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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pr 06. 2023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장례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2022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p. 231


조금 울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제목과 그에 어울리는 초록색의 산뜻한 표지.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들려주는 책에 대한 정보들을 들을 때 내가 울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재미있을까?라는 생각도 조금쯤 했었다. 두껍지도 크지도 않은 책은 펼치는 순간부터 장례를 치르는 이야기 답지 않게 웃기다. 책의 첫 장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 책을 읽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빨치산으로 살았던 사람의 딸이 치르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이해하면서 지켜볼 수 있겠다 싶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가 죽으면서 시작되어 아버지의 유골을 떠나보내면서 끝이 난다. 장례를 시작하면서 주인공 '아리'는 자신이 알던 아버지를 추억한다. 그리고 하나둘 모여드는 아버지의 조문객들은 저마다 기억하고 있는 아리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장례식장은 그러라고 있는 곳이다. 아주 오래된 기억부터 최근의 일까지. 아리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같이 살았지만 그마저도 아버지가 감옥에 가 있던 시간은 빼야 하고, 아리가 대학을 간 이후에는 간간히 고향에 내려올 때만 만났던 아버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p. 110


아버지도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고, 어느 날 빨치산이 되어 산속을 누비며 동료들과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던 시절이 있었다. 자수를 하고 감옥에 들어가 지옥 같은 고문을 견디고 아리의 아버지가 되고 다시 감옥에 간 어떤 기간도 존재했다. 아리가 자라 고향을 떠난 이후, 여전히 고향에 남아 생활을 이어가던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를 둔 아리의 삶의 여정에 한 자락이고, 빨치산 사회주의자 냉정한 합리주의자였던 아버지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 아리의 아버지는 보편적인 한국의 아버지는 아니다. 내 아버지는 아리의 아버지보다 젊은 세대로 6.25 전쟁당시 막 태어났다. 거기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그곳에 계신다. 특별히 사상이라는 것은 없지만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시다. 그처럼 누구나 서로 다른 삶의 시작점에서 여정을 시작하니 보편적인 아버지는 없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몇 년도에 어디서 태어나서 살았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있다. 아리의 아버지는 빨치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보편성에서 살짝 벗어나 보인다.


그럼에도 아리의 아버지가 살아갔던 소소한 동네의 삶은 내 아버지의 일상과 비슷했다. 책을 읽다 보면 부모님을 사랑하고 그들의 모습에 존경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원망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복합적인 심정이 잘 드러나는데... 이 또한 내가 부모님에게 가지고 있는 심정과 비슷하다. 책을 읽으며 동네 대소사에 서로 이상하게 지나치게 참견하는 이웃과 부모님이 떠올랐고,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왜 시골인가... 왜 돈이 없어서 나는 여기에 있어햐 하는가 같은 원망을 보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아리'에 감정이입되어 아버지를 어떤 부분은 욕했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좋았다가, 미안했다가, 고마웠다가.. 그리웠다가 그런 감정을 함께 공감하며 오갔다. 그건 아리가 장례를 치르는 고향마을 사람과 친척들에 대해서도 비슷했다.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p. 197


이 책은 하나의 주제로 가느다란 가지를 뻗어 얼기설기 엃히며 거대한 군락을 만든다. 거대한 기둥의 나무가 아니라. 신파가 없이 담백하고 경쾌하게, 각자의 치졸한 모습도 아주 잘 드러나게. 그럼에도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가슴 시린 사연과 정감을 잃지 않도록 배치한다.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좋았다. 사연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힘든 짐을 지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웃고 다른 사람을 돕고 때로는 도움도 받고, 등도 쳐 먹으면서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 끝이 나는 것이 유한한 사람의 삶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해방일지인가 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해방이 된다. 책 사길 잘했다. 언젠가 마음이 답답해질 때면 또 펼쳐서 읽고 웃고, 울고 싶다. 그러면 또 책을 덮을 때 내 마음이 먹먹하니 상쾌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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