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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Dec 30. 2023

용기 사탕

용기사탕을 준비해 주세요. 



갑자기 화장실을 자주가요

등원하면서 힘들어해요

짜증이 많아지고
사소한 일에 자주 울어요

 

11월부터 1월까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생들의 상담이 많이 진다. 호소하는 어려움은 비슷하다. 만나보면 어려움의 원인도 비슷하다.  연말이 되면 '재롱잔치'라고 불리는 발표회를 준비한다. 신이 나서 연습하고 준비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떨리고 긴장되는 아이들도 있다.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일이 재미있지만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도 드는 것이다. 발표회가 끝나고도 상담 문의가 많다. 



무대에서 소리 지르고
방방 뛰었어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오죽하면 선생님이 데리고 내려왔어요


발표회 때 갑자기 보인 돌발 행동으로 창피하기도 하고 아이가 걱정되기도 한다는 문의가 많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선생님들도 당황하고 같이 줄 서 있던 반 친구들도 당황하고 관객들도 당황했다고 한다. 매체에서 보는 귀엽게 우는 모습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대 위의 훼방꾼" 수준이다. 옆 친구들을 밀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무대 뒷 배경벽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왜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



답은 거의 비슷하다.  "고도의 긴장감"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 때문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긴장감과 불안감은 정도가 다르다. 평상시의 생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시험을 보거나 면접을 볼 때 유독 떨리는 사람이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평소 유치원에서 연습할 때는 괜찮거나 조금 떨렸는데 넓은 무대를 보면서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관객이 많이 지고  대형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면 가슴이 두근두근 하다. 번쩍번쩍 조명이 켜지고 함성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쿵쾅 거린다. 낯선 의상을 입고 한껏 상기된 친구들과 긴장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 머리가 하얘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을 한다. 




만나보면 부모님만 알고 있는 긴장감이나 불안감의 요소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두운 극장을 무서워한다던가 마트에서 큰 광고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이들이다. 집에서는 잘하다가 할머니 댁에서 노래 불러보라고 하면 부끄러워하는 것을 넘어 엉엉 우는 아이도 있다. 개인적인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케이스도 있고, 부모의 재치가 필요한 케이스도 있다. 어쨌든 발표회를 앞두고 긴장감과 불안감 그리고 떨림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5살 남자친구가 12월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화장을 자주 가고, 등원할 때마다 떨린다고 불안해했다. 춤추고 노래하고 연습을 재미있어 하면서도 떨림을 밤마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잘할 거야"

매일 밤 아이를 격려했다.



발표회가 다가오면서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엄마 떨려" "아빠 떨려"라는 말을 반복했다. 쉬도 자주 마렵다고 하고 "나 틀리면 어떡하지" "순서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말을  하루에 100번도 더 한다고 했다. 양육 상담을 신청하시 어머니는 "이젠 격려가 지겨워요" "한 두 번도 아니고 애 아빠는 그렇게 떨리면 발표회 하지 말라고 화를 내요" 유튜브보고 공감하기, 마음 읽기를 하는데 이젠 영혼 없이 말하게 되는 것이다. 발표회가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저도 아이의 말에 짜증이 나고 "하지 마"라는 말이 올라오는 것을 꾹 참고 있다고 했다.   



용기사탕을
준비해 주세요

아이에게 마음이 떨리지 않는 효능이 있는 사탕을 구하고 있다고 미리 말해주세요. 그리고 작은 사탕이 여러 개 들어있는 것을 사서 브랜드가 없는 투명통에 담아 주세요. 마음이 떨리지 않는 사탕, 떨리는 마음을 진정해 주는 사탕이라고 하세요. "용기사탕" 이라고요. 구하고 있으니 기다려봐. 발표회 며칠 전 구했다고 하면서 하나를 주세요. 발표회 당일에는 사탕을 의지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면 됩니다. 발표회가 끝나고 주말에 연락이 왔다. 아빠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식으로 말했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용기 사탕을 먹어가면서 잘 넘어갔어요.
 
용기 사탕 덕분에 진정되었다고 하네요. 




공감과 격려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용기사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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