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이 심해요.
상담을 하다 보면 먹는 것으로 힘든 집이 많다. 안 먹으려는 아이와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부모와의 씨름은 끝나지 않는다. 먹는 데 관심이 없는 아이를 보면 애가 탄다. 또래보다 한 참 작아 한 두 살이 아닌 세 살이상 어리게 본다. 안 먹으니 안 크고, 면역력도 낮아 자주 아프다. 체력이 달려서 그런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하는 이런저런 신체 활동들이 힘에 부치다. 비싼 한약도 짓고, 영양제도 사지만 먹지 않는다. 급기야 심하게는 소아과에서 체중 미달로 성장클리닉 소견서를 받기도 한다. 적당히 조금 먹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이건 너무 하다 싶다. 어쩌다 명절에 부쩍부쩍 큰 또래 사촌 조카들을 보면 속이 상하고 어르신들의 한 마디에 괜스레 죄책감이 든다. 놀이터에서 속상한 일은 한 두 가지 아니다. 왜 먹는 것이 이리도 힘든 것일까? 이유가 있고 해결방법도 있다. 상황별로 알아보자.
#1. 먹는 것만 먹는 아이
맨 밥, 삶은 햄, 계란 프라이, 옥수수 캔, 맨 김만 먹는다. 먹는 과자 한 종류, 먹는 아이스크림도 한 종류 그 외의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학교 급식에서 맨 밥만 먹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심지어 계란 프라이가 나와도 조리 느낌이 달라서 먹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가 뭐 먹으라고 하는 말이 제일 듣기 싫고, 아빠가 뭐 먹으러 가자고 하는 말이 제일 짜증 난다. 외식을 해도 햄을 삶아 가는 엄마는 한숨이 나고, 관광지에 가서 맨 밥에 맨 김을 싸 먹는 아이를 보며 아빠는 화가 난다. 어릴 땐 먹는 것 때문에 키와 체력이 걱정되었다면 지금은 먹는 것 때문에 서로 사이가 안 좋아져서 걱정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 아이들은 대부분 이유식을 할 때부터 음식을 자주 뱉는다. 입에서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는 입 안의 촉각과 미각이 예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난 아이는 상담을 하면서 오렌지 주스나 레몬차를 마시면 혀가 아프다고 했다. 상추나 배추 같은 질감도 입 안쪽의 촉감이 아프다고 표현했다. 단맛, 신맛, 짠맛이 어느 정도의 강도를 넘어가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만약 시판되는 오렌지 주스를 먹어야 한다면 물을 타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음식을 나를 아프게 하는 물질로 여기고 있었다. 아빠 엄마는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을 계속 주는 사람이 된 것이다. 사이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의문이 생겼다. 삶은 햄보다 염분이 낮으면서 비슷한 질감의 음식은 많다. 어묵도 있고, 소시지도 있다. 그런데 왜 삶은 햄만 먹는 것일까. 과자도 아이스크림도 비슷한 강도의 단맛, 비슷한 질감이 많은데 왜 딱 그것만 먹는 것일까.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여러 가지 다양한 음식들을 급하게 시도한 탓에 음식에 대한 거부가 심해졌다. 또 맨 밥에 닭고기 하나 몰래 숨겨서 먹이고, 뱉고, 또 숨기고 뱉고를 반복하다 보니 엄마 아빠가 주는 음식을 강하게 거부하게 것이다. 더 이상 권하지 못하게 몇 가지로 못 박고 다른 것은 안 먹는 것이다. '안 먹는 애'가 되어야 살기 편한 것이었다. 부모님과 먹는 것에 대해 해결을 하자고 했다. 바로 "안전과 신뢰가" 해결 포인트다. 일단 당분간 아이에게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지 말고 현재 먹는 음식들만 "기분 좋게, 스스로, 배불리" 먹자고 했다. 먹는 정서가 긍정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한 숟가락 더 먹이고 한 숟가락만큼 사이가 안 좋아지고 있었다. 먹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는 것이다. 2~3달이 지나서 "지금 먹는 햄보다 덜 짜고 비슷한 질감의 소시지야" 안전하고 정직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선택할 수 있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앞으로 먹을 수 있을 것인지 먹을 수 없을 것인지. 먹을 수 없다면 그럴 수 있다고 그냥 넘어가자. 먹을 수 있다면 지혜가 먹는 음식 리스트에 추가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리스트에 추가되었다고 한 박스씩 냉장고에 쟁여 두지 말자. 부담스럽다. 안전하고 신뢰롭게 조금씩 조금씩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가는 것이 목표다. 선택되지 않아도 핀잔과 한숨은 넣어 두어야 하고, 선택되어도 크게 기뻐하지 않아도 된다. 먹는 것으로 아이와의 관계에 집중하기보다는 먹는 것은 매우 작은 영역으로 두어야 한다. 먹는 것 말고 노는 것, 수다 떠는 것, 영화 보는 것 등 다른 영역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청소년이 되었을 때 새로운 음식을 스스로 시도해 보고 결정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목표다.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다. 자신의 구강 감각을 잘 알고,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찾아 나가면 된다. 결국 조금씩 정말 조금씩 리스트가 늘어났고, 아이와 친해져 가고 있었다.
