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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 샤베트 Sep 21. 2020

[공의 경계]

공의 경계가 타입문의 최고작인 이유

    타입문의 작업물들은 로맨스 서사를 기반으로 여러 장르적인 요소들을 자신들만의 작법으로 엮어낸다. 사이코 호러 장르를 녹여낸 [월희]나 [페이트/스테이 나이트]의 헤븐즈 필 루트, 판타지적인 페이트 루트와 마법사의 밤, 정석적인 소년만화 장르 요소를 녹여낸 UBW 루트 등 다양한 장르적인 요소들은 캐릭터성의 복제에도 불구하고 서사 속 캐릭터들의 개성을 구분해내는데 큰 역할을 해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타입문(정확히 말하자면 나스 키노코)의 작업물들은 하렘 요소의 묘사에 있어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인물들 간의 로맨스 묘사가 작업물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역할을 한다. 이 부분에 있어 타입문의 라이트 노벨이자 지금은 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유포터블과의 첫 협업이었던 [공의 경계]는 독특한 위치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공의 경계] 또한 근본적으로 로맨스 서사가 바탕이 된다. 타입문의 작업물들이 늘 그러했듯 남자 주인공인 고쿠토 미키야를 중심으로 그를 좋아하는 수많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러나 [공의 경계]는 이러한 하렘 관계에는 딱히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작품 속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미키야의 존재에 따른 료우기 시키의 서사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다.


    시키와 미키야의 로맨스는 여타 로맨스 서사에서 느낄 수 없는 모호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시키는 세 가지(남성, 여성, 경계) 인격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이들 인격은 퀴어적인 맥락에서 미키야와 시키의 로맨스를 입체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여타 타입문에서 그려진 이성애적 관계와 차별된다.


    시키의 인격은 엄밀히 따지자면 젠더 정체성의 영역에서 봐야 한다.(애초에 여성/남성/그 사이 어딘가로 묘사한 걸 젠더 정체성의 영역에서 해석하지 않는게 이상한 거지만) 미키야와 시키의 관계는 시키의 인격에 따라 변동하고, 여성 시키/ 경계 시키 / 남성 시키와 무관하게 미키야는 시키 만을 바라보지만, 어쨌거나 그들의 ‘끌림’(심지어 성애적인 묘사가 거의 전무한 관계인)은 지속된다. 시키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로맨스/성애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남자 시키/여자 시키/경계 시키의 구분이 젠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완전히 부합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시키의 3가지 자아는 사회적인 젠더 역할 묘사와 밀접하며(이는 작가인 나스의 성별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한 구분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이런 차이는 미키야와 시키 인격들의 로맨스 묘사에 있어 특히 두드러진다. 이들의 관계는 시키의 인격에 따라 때론 통상적인 이성애적인 관계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연애’의 영역이 아닌 것도 같고, 어떤 때는 (디나이얼 퀴어들 간의) 동성애적인 관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료우기 시키라는 한 인격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지어 묘사하기 보다는 한 인격체의 젠더 유동적인 성격을 기반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남성/여성 정체성이 한 개인의 성격을 대변하지 않는, 하나의 성격에 불과한 측면은 오토코노코나 여장남자 등의  서브컬쳐 컨텐츠, 더 나아가 마마무의 뮤직비디오 같은 수많은 대중문화 컨텐츠들 속에서 묘사되는 성별 정체성의 묘사와는 구분되는 측면이 있다. [가람의 동]의 시키가 본인의 머리를 끊어내는 것이 시키의 젠더 정체성과는 무관한, 편의에 따른 결정인 것은 이런 측면에 힘을 실어준다.


