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곳 같은 동네에서
어느 추운 겨울날, 울진 여행을 마치고 강원도를 지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와 짝꿍은 강원도 음식(곤드레밥, 막국수, 옹심이 등)을 사랑한다. 서울에서 데이트를 할 때도 10번 중 5번은 곤드레밥이나 시래기밥을 먹는다. 그런 내 짝꿍이 열심히 뒤져서 찾은 곳이 이곳이다.
이곳에 사람이 살까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아승 순 메밀 막국수 집이 있다. 평창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막국수 집이 있는 대화리는 같은 평창이라도 다른 느낌이다.(내가 아는 평창은 올림픽메달플라자가 있는 횡계리와 클래식 축제가 열리는 계촌마을 정도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나온 곳이라고 한다. 방송에 소개된 곳이라고 다 내 입맛에 맞지는 않는 법이라 반신반의하며 들어섰다.
추운 겨울이라 그랬을까. 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괜히 마음이 쓸쓸해지기 시작하는 어중간한 오후였다. 우선은 식당의 따뜻한 바닥과 묘하게 편안한 공간에 마음이 놓였다.
제일 기본인 공이 2인분을 시켰다. 면, 양념과 고명을 따로 줘서 직접 막국수를 만들어 먹는 시스템이었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종류의 막국수를 먹을 수 있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간장막국수부터 먹어봤다. 간장과 기름을 넣고 깨까지 섞어 먹으니 그 고소함에 마음을 놓아버렸다. 이 고소함은 역시 한국의 깨기름들 밖에 낼 수 없다. 이어서 비빔막국수 물막국수 다 먹어봤는데 처음에 먹었던 간장막국수가 가장 담백하고 맛있었다. 꾸미지 않은 막국수의 있는 그대로의 맛이었다. 메밀 면만으로도 게임 끝이다.
살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하나의 음식도 이 집 저 집에서 먹어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기본에 충실한 맛'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단순하고 소박한 이 맛이 사람들을 이 시골의 작은 막국수집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배를 채우는 것 그 이상의 큰 의미이다. 팍팍한 삶의 어느 순간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 한 자락이 되기도 하고, 겸손하게 나를 가다듬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내가 평창군 대화리에 왔었다는 것은 잊을지라도 여기서 이 막국수를 먹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고집스럽게 이 맛을 지켜오셨을 주방장님의 노력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양념을 제외한 모든 고명과 면을 기분 좋게 먹고 평창군 대화면 대화리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주말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조용하다. 여전히 너 여기서 살래?라고 하면 시골을 좋아하는 나라도 망설일 정도의 조용한 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마을이 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아승 순 메밀막국수라는 맛있는 막국수 집이 있다. 나는 가끔 이곳이 그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