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차 나에게 역시 올해는 특별한 한 해임이 분명하다. 여태껏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발이 꽁꽁 묶인 채 최소한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집콕 생활이 그러하였고 마음만 먹으면 만났던 나의 소중한 가족을 만나는 것조차 참고 참고 버티다 너무 그리워져 달려가기도 하였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바깥과 거리를 두니 그전에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철저한 거리두기를 하면 할수록 '나'에 집중하게 되었고 '별이'에게만 향하였던 나의 시선이 '별이 아빠'와 다른 '가족', '친구'들에게 머물기도 하였다. (굳이 합리화를 하자면) 내 딴에는 그동안 나는 진심으로 별이의 세계 속에서 별이 엄마로서의 역할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이제 별이 역시 나의 애정과 관심이 가득 담긴 잔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아주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일곱 살 어린이가 되었고,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지만 설렘이 가득한 세상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나만 여태껏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런 별이를 쫓아다니느라 그동안 우리 둘은 아주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별이와의 거리를 두고 나에게 집중하니 우리는 더 행복해졌다. 이제 나는 별이가 별이의 세계를 더 즐겁게 더 힘차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그리고 나 역시 '별이'가 별이로 가득 찬 '별이의 세계'로 만들어 가는 동안 '나'로 가득 찬 '나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지난 100일 동안 우리의 이야기를 적으면서 돌아보니, 나는 별이에게 무엇보다도 삶은 꽤 즐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만 하는, 안쓰럽긴 하지만 많이 고민하고 실수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였고, 나 역시 전혀 완벽하지 않지만 별이의 조금 더 즐거운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 즐거운 놀이 같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진심을 다한 것도 같다, 대체로.
우리의 기록 속에서 별이와 나는 때론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기도 하였고 전혀 다르기도 하다는 진실을 새삼 발견하기도 하였고, 서로를 진심으로 많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마음 깊이 믿게 되었다. 나는 별이를 너무 많이 사랑하고 있으므로 그리하여 나는 이제 별이에게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잔소리쟁이 '엄마'가 아닌, 앞으로 별이가 좋아하는, 별이와 함께 고민하고 놀 수 있는 별이의 '언니'가 되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더 흐르면 별이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겠지. 그렇게 난 별이와 오래도록 함께 있고픈 지나치게 욕심 많은 엄마이다.
별아, 너무너무 사랑해.
엄마한테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
엄마는 별이의 엄마가 되어서 제일 행복해.
작년 별이는 '죽음'의 존재에 대해 부쩍 두려워하였다. 나는 죽음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별이를 안심시켜주고 싶었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나이가 아주 많아야 죽게 된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별이는 별이보다 나이가 많은 나(엄마)의 죽음을 걱정하곤 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나에게 아주 작은 사람 그림을 가져왔다.
"엄마가 죽으면 엄마를 기억할 수 있게 내가 엄마 표본을 만들었어."
난 웃음이 나면서도 나의 죽음을 이토록 걱정해주는 나의 별이가 고맙고 안쓰러우면서 몹시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