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안개꽃 같은 것이 아른아른 피어있다. 흑백사진처럼 검다가도 바다처럼 푸르기도 한 안개꽃. 어디로 나아갈지 알 수 없기에, 나는 그저 바라본다. 때로는 줄지어, 때로는 둥글게. 여기저기 피어있는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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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다. 썅.
집에 곰팡이가 생겼다. 월세라서 도배를 할 수도 없고, 해달라고 해도 안 해줄 게 분명하다. 이 곰팡이 자식과 또 친구가 되게 생겼다. 싹 다 없애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나는 돈이 없으니까. 돈이 없는 20대니까. 다른 곳을 가도 저 녀석이 있는 건 마찬가지일 거다. 대학가에 있는 월세방은 대개 이런 식이다. ‘비대학가’보다 평균적으로 ‘8만 6천 원’이나 월세가 높다는데, 비대학가의 싼 월세방보다도 못한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반지하도 월세가 100만 원을 받는 곳도 생겼다고 한다. 잠깐, 내가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었던 건가. 이 세상이 나를 향해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하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는데.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다홍치마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것 같다. 11월만 되어도, 대학가 부동산들은 난리가 난다. (졸업과 입학이 정해지기 시작하니까) 그들의 장단에 맞춰, 내 핸드폰도 난리가 난다. 시도 때도 없이 부동산에서 전화가 온다. 짐을 뺄 거냐, 연장 계약할 거냐, 집에 수리할 건 없냐, 집은 구하고 있냐, 계약서 언제 쓰러 올 거냐, 언제 시간 되냐, 집 보러 가도 되냐…. 어어, 어지럽다. (휘청)
혼자 집 알아보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확인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도 아닐뿐더러, 시간이 남아돌지도 않으니 마음먹기 쉽지 않다. 큰맘 먹고 부동산 앱으로 틈틈이 확인해 둔 매물을 보러 가면, 허위매물인 경우도 많다. 한때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집을 보러 다녔다. 창문의 개수부터, 주변 시설까지. 부동산 아줌마의 싸-나운 눈초리를 피해, 이리저리 확인하고 열심히 체크를 해댔다. 채워진 것보다 채우지 못한 빈칸이 더 많았지만. (허허)
어렵게 얻은 집에서의 첫날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낮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술 취한 이들의 고성방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따흑. 새벽이면, 자꾸 무서운 꿈을 꿨다. 좀비들과 싸우는 꿈, 멸망하는 지구에서 살아남는 꿈,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된통 맞는 꿈. 꿈속에서 온 힘을 다해 견뎌내고 나면, 알람이 울렸다. 꿈속과 꿈 밖에서 싸우며, 그렇게 2년을 살았다. 이후 1년을 더 계약하려다, 나온 지 5분도 채 되지 않은 매물이 있다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보고 왔던 집이 지금의 우리 집이다. 이 집에는 곰팡이가 더 많고, 세탁기를 돌릴 때 주방 상판까지 흔들려 덜덜덜 소리가 나지만, 괜찮다. 곰팡이야 익숙하고, 세탁기 소리야 무료로 난타 공연을 보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고요한 밤을 고요하게만 보낼 수 있는 그런 가난한 집이라서 좋다. 사람은 나쁜 꿈을 꿔봐야 좋은 꿈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삶에 있어 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떤 것인지 몰랐을 테니까. 다홍치마까지는 못 샀지만, 이제는 내게 편안한 치마를 찾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