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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 Apr 01. 2024

열정 패기!

앞으로 내 목표는 ‘열정 패기’이다!


 하여간 뭐든 목숨을 거는 성격이 문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이게 내 열정의 모토였다. 무슨 특전사도 아니고, 하여튼 나라는 자식! 열정이 많다. 아니지, 많은 게 아니라 과하다. 어느 정도로 과하냐 하면, 스스로 아픈 줄도 모르고 병을 키우기까지 한다.

 꼭 통과하고 싶었던 시험이 있었다. 내 빡빡한 인생 스케줄에 꼭 필요한 시험이었다. 그래서 간절했다.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도서관의 불이 켜질 때부터 꺼질 때까지 공부했다. 외우지 못하면, 외울 때까지 적고 또 적었다. 밥도 굶고, 커피만 들이켜면서. 가끔 나의 지능을 의심하긴 했지만, 조금씩 사라지는 빨간 빗금들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또 떨어졌다. 짓밟히면 일어나길 여러 번. 힘이 빠졌다.


 시험에 또 떨어지고 온 날,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제대로 공부한 거 맞아?’ 그때 깨달았다. 세상은 보이는 것만 믿는구나.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의심하기 쉬운 성질을 지닌다. 그래서 의심을 받은 것이다. 그들의 바둑판 속에서 나는 그저 통과/불통과 그 사이에서 놀아나는 실패한 검은 돌인 거다. 그들의 물음에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나는 아팠다. 몸도 마음도. 그럼에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손에서 연필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몸이 더 망가져 갔다.

 뻑 하면 열이 나고, 편도가 붓고, 다래끼가 났다. 한 주는 이비인후과, 또 한 주는 내과, 그리고 안과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옮겨 다녔다. 그리고 잠이 드는 순간까지 불안해했다. 이번 시험이 올해 마지막 시험인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불안이 밤을 삼키면, 뜬 눈으로 도서관을 갔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시험 일주일 전, 열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시험을 앞둔 일주일 내내 공부를 못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공부도 못해서 서러운데, 거울에 비친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리고 안쓰러워서.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거울 속 내게 말했다. 넌 아직 젊잖아.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다음도 안 되면 나중에 하면 되지. 세상의 속도에 맞춰 조급해지지 말자. 너무 아파도 하지 말자. 결국 그 모든 걸 해내는 건 ‘너’ 일 테니까. 네가 너를 믿어주자. 아프면 쉬자. 그래도 돼. 괜찮아.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시험을 치르러 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붙었다. 시험을 통과해서 너무 기뻤다. 기뻤는데, 슬펐다. 금세 슬퍼졌다. 성공은 고통을 동반한다고 하지만, 너무 아팠으니까. 조급해하며 달려온 날들이 후회됐다. 이렇게까지 망가져 가면서 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나를 좀 더 아끼고 사랑하면서 할 수는 없었을까. 아프면서 이룬 성공인데도 기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다. 날 사랑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명확해서. 그래서 다짐했다. 이 열정을 나를 사랑하는 데에 쓰기로.

 아직 어린 나는 아직도 열정을 조절하는 데 미숙하다. 간혹 가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열정이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요즘에는 억누르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놈의 열정을 패버려야 하나…. 아무래도 열정 이 녀석, 손을 좀 봐줘야겠다. 앞으로 내 목표는 ‘열정 패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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