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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해 Aug 03. 2020

내 고향 서울엔

검정치마 <내 고향 서울엔>

"고향이 어디에요?"


   “서울이에요”


    어쩐지 허무한 대답이다. 질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기분. 고향에 관한 질문은 부산, 광주, 대구처럼 지역 특색이 강하거나 제주도, 해남처럼 멀고 바다와 가깝거나 아니면 정말 들어본 적도 없는 어디 있는지 조차 헷갈리는 지역을 말해야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서울’은 고향 대접을 받지 못했다. 눈 뜨고 코베이는 곳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서울깍쟁이가 돼버렸다. 세련되고 곱게 자랐을 것 같은, 도도하고 말수 적은 서울에서 온 아이. 정작 나는 그런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피 하우스 빌라의 201호. 회색 철문을 열면 우리 집이 나온다. 껌껌한 집에서는 인기척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스위치 하나만 눌러도 충분한 불이 집을 채워준다. 신발을 벗고 방바닥에 올라서자 늦가을의 냉기가 스며들었다. 조여오는 스타킹을 벗어 똬리를 만들어 놓고 치마 지퍼를 내려 그 위에 올려두었다. 겉옷과 블라우스 단추를 빨리 풀고는 브라를 벗어버렸다. 죄어오는 모든 것을 벗어던져 자유의 몸이 된 듯했다. 바닥에 널린 커다란 티셔츠를 입고 침대로 다이빙하듯 누웠다. 하지만 아직 화장을 지우지 않았기에 베개에 얼굴을 비빌 수는 없었다. 나는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보자 형광등에 눈이 부셨다. 나는 눈을 조그맣게 뜨곤 손을 뻗어 방바닥에 놓인 노트북을 들어 올려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며칠 전 다운로드한 영화를 틀었다. 임용고시에 떨어진 주인공은 도시에 지쳐 시골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시골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음식을 해 먹으며 위로를 받았는데, 요리하고 밥을 먹는 장면을 보니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점심에 남긴 돼지고기 몇 점이 아쉽다가 부엌 찬장에 놓인 컵밥들이 생각났다. 전자레인지에 2분 돌리고 다시 노트북 앞으로 가져가 쓱싹쓱싹 비볐다. 화면 속 싱싱한 야채들의 향연과는 비교되는 초라한 모양새였다. 내게 고향의 음식은 겨우 이런 것일까, 고향에 돌아와 먹는 밥은 어쩐지 더 외롭기만 했다. 창문을 조금 열어 바람이 들게 했다. 늦가을의 바람이 좁은 틈으로 세차게 들어왔다. 가로등 불빛과 시멘트 건물들 사이 매연 냄새와 사람들의 소음에서 고향의 정취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지치는 곳도 돌아와 쉴 곳도 똑같은 서울이었다. 괜시리 질투가 났다. 고향을 뺏긴, 애초에 내겐 고향이 없는 기분이었다.


   모두의 객지에서 태어난 서울 사람들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모두가 떠나 모여든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어디로 떠나야 할까. 사람들이 돌아가 쉰다는 그곳은 얼마나 좋을까. 꿈이 모여든 내 고향엔 상처만 가득 남아 있다.


    설 연휴가 시작되자 북적거렸던 동네가 조용해졌다. 24시간 불을 밝히던 편의점도 문을 닫고, 혼잡하던 지하철 역사도 조용하기만 하다.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 텅 비어버린 서울은 의문의 바이러스가 퍼져 한순간에 고요해진 것처럼 어딘가 스산하고 쓸쓸했다. 모두가 돌아가 버렸다. 비로소 고향을 누려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깐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언젠가 북적거리는 홍대도 추억이 되는 때가 오면, 검정 치마의 <내 고향 서울엔>을 들으며 고향을 음미해야지. 싸구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음으로 가득한 사거리 포차 거리도, 통유리로 된 에이랜드도, 메세나폴리스도, 불법 주차로 흘러넘치는 자동차도 다 내 고향의 추억이 된다. 온 사람들이 모여들만큼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분명 외롭고 차가운 시간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아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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