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쓴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크리스마스 캐럴이 진하게 울리는 밤이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다며, 길거리 사람들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지하철역 앞에 한 소녀가 맨발로 서있다. 도박중독자인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 급하게 나오다 보니 맨발이었다. 소녀는 쓰레기통에서 비닐봉지로 발을 감쌌다. 차곡히 쌓여 있는 눈은 소녀의 발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낡은 바지 주머니에 옆집 아주머니에게 받은 성냥갑 몇 개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요즘 이런 성냥을 구하기가 어려워 값이 나간다고 했었다. 소녀는 용기를 내어 성냥갑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지나다닐 뿐 소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지독한 배고픔에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소녀도 모르게 픽하고 주저앉았다. 얇은 긴 팔 사이로 눈꽃송이가 스며들자 소녀는 정신이 들어왔다. 저 멀리 환한 불빛이 비취는 곳으로 걸어갔다. 큰 유리문 사이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고기 냄새가 났다.
소녀는 카페 뒤쪽으로 가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몸이 점점 얼어 울긋불긋하게 변하고 있었다. 소녀는 이런 추위에도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소녀만 보면 화가 난다며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였다. 게다가 집은 이미 전기와 수도가 끊겨 있었다.
점점 얼어가는 손을 보며, 성냥 하나를 꺼냈다. 작은 온기가 소녀의 손을 녹여줄지도 모른다. 치지직! 성냥에서 강렬한 불꽃이 일어나면서 소녀의 눈앞에 보일러가 켜져 있고 따뜻하게 이불속에 있는 소녀가 보였다. 얼마나 따뜻한지! 소녀는 이불을 만져보려고 하는 순간 불꽃이 꺼지고 모든 게 사라졌다. 손에는 다 타버린 성냥만 남아 있었다.
소녀는 성냥 하나를 더 켰다. 환하게 타오른 빛에서 식탁이 보였다. 식탁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쌀밥과 미역국과 양념 소갈비가 있었다.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음식들이었다. 성냥 하나를 더 밝혔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엄마가 보였다. 어디선가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에 앰뷸런스 소리가 크게 들렸었다. 소녀에게 앰뷸런스 소리는 마치 죽음으로 향하는 소리 같았다.
소녀는 다시 엄마를 보기 위해 성냥을 그었다.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띠고 웃고 있었다. 소녀를 향해
“태어나줘서 고맙고 많이 많이 사랑한다.”라고 얘기했다.
소녀는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기에 재빨리 남은 성냥을 모두 밝혔다. 그러자 성냥은 웅장하고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했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그 불빛을 통해 소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119가 도착하고 소녀는 응급조치와 함께 구급차에 실려갔다. 소녀가 간 자리에 다 타버린 성냥 꾸러미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