아이를 볼 때 오늘은 얼마나
먹었나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 가고 싶은 곳이 뭔지
관심이 없었어요.
먹는 것 말고 다른 대화도 했어야 하는 건데....
#2. 음식이 나오면 모양과 색깔, 냄새를 살피는 아이
얼마 전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칼국수가 나오기 전에 김치가 먼저 놓이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너무 빨개서 매울 것 같다고 강하게 손사래를 치며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속으로 색깔은 빨간데 실제로는 그렇게 맵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잠시 뒤 보니 김치를 리필하고 또 리피해서 계속 드시고 계셨다. 저렇게 맛나게 드실 거면서....라는 마음이 들었다. 구강감각은 예민하지 않다. 시각과 후각이 예민하다. 그래서 음식의 모양과 색깔, 냄새에 민감한 아이들이 있다. 잡채를 먹고 싶었지만 생각했던 윤기 나는 갈색이 아닌 연한 갈색이면 먹기 싫다. 예상했던 빨간색이 아니면 떡볶이가 먹기 싫다. 음식이 나오면 일단 냄새부터 맡는 아이들이 있다. 킁킁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냄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먹기 불편하다. 이런 아이들은 칼국수집 손님과 같은 행동으로 미움을 사기 쉽다. 예를 들면 떡볶이 모양과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안 먹는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부정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다 맛있게 먹으니 한 번 맛을 본다. 너무 맛있어서 많이 먹는다. 어묵이 나오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이게 무슨 냄새가 먹지 않겠어"라고 불편함을 크게 말한다. 주변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맛을 본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많이 먹는다. 이런 아이들은 태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먼저 음식을 보고 모양, 색깔, 냄새에 대해 말하지 말고 속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알린다. 음식을 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또 음식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은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고 예의에 어긋나니 숟가락으로 조금 떠서 살짝 냄새를 맡도록 하는 행동교육이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난번에 색깔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먹어보니 맛있었지. 그러니 한 번 먹어보고 먹을지 안 먹을지 결정해야지'의 마음태도를 알려주어야 한다. '냄새로 맛없다고 판단했지만 실제로는 많이 먹었지' 그렇게 경험치를 늘려가야 한다. 부모님이 기억해야 할 점은 "꼭 안 먹는다고 말하고 나중에 많이 먹는다"라고 나무라지 말고 아이의 태도와 경험치를 응원해야 한다.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 예의를 지키면서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을 잘 구분하면 된다.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한 번 맛을 보고 결정해 주었구나.
맛을 보고 결정하면 된단다.
그렇게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지.
색깔이 이상하다고 크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맛을 보는 행동은 예의 있는 행동이야
한 숟가락 떠서 살짝 냄새를 맡는
행동을 잘 지켜주었구나
따라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 압니다. 그렇게 억지로 먹은 만큼 사이가 안 좋아지면 즐겁게 먹기 어려워요.
즐겁고 맛있게
스스로 배부르게 먹기 위해서는
"먹는 것에 대한 마음"과 "감각"에 대한
도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