    [공의 경계]는 시키의 젠더 경계를 무너트리는 묘사가 아니더라도, 여타 타입문의 주인공들과 성별에 따른 서사부터 다른 측면이 있다. 작중에 묘사되는 사회 속 여러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사적 재제에 따른 혼돈과, 이들을 사건으로 만들게 하는 미키야의 역할까지는 비슷할지 몰라도, 결국 이들의 사적 제재에 대한 해답과 구원 서사의 주체는 료우기 시키의 몫이다. 제아무리 미키야가 작중 일반 시민보다 능력 있고 인격적으로 튀는 인물이라 한들 그 능력은 시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미키야는 수많은 대중문화 속 묘사되는 소모적인 여성 캐릭터의 그것이며 그를 구해내고 사건을 해결하며 모든 서사의 종결을 알리는 것은 료우기 시키인 것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미키야는 그저 시키의 여러 인격(과 젠더 정체성)을 인정해주고 료우기 시키라는 한 사람을 존중해주는 반려인에 불과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시키의 복장이 전통적인 의상(기모노)와 현대적인 의상(빨간 코트)가 공존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설정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차이점 때문에 [공의 경계]의 미키야와 시키 간에 로맨스가 아닌 성애적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로맨스 묘사부터가 차이가 나는 건 물론이다. 어쩌면 이 둘의 관계는 사회의 디폴트인 낭만적 사랑보다는 유동적 사랑, 일반적인 섹슈얼/로맨틱의 관계보다는 그레이 섹슈얼/로맨틱의 관계에 훨씬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딸기맛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으로 대표되는 [공의 경계] 속 로맨스는 전형성을 한참 벗어난 그것이고, 너무나도 미디어 속 ‘낭만적 사랑’과 동떨어져서 오히려 더 낭만적이다. 너무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은 그런 관계의 맛이다.


    분명 [공의 경계]는 과할 정도의 (히스이-사쿠라-후지노로 이어지는 타입문의) 여성 대상 폭력 때문에 불편한 지점이 존재한다.(심지어 유포터블의 이런 폭력에 대한 묘사는 원작보다도 적나라하다) 그러나 하드보일드 스타일에 가까울 정도로 차분하고 냉담한 묘사와 캐릭터들, 이에 어울리는 푸른 빛 음울한 색채와 가감 없는 피의 붉은 색채의 대비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또한 여성 대상 성폭력의 사적인 제재에 대한 작중 아오자키 토우코와 시키의 사건 해결 방식은 여성을 마냥 성적인 착취 대상으로 보는 것에 대한 반발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후지노 같은 인물들이 설령 정의가 아닐지라도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고독에 대한 반발은 이해 받을 수 있는 영역이라는 듯한 초연한 반응과 다른 ‘올바른’ 남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찬가지로 삐뚤어진 힘이 있는 여성(시키를 지칭하는 표현이다)에게 묵인되는 서사는 기존 타입문 세계관 속 여성을 착취하는 서사와 충분히 동떨어졌으니 말이다.. 안티 히어로 격인 시키를 왜곡해 받아들였던 살인고찰의 메인 빌런이 시키 본인에 의해 부정되는 것은 참으로 [공의 경계]의 클라이맥스다운 서사라 할 수 있겠다.


    [공의 경계]는 내가 처음으로 정주행을 했던 애니메이션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참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위에서 장황하게 여러 이야기를 했었지만 그냥 유포터블이 그려낸 시키의 멋있는 모습이 좋았고, 미키야와 시키 사이의 모호한 로맨스도 좋았고, 아오자키 토우코가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멋졌고, 유키 카지우라의 OST는 언제 들어도 좋았으니 말이다. [공의 경계]가 나온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이만큼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담)

- 이번 글은 [공의 경계] BD 정발 기념으로 쓴 게 맞습니다 이걸 해주다니 미라지 땡큐땡큐 바로 결제했다

- [공의 경계]는 드물게 영어 제목인 [Garden of Sinners]가 원제랑 동등하게 매력적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죄인들의 정원이라니 과할 정도로 낭만적인 타이틀이 아닐지

- 유키 카지우라의 커리어 하이는 [공의 경계]가 아닐까

- 월희 리메이크는 그래서 언제 나오는 거죠 + 알퀘이드 월남치마 돌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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