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전주 이야기
전주로 여행 온 사람들이 돌아갈 때 많이 사가는 것이 있다. 바로 풍년제과의 초코파이다. 풍년제과는 이름은 같지만 서로 다른 계열의 두 곳이 있다. 관광객들이 길게 줄 서는 PNB 풍년제과와 조용히 동네의 시간을 지켜온 또 다른 풍년제과다. 두 곳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뿌리는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풍년제과의 역사는 내가 태어나기 십 년 전인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 강정문 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제과점에서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해방 후 지금 위치한 관통로 사거리에 작은 제과점을 열고, 초창기엔 자전거에 전병을 싣고 전북 곳곳을 돌며 팔았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지금의 브랜드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월급날이면 커다란 봉지에 풍년제과의 단팥빵, 크림빵, 찹쌀떡, 센베 과자를 담아 오셨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없어져도 모를 만큼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풍년제과에서 맛본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그 시대 최고로 고급스러운 간식이었다. 일본에서 들여온 소프트아이스크림 기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고, 당시 제과점에 설치된 에어컨 때문에 대학생들의 미팅 장소로도 인기를 끌었다.
관통 도로 사거리에 자리한 풍년제과의 달콤한 냄새는 마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향기처럼 거리를 채웠다.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풍년제과 주변에는 고려당, 아리랑 제과 등 여러 빵집이 있었지만, 이제 남은 것은 풍년제과 하나뿐이다.
풍년제과는 가족 기업으로 세대교체 과정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창업자의 사위 측이 ‘풍년제과’라는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이에 본가와 법적 분쟁이 벌어졌다. 법원은 기존 풍년제과가 오랜 기간 상호를 사용해 왔다는 이유로 상표권 등록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분쟁은 종결됐다. 이후 본가 계열은 별도의 상표를 등록하며 ‘PNB 풍년제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PNB 풍년제과는 3대째 운영되고 있다. 창업자의 전통 제과 기술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제품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대표 상품인 수제 초코파이는 하루 수천 개가 팔릴 만큼 전주를 대표하는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전병, 붓세, 양갱 등 전통 제과도 여전히 브랜드의 중요한 축이다. 특히 풍년제과의 땅콩 전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다. 한 번 맛보면 쉽게 끊을 수 없는 고소한 맛이다.
다른 풍년제과 역시 지역 기반의 제과점으로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국산 밀을 활용한 제빵이나 지역 사회와의 협업 등 고유한 색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25년에는 보훈지청과 협력해 ‘광복초코파이’를 출시하기도 했다. 판매 수익의 일부를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기부하며 지역 사회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
비록 두 곳의 풍년제과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전주의 풍년제과는 여전히 하나의 기억을 공유한다. 전주 시민들에게 풍년제과는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전주 골목마다 스며 있던 달콤한 향기와 함께한 지역의 역사 자체다. 그리고 긴 시간의 흔적은 지금도 두 개의 간판 아래 나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사실 풍년제과의 초코파이는 어린 시절의 간식은 아니었다. 2007년 이후 전주 한옥마을이 관광지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 메뉴다. 어른이 되어서 먹어본 풍년제과 초코파이 빵은 부드럽고 촉촉해 입안에서 살살 녹고, 속의 크림은 풍미가 진하면서도 과하게 달지 않아 느끼하지 않았다. 겉을 감싸고 있는 초콜릿은 달콤하면서도 풍미가 있고 케이크, 크림, 초콜릿 각 부분의 질감이 살아있는 수제 방식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풍년제과 주변을 걷다 보면, 어린 시절 아버지 손 잡고 빵집을 지나던 기억이 떠오른다. 달콤한 향기와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져 마음속에 작은 행복감이 날아든다. 풍년제과는 오랜 시간을 담고 있는 전주의 작은 보물이다.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