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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Jun 07. 2023

포기가 제일 쉽다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난 며칠은 모두에게 여유를 가져다준 연휴였을 것이다. 연휴의 시작인 금요일 새벽, 둘째 아이는 아빠와 울진으로 내려가 전국테니스 시합을 치렀고 나는 서울에서 경기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국 테니스 대회이기에 실력을 비교할 수 없는 쟁쟁한 선수들이 출전하고 예선전 형식의 리그전에서 보기 좋게 패배하고 다음날 있던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16강을 넘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순위와는 상관없지만 선수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치러진 패자전에서 타임 브레이크까지 넘어가며 한 시간 반 만에 첫 승을 거뒀다.





  패자전이었지만 전국테니스대회에서의 첫 승이고 타임 브레이크까지 넘어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둘째 아이의 의지가 대견했다. 

  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이고 학교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기에 일찍 시작한 아이들이나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는 아이들을 따라가려면 그들보다 더 많은 연습과 시간이 필요할 게다. 

  시합 때마다 자기보다 훨씬 높은 순위의 아이들을 만나 매번 지면서도 안 하겠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이에게서 인내심과 끈기를 본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목적의 크기에 맞게 충분한 시간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엄마인 나는, 부모인 우리는 이 길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두렵다. 때론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됐건 연휴의 마지막 날인 어제,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초밥을 먹고 큰 아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갔다.

  초밥을 먹으며 즉흥적으로 선택한 영화는 "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 

  줄거라와 액션에 대한 나의 총평은 다 필요 없고 마지막 결투신에서 미라지도 부상당하고 남자 주인공인 노아도 더 이상 싸움의 승산이 없다며 포기한다. 

  노아가 포기하는 그 순간 무전으로 전해 온 동생의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 메시지에 미라지도 정신을 차리고 결국 유니크론과의 전쟁이 승리로 끝난다. 

  전개가 억지스럽기는 했지만 나에게 이 영화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금은 식상할 수 있는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되돌이켜 생각해 보니 난 지금껏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남에게 양보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겸손한 듯, 절제하듯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것처럼, 왠지 그렇게 하는 게 선량하고 착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가질 수 없는 것에 욕심내면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건 사실 포기하는 게 제일 쉬웠기 때문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 가득한 욕심과 기대는 잊어버린 채 그렇게 살았으니 여기밖에 오지 못했겠지.

  자신에게 욕심을 내고 더 열심을 내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닌데 난 왜 그랬을까?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면, 누구도 내 선택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면 부딪혀 봐야 한다. 부딪쳐서 으깨지더라도, 내 외면이 박살 나더라도 용기를 내야 한다. 

  내가 행동해야 그 일의 결과를 알 수 있고 그래야 아이들에게도 떳떳할 수 있다. 

  실패한 후에 뒤따라오는 손실보다 망설이기만 하다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더 크게 남을 것임을 알기에...

  질 것 같은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연장전까지 치르며 얻어낸 너의 승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실패를 하며 결국 포기하는 게 제일 쉽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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