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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Aug 23. 2023

그날의 소고기뭇국

이제 와 되돌아보니 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철부지 막내였구나


  이제 와 되돌아보니 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철부지 막내였구나.

  결혼 전 삼십 년 동안 결혼에 대한 환상도, 준비도 고민도 없었다.

  남들은 사랑하는 남자와 좋은 집에서 내가 원하는 살림살이를 사서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꿈꾼다던데 난 관심도 없었다.

  독신주의자도 아니었지만 굳이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으니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야기였다. 할 줄 아는 음식도 없었고 눈여겨본 가전제품은커녕 식기류도 없었다.

  야근이 잦았던 직업 특성상 저녁 약속이 없는 날엔 내 방에 틀어박혀 저녁 식사를 건너뛰고 아침 식사는 급하게 출근하는 내 입에 넣어주던 엄마의 김+밥이었다.




  그런 나의 혼수 준비는 어땠을까. 바쁜 엄마와 날을 잡아 남대문시장에 가서 하루 만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했고 다른 날은 한복을 맞췄다.

  어느 날은 시어머님 손에 이끌리어 종로에 가서 예물도 맞췄다.

  꿈꾸던 혼수도, 갖고 싶던 폐물도, 생각했던 인테리어도 없었기에 신혼살림이 들어오고 나서 더 뒤죽박죽이었다.

  그즈음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동생은 몇 개월 전부터, 아니 결혼 날짜를 잡기 전부터 좋아하는 스타일로 인터넷쇼핑을 하며 야무지게 준비를 했는데 그제서야 남대문에서 구입했던 내 살림살이를 보니 촌스럽더라.




  그런 내가 할 줄 아는 음식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떡볶이 하나도 맛깔나게 못 만드는 내가 결혼 후 집들이 음식을 준비하는데 엄마 같은 큰언니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래도 국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소고기뭇국을 끓이기로 했다. 언니의 주도하에 끓이기 시작한 소고기뭇국에서는 삼십 년 동안 먹어온 그 맛이 안 난다.

  엄마는 도대체 뭘 넣었던 걸까? 끓여도 끓여도 내 입에는 맹탕이었던 그날의 소고기뭇국.

  그 뒤로도 11차례 집들이를 했다. 정성은 들어갔지만 여전히 맛은 없었겠지. 신혼이 다 그렇지 뭐.




  결혼 17년 차, 이제는 만만한 국이 소고기뭇국, 소고기 미역국, 콩나물국이다.

  어떻게 끓여도, 급하게 끓여도 소고기만 들어가면 맛있다. 아니 심지어 소고기 없이 버섯만 넣고 뭇국을 끓여도 맛있다.

  17년 전, 아침밥도 먹지 않고 출근하던 막내딸은 가족을 위해 아침식사를 차리고 국 하나 끓일 줄 몰랐던 철부지 막내동생은 이제 맛있게 소고기뭇국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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