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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 Apr 18. 2024

꼬인 인생 풀지 않기


 꼬인 인생은 풀린다! 한때 그런 명언을 보며 마음을 다잡은 적이 있었다. 그래그래. 풀릴 거야. 옳지 풀린다‥ 풀린다…?. 아‥ 안 풀린다…. 안 풀리는데? 어라. 분명 꼬인 인생은 풀린다고 했는데. 에라이 또야 또! 명언 폭격기에 또 당했다. 하긴 내 인생이 무슨 두루마리 휴지도 아니고, 술술 풀리긴 뭐가 풀리겠나.


 내 인생은 처음부터 아주 단단히 꼬였었다. 내 이름 ‘민서’는 온화할 민(旼)에 용서할 서(恕)라는 한자를 쓴다. 나는 이 이름 덕분에 따듯하고 부드럽게 용서하는 삶이 가능하긴 개뿔. 용서할 일이 더럽게 많아서 열받아 죽겠다. 뭐 온화한 용서? 그런 건 절대 안 된다. 다들 ‘용서는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오~’하는데. 답답하다. 야 이 새끼야, 그러면 용서하는 방법이라도 알려주던가! 라며 외치고 싶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니. 물론 나를 위해, 내 삶이 덜 불행해지기 위해.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게 참 어렵다.


 수년 전의 상처는 잊혔다가도 두더지처럼 쏙 튀어 오르고. 꿈속에 불쑥불쑥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그러한 불편한 감정에 용서는커녕 불행하기만 했다. 그래서 언젠가 꼬인 인생도 술술 풀릴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불확실한 미래에도 어딘가에 행복은 있을 거라 달래가면서 살았다. 허허. 아주 불행하게도 그런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달랜다고 아기가 울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건 그저 거지 같은 현실을 버티기 위한 지독한 자기 합리화였던 거다. 우울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꼬인 거, 굳이 풀어야 하나?”


 아니 그렇지 않은가. 안 풀리겠다고, 아주 그냥 단단히 꼬여있는 걸 무슨 수로 풀겠는가. 그러니 자자, 풀겠다고 애쓰지 말고! 인생을 아주 길고 긴 줄이라고 생각해 보자. 어떤 시발X놈 때문에 상처도 받고, 세상에 배신감도 들고! 그러다 보면, 인생은 또 꼬일 거다. 근데 꼬여봤자, 그저 매듭이다. 꼬였다고 해서, 인생이 호로록 타들어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묶이는 것. 그게 전부라는 것이다. 마음은 피부처럼 여리지만, 피부처럼 회복 능력이 빠르질 않다. 꿰맨다고 해도, 꿰매어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풀려고 백날 노력한들, 그게 풀리겠는가!


 우리 집은 텐트를 칠 때 사용하는 얇은 로프를 빨랫줄 대신 쓴다. 갑자기 웬 빨랫줄이냐고? 다름 아닌 그 로프에는 무수히 많은 매듭이 있다! 그 매듭 사이사이로 옷걸이에 빨래를 널어 걸어두는 거다. 만약 매듭이 없었다면, 꼬여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빨랫줄은 가운데로 축 처지고, 옷걸이가 한 곳으로 왕창 몰릴 거다. 그럼 빨래는 마르지 않고 쿰쿰한 냄새나 풍기겠지. 이렇듯 꼬인 매듭도 필요한 순간이 있다. 고통은 성장을 동반한다고 하지 않는가. 꼬인 매듭을 인생의 수많은 굴곡 위에 묶이는 ‘변곡점’이라고 생각하자. 그 지점에서 멈춰 성장하고, 숨을 고른 뒤 다시 세상에 매달리자. 그렇게 매달려 있다 보면, 언젠가 그 매듭을 잡고 올라갈 날이 올 거다. 매듭이 없으면 없을수록, 미끄러지기 쉽지만. 매듭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르기 쉬울 테니까. 그러니, 당당히 외치자.


인생아~ 네가 아무리 꼬여봐라, 내가 풀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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