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이것저것 다 하기 싫고 마음이 허기져서 이미 한바탕 인기를 끌고 지나갔다는 <선재 업고 튀어>를 눌렀다가, 끝까지 정주행을 했다.
나 같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뭐 어때. 네가 없는 게 이미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어디로 돌아가면 다시 살릴 수 있을까. 암이 생기기 전? 네 그 끈질긴 암은 도대체 언제 생긴 걸까.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살려. 좋아, 암 발생은 그냥 인정하자. 암이 생긴 후라면? 처음 광범위 절제술을 했을 때로 돌아간다면? 안 되는구나. 그때 나는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 그래, 그건 말리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병원을 선택하게 한다면? 최근 찾아봤더니 육종암은 수술 후에 혈액으로 전이된다고 처음 수술할 때 피주머니를 차야 한다고 이런 말을 하는 의사분이 계시던데, 그 병원으로 갔다면? 그리고 바로 자연치유, 무엇보다 호흡수련을 그때 시작했다면...
이전에 꿈을 꾼 적이 있다. 네가 다시 내게 돌아온 꿈. 내가 "어떻게 돌아왔어? 이미 모든 육신을 다 태워 가루가 되었는데..."라고 물었더니 "나도 몰라"라고 했었지. 이번엔 내가 정말 잘해서, 너를 꼭 살리고 말 꺼야라고 생각했지만, 꿈이 진행되면서 아, 불가능한 거구나 하고 한탄했었지. 이미 너는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 암 말기, 즉 몸이 마른 상태로 나타났으니까. 이 상태에서 다시 살려내기는 너무 힘들겠다, 그럼 그 통증과 그 고통을 또 지켜보고 그 지난한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야, 다시는 못하는 일이야. 나는 이미 진을 다 뺐어. 또 한 번 하라고 하면 못해. 정말, 또 한 번 해서 진짜로 네가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래... 나는 또 조건을 걸었구나. '살릴 수 있다면' 해보겠다고. 전에 네가 그랬었지, 소원은 조건을 거는 게 아니라고. 그런 거 할 필요 없다고.
어릴 때 꿈에서 너무너무 화장실이 가고 싶어 화장실을 찾아도 결국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 화장실을 가야지 해결되는 것처럼. 꿈을 꾸는 내내 마음이 너무 급하고 초조하고 왜 있었던 일을 바꿀 수 없지, 왜 똑같이 흘러가지, 이렇게 하면 또 죽는데라고 생각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마음이 드라마에 너무 잘 표현된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상태. 그래도 여주는 남주가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이, 그 어떤 조건도 걸지 않고, 그 과정을 세 번이나 반복한 뒤 결국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그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을 선택했다.
나라면 너를 살릴 수 있다는 조건 없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너를 살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면(혹시 아냐, 뛰어난 여의사라든가), 나는 나를 너의 삶에서 지울 수 있을까? 별 희한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고 어이없어하고 있지? 내가 또 픽션의 대마왕이잖아.
미안. 나는 그렇게 못할 듯. 여주보다 늙어서 그런지 몰라도.
왜냐하면, 내겐 네가 너무 중요하고 필요했거든 네게만 내가 간절했던 게 아니라. 내가 없는 네가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도, 내가 너의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꼭 있었어야 하는 필수조건이었다는 느낌이 강해졌거든. '내가 없으면 죽지 못해'가 아니라, '내가 있어야 편히 죽을 수 있어' 같은 느낌?
어쩌면 이번 삶에서 너와의 관계에서 내 역할은 그것이었는지도 몰라. 너의 삶을 잘 마무리해서 외롭지 않게 잘 도닥여서 떠나게 하는 것. 너의 명복을 꾸준히 빌어주는 것. 그게 음목(陰木) 성향인 너와, 양목(陽木) 성향인 나의 관계였을지도. 말도 안 되는 소리일 수 있지만, 어쩌면 저번 생에서는 네가 그 역할을 해 줬을지도 모르지. 누가 알겠어.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걸.
달이 차오르고 있어. 추석엔 항상 내 건강과 우리의 행복을 빌었었지.
난 다 기억하고 있어.
넌 이제 떠나겠다고 했으니, 되고 싶다던 참나무가 되기위해 어딘가에서 도토리로 영글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