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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ana Apr 26. 2023

조킹

 저번주부터 아침 산책을 나가고 있다. 오늘이 5일째다. 일을 그만두게 되니 출근준비에 아이들 등교 준비에 전쟁 같았던 아침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 등교시키고 나면 내 할 일 사라져 버린 것 같아 허전하고 허무해졌다. 그냥 잠옷입은 채 그대로 아침 시간을 보내자니 한없이 위축되는 것 같았다. 일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워서 시간만 흘려보낼 것 같아 뭐라도 해야 했다.


 길게 살진 않았지만 이제까지 만나왔던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보았다. 기대했던 자기 성취기준을 맞추지 못해 그대로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친구, 연세 드셔서 점점 청력을 잃으면서 주변사람들과 대화가 어려워지니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해 버린 어르신 등등. 그런가 하면 80세 가까이 연세가 드셨음에도 수십 년 요가로 건강을 지키시며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어르신, 암에 걸려 1년 넘게 요양병원 생활을 하고도 조금씩 일을 늘려가며 재개하신 지인 등등. 삶의 기로에서 본인의 선택에 따라 몇 년 후의 모습이 달라지는 주변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었다.


 그동안 직장, 집만 오가며 하루하루 살기 바빠 잘 챙기지 내 몸뚱이부터 억지로 움직일 거리를 찾아야 했다. 마흔을 넘기고부터는 급속히 근력이 떨어지고 혈액순환도 안 되는 것이 느껴졌다. 재작년 겨울부터는 유난히 노인내처럼 추위를 탔다. 봄이 되어서 날도 풀렸는데 나는 아직도 목폴라를 입고 조끼를 걸친다. 운동에 취미도 없고 짬 내서 몸 챙길 시간도 없다는 핑계로 내 몸 하나 안 챙겨서 그런 걸까. 만성피로로 몸에 기력이 뚝 떨어지는 날이 계속되니 오히려 친정 엄마께서 약국에 물어 비타민 B 챙겨 먹으라며 사다 주셨다. 


 걷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첫날 아침 6시에 간단히 세수만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집 근처 공원 호수까지는 갔다가 돌아오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근력이니 에너지니 모두 바닥을 찍고 있어서 괜히 무리하게 달린다던지 너무 멀리 목표를 세웠다가는 오늘 하루 나갔다가 그대로 포기할 듯싶었다. 전날 읽은 책에서 무리한 운동으로 지레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문구를 보고선 걷기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걸음을 내디뎠다.


 첫날은 그냥 걸었다. 엊그제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잊고 싶었는데도 그냥 떠올랐다. 30분 정도 걸으니 주변의 꽃과 나무가 보였다. 

 둘째 날도 걸었다. 공원까지 도착하니 운동기구들이 조금 보였다. 걷는 동안 잡념이 그대로였지만 운동기구를 보자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팔도 돌리고 자전거 타기도 해 보았다. 다시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내 앞에 'Korea Air Force' 후드티를 걸친 여자가 보였다. 비슷한 시작점에서 걷기 시작했는데 10m, 20m, 50m... 점점 거리가 벌어졌다. 분명히 똑같이 걷고 있는데 왜 벌어질까 생각했다. 따라잡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걸음에 속도를 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몸에서 혈액이 도는 느낌이 들었다. 혈액이 도니 내내 식었던 몸에서 살짝 땀이 나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맴돌던 감정소모성 생각들이 사라져 갔다. 그저 조금 힘을 내서 빠르게 걷는 발걸음에 집중하게 됐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 그거 조킹이야! 파워워킹! 책에서 봤어"

 라고 얘기해 준다. 

 '조킹?' 조깅도 아니고 조킹?

 잘못 말했나 싶어 검색해 보니 이시형 박사가 만든 합성어라는 기사가 보였다. 조깅과 워킹을 합친 말이었다. 종아리가 뻐근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둘째 날 이후 어제까지 나는 조킹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작심삼일은 다행히 지났다. 내일도 성공해야 한다. 아직 5일째지만 조킹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몸에서 기운이 난다. 눈 뜰 때 잠시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일어났다. 벌써 너무 늦었다. 내일 조킹을 위해 얼른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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