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학 열한 번째
니체는 <나의 생애>에서 그의 고등학생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그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에서 고등학생 때 자신의 영향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그 일들은 그를 어린아이처럼 따라오고, 그리고 때가 되면 그 일들이 인생 항로에 나타나리라면서. 인간은 일찍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자라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20살 초반에 우연찮게 등록했던 진로상담에서 들었던 '너는 지금까지 잘 해왔다, 그것이 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라는 위로는, 누군가가 나에게 건넨 그리고 내가 나에게 해준 첫 번째 위로였다. 합리화라는 방어기제 아래 나에게 위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나는, 내가 잘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 음악 취향이 고등학생에 멈춰있음을 느낀다. 통통하고, 학교 매점을 좋아했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음악 취향만큼은 평범하지 않아서 고등학교 1학년 CA 수업 때 '대중음악연구부(라고 쓰지만 록 음악연구부였다)'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음악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미약하게나마 넓혀놓았던 음악적 소양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중학생 때, 담임선생님 앞에서 아프다고 울어서 조퇴를 하고(아픈 것은 거짓말이었지만, 눈물은 거짓이 아니었다.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본지 얼마 안되어서, 살아있다는 것이 슬플 때였다) 홀로 떠났던 종로에서, 살아있음에 외로움을 느끼던 중2병의 나는, 아직까지도 내 안에서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괴짜 선생님 덕분에 수업 시작하기 전에 배웠던 상식들은 지금까지도 내가 가끔 새로운 사람과 만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제들이다. 또 '반에서 미간에 주름이 가장 많이 잡히는 아이' 혹은 '팔의 앞면과 뒷면의 색이 가장 다른 아이'등에게 상장을 주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내 약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반에서 팔의 앞면과 뒷면의 색이 가장 다른 아이였다. 까무잡잡한 바깥면과는 다르게 하얀 안쪽면을 태우려고 일부러 바보처럼 팔을 뒤집고 걸어 다니기도 했던 초등학교 6학년의 나는, 그 뒤로는 내 팔을 적어도 창피하게 생각하진 않게 되었고, 누가 물으면 '반에서 1등이었어'하고 자랑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4학년 때, 시인이셨던 선생님을 만나 독서통장을 쓰면서, 매일매일 시를 쓰면서 나는 책과 만났다. 더 정확히는 <마당을 나온 암탉>과 만났다. 잎싹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나는 힘든 시간들을 견디어 냈고, 책 속에서 노는 법을 배웠다.
니체의 말처럼, 나는 대학생의 나에게 위로를 배웠고, 고등학생 때의 나에게 음악을 빚졌고, 중학생의 나에게 감수성을 빚졌다. 내 과거는 그리 화려한 과거가 아니고, 성공한 과거도 아니다. 나는 많이 실패했고, 나약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지금과 같이 자라났고, 그건 내가 대학생 때 배웠듯이 잘 해냈다고 나에게 위로를 건네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약간의 설렘도 느낀다. 내 과거들이 고삐가 잡혀 인생 항로에 나타나는 날들에 대한 가슴뜀을 느낀다.
1. 지금 나와 함께 흘러가고 있는 과거는 무엇인가?
2. 나는 그것들에서 어떻게 자라났는지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