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전주 이야기
숨겨둔 것처럼 몰래 다니는 현지인 맛집이 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왱이집의 긴 줄과 분주함에 지친 전주 사람들은 종종 남부시장 안의 운암 콩나물국밥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전주 천변에 주차하고 남부시장 골목을 따라 들어서면, 서너 평 남짓한 작은 식당이 나타난다. 입구는 좁고 테이블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사람 몇 명이 들어서면 금세 공간이 가득 찬다. 하지만 좁음이 오히려 아늑하다. 벽에는 바래고 오래된 메뉴판과 신문 기사 스크랩이 붙어 있고, 천장에는 낮은 전등이 은은한 빛을 뿌린다.
이 집의 국물은 왱이집과 또 다른 매력을 가진다. 멸치로 우려낸 육수에 묵은 김치를 넣어 끓이는 방식인데, 깊고 진한 맛이 국물 속에 스며 있다. 뚝배기에 토렴 한 콩나물국밥 위에 주인이 도마 위에서 ‘다다다다’ 소리를 내며 막 다진 마늘을 넣어주는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한다.
김치와 멸치 육수, 짤막하면서도 아삭한 콩나물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흔히 말하는 ‘집밥의 맛’을 넘어, 시장이라는 공간이 가진 투박하고 정겨운 정서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다.
좁은 테이블에 앉으면 옆 사람과 어깨가 살짝 부딪친다.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국물을 한 숟가락 뜨면, 옆 테이블에서 숟가락이 그릇과 부딪히는 소리, 국물이 끓는 소리, 주인의 바쁜 손놀림과 마늘 다지는 소리까지. 모두가 살아있는 풍경으로 느껴진다. 시장 특유의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 국물에서 올라오는 김이 뒤섞이며, 작은 식당 안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반찬은 단출하다. 깍두기와 묵은 김치, 오징어 젓갈, 새우젓이 전부지만, 들기름에 갓 구운 넓적한 김을 마음껏 올려 먹을 수 있다.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담긴 수란 위에 김을 많이 부숴 넣어 먹거나, 콩나물국 속에 넣어 먹으면 간단한 조합만으로도 큰 만족이 찾아온다. 김치와 마늘, 콩나물, 국물, 그리고 김 한 장이 만들어내는 맛의 완성도는 소박하지만 강렬하다.
젊은 손님들은 시장 골목의 구질구질한 풍경과 좁은 식당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운암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세상 다 가진 듯한 배부름과 마음속의 여유가 피어오른다.
식당 안은 좁지만 언제나 생기 넘친다. 주인아줌마가 도마 위에서 마늘 다지는 소리에는 분명한 리듬이 있다. 북처럼 둥둥 울리지는 않지만, 나무 도마와 부엌칼이 만날 때 들리는 박자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하다. 단정하고 또렷한 소리가 식당을 활기차게 흔들어 놓는다. 그 소리에 맞춰 손님들은 자연스레 국밥을 먹으며 시장의 활기를 느낀다.
왱이집처럼 외지인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주로 즐겨 찾는 이곳은, ‘진짜 콩나물 국밥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관광객의 시선과 무관하게 묵묵히 한 그릇의 국밥을 비워 내고, 그 한 그릇으로 사람들의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운암 콩나물국밥집이 가진 진짜 매력이다.
좁지만 따뜻한 공간, 소박하지만 깊은 맛, 시장이라는 소박한 배경 속에서 한 그릇을 비우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넉넉한 웃음이 번진다. 나와 남편은 정겨운 시장 풍경의 정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운암 콩나물 국밥을 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