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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킹 Mar 19. 2023

부디 그곳에서는 마음껏 뛰어다니소서

그녀에게서 아버님의 병환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잘 가늠이 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걱정과 함께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아버님 가장 가까운 곁에서 지켜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겪어온 그녀와 그녀 가족들의 아픔에 비하면 나의 걱정은 너무나도 하찮은 것일 테다.


아버님을 처음 뵈었을 때는 소파에 앉아 계셨다. 다 같이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기에는 어려웠다. 아버님은 소파에 앉아서 따로 가져다 드리는 식사를 하셨다. 어머님과 우리는 식탁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아버님은 가만히 듣고 계셨을까? 함께 대화에 끼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은 얼마나 크셨을까? 식사를 마친 아버님은 곧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우셨다. 그리고 집을 나설 때쯤 아버님은 잠에 드셨고 더 인사드리지 못하고 나왔다.


아버님을 두 번째 뵈었을 때 아버님은 침대에 누워 계셨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 맞이한 설날연휴였다. 아버님은 방 밖으로 나오시지 못했다. 안방 침대는 병실용 1인 침대로 바뀌어 있었고 침대로 가져다 드리는 식사를 하셨다. 우리도 식사를 마친 뒤 나서기 전에 아버님 방에 들어갔었고, 아버님은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술은 좀 하냐는 말씀에 가끔 마신다고 말씀드렸고 술이라도 한잔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말 끝을 흐리셨다. 아빠는 엄마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 꼭 좋아한다며 그녀가 아빠 앞에서 장난스레 엄마의 어깨를 두드리며 뒤에서 안고 돌 때, 그 모습을 보고 웃으시던 아버님의 모습은 정말 해맑으셨다.


아버님의 병은 치료 수단이 없는 병이라고 한다. 국내에 소수의 환우들만 걸리는 희귀병이었다. 배우 전종서의 아버지도 불과 한 달 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아버님은 2017, 18년도에만 하더라도 느리게라도 걸을 수 있으셨다고 하지만 그 뒤로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셨다고 한다. 아마 그 뒤로는 계속 집에만 계셨던 것 같다. 그 작디작은 공간 속에서 말이다.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입관 때였다. 아버님은 우리의 결혼식 이후로 급격히 병세가 나빠지셨다고 한다. 잠에 든듯한 그 모습은 흔들어 깨우면 금방 눈을 뜨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을 쓰다듬고 팔다리를 만지고 눈물로 안아보는 가족들의 부름 속에도 아버님은 눈을 뜨시지 않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님은 딸을 통해 나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셨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퇴근 시간이 지나고도 아버님으로부터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전화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아쉽고 슬프다. 별 일 아닐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안일하게 생각한 바보 같은 내 모습이 한탄스럽다.


장례식장에서 입관할 때와 화장장에서 아버님의 관이 입로할 때, 어머님은 아버님께 부디 그곳에서는 마음껏 뛰어다니라고 말씀하셨다. 아직 한창 젊으신 나이에 누워만 계셨어야 했으니 얼마나 슬펐을지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어머님의 말씀은 내 가슴속에도 맺히어 계속 머무르고 있다. 부디 주님께서 아버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시길 바라며, 어머님의 바람대로 하늘나라 천국의 안식처에서는 아버님이 마음껏 뛰어다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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