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서 Mar 15. 2024

아주 고오맙습니다

 “걔랑 왜 사귀는 거냐. 개빻았던데?”


 전에 사귀었던 놈의 친구가 한 말이었다.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한 놈을 뭐가 좋다고 만났는지. (절레절레) 그렇다. 저 문장 속 ‘걔’가 바로 나다. 허참, ‘빻았다’라…. 빻기는 뭘 빻나. 내가 밀가루냐.


 그때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먼저 눈물이 줄줄 흘렀고, 이후 무수히 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메웠다. 내가 그렇게 못생긴 얼굴인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겉모습만 보고 그런 말을 뱉을 만큼 못생겼나. 그렇다면 못생겼다는 기준은 뭘까. 빻았다? 빻았다는 것의 기준은 뭐지. 빻은 거랑 못생긴 건 얼마나 다른 거지. 내가 안경이라도 벗고 다녔으면 뭐가 좀 달라졌을까. 화장을 좀 더 진하게 했더라면?


 질문에 계속해서 답을 단다. 답을 알면, 내가 좀 덜 빻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해결된 질문은 다른 형태의 질문으로 다시 떠오른다. 음. 이게 어떤 기분이냐 하면. 움츠린 몸이 간신히 들어가는 네모난 상자 안에 갇힌 것 같다. 그 작은 상자 안에는 질문이 적힌 풍선들이 가득한데. 해결될 때마다, 풍선이 ‘팡!’ 소리를 내며 터진다. 힘껏 터지는 풍선을 피할 공간이 없어, 실눈을 뜬 채로 따가운 폭발을 계속해 감당하는 기분이다. 답을 안 달면,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풍선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것이 맞는 답인가? 그렇지 않다. 그래봤자, 내 머릿속에서 나온 답들이다. 결국엔 돌고 돌아 제자리다. 찢어진 풍선들로 상자가 채워졌을 때쯤 깨달았다.


 ‘답이 없는 질문에 부딪히고 있었구나.’

 

 못생겼다는 기준은 어떻게 정할 것이며, 못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누가 이 질문에 걸맞은 정확한 답을 말해줄 수 있을까. 없다. 아무리 답을 달아봐야, 답이 없는 질문이었던 거다. 나는 하나고, 남은 다수다. 나의 기준은 하나일 수 있으나, 남의 기준은 하나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기준에 맞춰야 하는가? 이건 답이 명확한 질문이다. 나는 나의 기준에 맞춰 나를 보기로 했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면, 난 예쁜 사람인 거다. 무례하게 얼굴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내 기준에서 마음도 얼굴도 못난 놈이다.


 생각해 봐라. 덜 빻은 얼굴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말을 내뱉는 사람의 수준이 어떠하겠는가. 요즘은 겉만 보고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런 아리송한 세상에, 자신의 무식함을 순수하게 드러내 주는 사람이라니! 오히려 티를 내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그러니, 함부로 얼굴을 평가하는 사람에게 말해보자. 아주 고오~맙다. 이 못생긴 자식아!



작가의 이전글 못 사요, 다홍치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