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지 않던 쨍쨍했던 여름이 처서를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돈다. 매미 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귀뚜라미 울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아이의 여름방학도 기약 없어 보였는데 한 달의 시간이 여름 지나가듯 아쉽게 끝을 맺었다.
3학년 올라와서 한 학기를 뭔가 부족함이 많게 끝내고 여름방학을 맞이하면서 2학기 전까지 방학 동안 구멍 난 부분 부지런히 메꿔야 한다는 조바심이 컸다. 3학년부터는 1, 2학년 때만큼 조금 모자라도 이해되는 학년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방학 앞두고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도 아이의 아쉬운 점들이 많이 느껴져 불안했다.
올 여름방학에는 휴가다운 휴가는 가지 않았다. 근교 수도권에 일정이 있으면 그 근처에 숙소를 잡아 1박 2일 정도 머무르는 걸로 휴가를 보냈다. 날씨도 덥고, 여행비도 부담되고, 직장일을 여러 날 빼기도 어려워서 굳이 계획하지 않았다. 여름방학 끝무렵 수원에서 1박을 했다. 다음날은 광복절이었는데 겸사겸사 아이들에게 광복절도 상기시킬 겸 수원의 역사유적지를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화성행궁 하면 정조대왕이지만 수원의 시민들이 3.1 운동을 위해 만세 함성을 부르짖은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화성행궁을 둘러보면서 두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뭐가 이리 많은지 '얘들아, 이것 봐봐.' 하며 크게 관심 없어하는 아이들 주의를 겨우 붙들어가며 설명을 했다. 조금이라도 더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은 아이들보다 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열개 말한 것 중에 한두 개는 주워가리라 믿으며 포기하지 않았다.
한참 보는데 첫째가 그만 나가자고 툴툴대면서 화성행궁 앞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겠다고 떼를 썼다. 나는 아직 덜 봤으니 다 보고 갔으면 하는데 아이가 짜증을 낸다. 사실 화성행궁 오기 전에 바로 옆 수원시립미술관도 둘러본다고 한참 걸었던 후라 짜증을 낼 만도 했다. 아이들보다 내 욕심이 좀 과했나 싶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에서는 아주 저렴하게 자전거 대여를 해주고 있었다. 한 시간에 천 원이면 빌릴 수 있어서 굉장히 착했다. 첫째가 웬일로 두 발 자전거를 타겠다고 했다. 사실 아직 집에 있는 자전거는 보조바퀴도 못 떼고 네 발 자전거로 타는 아이였다. 힘도 부족해서 혼자 네발 자전거를 밖으로 끌고 나가는 것도 힘겨워했었다. 그래서 자전거 한번 타러 나가자면 이만저만 뒤치다꺼리하기 바빠 내가 거절하기 일쑤였고, 아이도 그러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두 발 자전거 탄다기에 '네발로 타!'라고 했는데 아이는 오늘 꼭 두 발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했다. 남편이 아이 원하는 두 발 자전거를 빌려줬다. 남편이 있으니 내가 안 봐줘도 되겠지 싶어 알았다고 타라며 넘겼다.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 못 되어서 태권도 3년을 다니고 품띠도 겨우 땄던 아이였다. 다른 친구들 품띠 준비한다고 한두 달 연습이면 끝나는 걸 6개월에 걸려서 땄었다. 태권도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 우리 아이보다 늦게 시작한 아이들이 먼저 국기원에 가길래 관장님께 '저희 아이는 언제 국기원 갈 수 있나요? 왜 아직 못 가지요?' 하고 물었는데 그때 관장님이 대답하기 참 난감해하신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서야 우리 아이 운동신경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아이는 즐겁게 태권도를 다녔고 어째 어째 한번 떨어지고 다시 국기원 시험을 통과해서 품띠를 따는 쾌거를 이루었다.
광장에서 아빠랑 정말 두세 번 연습했는데, 어, 바퀴 두 개가 균형이 잘 잡히는 모습이다. 오늘 어쩐 일로 아이 다리에도 힘이 붙어 보였다. 그렇게 몇 번 아빠가 잡아주고 손을 살짝 떼고 하더니 아빠가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 모르게 아이의 두 발 자전거가 내달렸다. 넓은 광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에 나도 '어! 간다. 간다! oo아 됐어~!' 라며 소리를 질렀다. 한번 감을 잡고 나니 아이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땀범벅이 되면서도 광장 끝에서 끝으로 몇 번을 달렸다. 처음에는 무조건 페달을 빨리 구르기만 하더니 어느 순간 속도 조절도 한다. 또 처음 시작할 때 잡아 달라고 하다가 페달 구르는 시작 위치도 이렇게 저렇게 해보더니 혼자 출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근처에서 막 두 발 자전거를 배우고 계시다는 할머니께서도 '아이고 쟤, 쟤, 탄다. 탄다. 아이고 타네~'하며 아이가 조금씩 해 나가는 모습에 기특하다며 기뻐해 주셨다. 본인은 예순 넘어서 이제 두 발 자전거를 배우신다며 자전거 탈 줄 몰랐다고 넋두리하신다.
아이의 두 발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느린 거일 수도 아니면 그동안 관심이 없어 안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대하는 속도가 아이의 속도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순간을 아이 키우면서 느낀다. 여러 번 경험하면서도 매번 나는 아이를 앞지른다. 인정하고 기다리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동네 친구들이 7살 때 두 발 자전거 떼고 타는 모습에 얘는 도대체 언제 두 발 타려나 싶었는데 결국 해 낸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이 3년이나 조급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반성한다. 결국 언젠가는 해 낼 것을. 나는 뭐가 그리 급한지.
쨍쨍했던 여름 방학. 우리 아이는 두 발 자전거 타기를 성공했다. 아이의 작은 성공을 크게 칭찬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