 전해 듣기로, 때린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인정했고, 두 아이 모두 진정된 상태로 홈룸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하지만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학부모들에게 연락해야 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학교가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불미스럽게도 이런 일이 발생했음을 알리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도 전달해야 했다. 학부모에게 연락하는 것은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다. 특히 피해자의 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가해자의 부모에게 연락하는 것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부담스럽고 어렵다.
아이의 작은 얼굴에 선명했던 붉은 손자국의 잔상이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만약 아이의 부모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부모의 마음에는 피멍이 들었을 것이다. 전화를 걸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 담임 선생님을 마주쳤다. 담임 선생님은 마침 피해 학생의 가정에 연락할 일이 있다며, 미술 시간에 있었던 일도 함께 전달하겠다고 하셨다.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있을까! 아이의 상태를 묻자, 얼굴의 손자국은 사라졌고, 다음 활동도 무리 없이 참여하고 있다고 하셨다. 거듭 고마움을 전한 뒤, 학교 가정 연락 담당자와 함께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종 이런 일이 있었던 탓인지, 가해 학생의 어머니는 예상보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통화는 큰 문제 없이 끝났지만, 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선명했던 손자국처럼, 오늘의 일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에도 같은 흔적이 남지 않기를,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