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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Jul 25. 2021

나 셀린, 내일 드디어 꿈에 그리던 K-지옥철을 탄다!

여행 덕후가 코로나 시대를 사는 법

운동을 시작하고 긴 시간 동안 걷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도보 1시간 내외의 거리는 걸어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에는 집에서 2.5km 정도 떨어진 답십리역 근처에서 중고거래를 할 일이 있었다. 왕복 80분, 운동 삼아 걷기에 딱 좋은 거리였다.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지도 앱을 켜고 집을 나섰다. 익숙한 헬스장을 거쳐 몇 번쯤 가 본 곱창 골목을 지나니, 지도 앱은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로 나를 안내하였다. 그의 안내에 따라 짧은 지하도를 통과하니 내가 모르는 세계가 펼쳐졌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확실히 내가 처음으로 밟아보는 낯선 공간이었다. 일자로 늘어선 곱창 골목까지만 와 봤던지라, 그 끝의 코너를 돌면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지 알 턱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두 개 사이에 난 도로, 그 양 옆에 달린 보도를 따라 나는 걸었다. 미용실, 부동산, 호프집 등 주거지에서 흔히 볼 법한 시설들이 펼쳐진, 그야말로 사람 사는 동네. 금요일 저녁에 답십리역으로 놀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빵집에서 나오는 사람, 편의점 앞 테이블에 술과 안주를 늘어놓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한 손으로는 비닐 봉지를, 한 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느리게 걷는 연인들. 하나같이 편한 차림새로 여유로운 저녁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그야말로 이방인이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손에 들린 지도 앱과 건물의 간판들을 번갈아 보며 걷는, 이 저녁, 답십리의 이방인. 거래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빨라지는 발걸음은 유럽 여행 당시 빠듯한 기차 시간에 초조함이 만들어낸 나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2년 전 여행한 파리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 있었고, 그로 인해 샹송과 프렌치 팝을 음미하며 걸은 탓일까. 어느 정도 과장 섞인 말이겠지만, 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용답동의 길 한 복판에서 나는 파리를 느꼈다. 파리의 맛, 파리의 사람들, 파리의 언어, 파리의 날씨, 파리의 예술작품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나만 다른 곳에서 왔다는 사실이 주는 소외감, 두려움, 동시에 그것에서 오는 설렘, 예측 불허한 상황들까지 파리에서 느낀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폴란드인 친구 카샤는 8월에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온다. 코로나 때문에 서울스럽게 시끌벅적한 곳에 데려가지 못해 아쉽다는 나의 말에, 자신은 그저 서울에, 한국에, 아시아에 온다는 것 자체가 너무 설렌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럽, 그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시에 살면서, 이 복잡하고 답답한 서울에 오고 싶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평생을 유럽에서만 살았고, 평화롭거나 화려한 서구의 도시들을 여행하고, 그 동네의 문화만 경험한 그녀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아시아를 꿈꿔 왔을까. 이곳이 유럽보다 나아서, 더 아름다워서, 더 멋져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낯섦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시아를 좋아하는 이유는 많다. 건축, 음식, K-POP...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녀에게 가장 큰 낯섦을 선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낯섦은 그녀가 런던에 가도, 바르셀로나에 가도, 뉴욕에 가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이곳만이 선사할 수 있는 낯섦을 찾아 그녀는 이 먼 길을 오는 것이다. 


본래 나는 익숙함보다 낯섦을 즐기는 사람이다. 여행은 나를 가장 낯설게 만드는 행위였고, 그것이 불가능해진 지금의 나는 자주 허탈감을 느낀다. 하지만, 낯섦은 꼭 아주 먼 곳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4개월간의 다이어트를 끝내고 올해 처음 먹은 떡볶이도, 세탁소 가는 길에 새로 생긴 카페도, 기분 전환 겸 창 쪽으로 돌려놓은 자취방의 테이블도, 재택근무 방침 덕에 갑자기 하게 된 본가에서의 근무도.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낯설기에 설레는 것들. 


2년 전,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배꼽을 드러낸 채 수업에 들어간 내게 한 교수님께서 "어디 여행 갔다 와요?"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아뇨. 저는 학교로 여행 왔는데요." 농담 섞인 나의 대답에 흡족해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필름 카메라를 늘 목에 걸고 다니며, 너무 익숙해서 놓칠 수도 있었을 일상의 아름다움을 억지로 낯설게 바라보려 노력하던 시절이었다. 항공사, 여행사, 혹은 숙박업체 광고에서 흔하게 보이는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카피는 여행이 불가능해진 오늘에서야 더 강한 힘을 갖는 듯하다. 여행을 일상적으로 자주 가 달라는 의도에서 쓴 카피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가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지금의 상황에 더 깊게 와닿는다.


나 또한 이런 공익 광고 같은 글을 쭉 써 놓고 언제 또다시 파리병에 걸려 지루한 일상을 탓하며 눈물 흘릴지 모르겠다. 괜찮아, 너의 일상도 충분히 재밌어, 하고 나를 세뇌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런다고 여행 욕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이왕 파리로 못 가게 된 판에, 내가 파리지앵이 되어 서울로 여행을 와보자는 것이다(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하게 했더니 드디어 미쳤나?). 파리에서만 20여 년을 산 파리 토박이 셀린, 레아, 혹은 까미유가 되어(당신이 남자라면 앙투안, 라파엘, 혹은 피에르가 되어) 서울 집 앞의 거리를, 동네 한 바퀴를, 출근길을 걸어 보는 것이다. 


권태는 과도한 익숙함에서 시작된다. 익숙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낯섦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이를 의도적으로 깨 부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낯섦을 두려워하지 말자. 낯섦을 회피한다면, 언젠가 권태를 말없이 받아들여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당장 눈앞에 들이닥친 현실이 각박해도, 낯섦이 들어갈 공간은 늘 비워두자.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면 어느 대단한 사람의 일상이라도 매일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낯섦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서,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발견된다. 


내일은 월요일인 만큼 현지가 아닌 셀린의 몸으로 지겨운 파리를 벗어나(드디어!) 26년간 꿈꿔온 서울의 지하철(이곳 사람들이 지옥철이라 부르는)을 타고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한강을 건너 K-드라마에서 간접 경험한 회사라는 곳에 가 볼 계획이다. 신난다!


일상을 여행할 때 여행은 일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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