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인척 하는 나의 성장기 1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된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사실 만 41세에 엄마가 되고 나서 오히려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자칭, 타칭 효녀였다. K-장녀의 모든 덕목을 갖춘 엄마, 아빠 말이라면 NO해본 적 없는 아이었다. 어릴 때부터 특별히 속썩일만한 일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었다. 특별히 과외, 학원 안다니면서 혼자 인서울대학에 수석으로 갔다. 등록금이 없어서 수석으로 붙은 학교를 갈 수 밖에 없었다. 더 좋은 학교를 갔다면 내 인생 바뀌었을까 하는 물음은 40대가 되어서도 나에게 들러붙어서 나를 괴롭혔다. 대학 다니면서도 용돈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과외며 알바며 대학 생활이라곤 제대로 누린 것 하나 없이 졸업했다. 게다가 담임교수님이 극구 말리는데도 돈 버는게 좋아서 당장 눈앞에 있는 직장을 선택했다. "교수님, 저 이제 생산자 하고 싶어요. 돈 벌고 싶어요."라는 말을 남긴채. 학교를 떠났다.
여러 번 직장을 옮겨다니며 나는 제대로 한달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다. 나 혼자 먹기 살기도 바빴고, 거기에 부모까지 챙겨야 하는 입장이었다. 차라리 이때부터 정해진 금액을 꼬박꼬박 줄걸. 필요할 때마다 찔끔찔끔 줬더니 현재 나의 부모는 그들 스스로 받은게 뭐가 있나 싶어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나는 나의 주제와 분수를 몰랐다. 내 월급은 100만원인데, 300만원씩 쓰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100만원 밖에 없다고, 줄 수 있는 돈이 없다고 하면 그만인데. 내가 100만원짜리 사람이란 게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줄까봐 나는 300만원짜리 월급쟁이인척 했다. 그러면서 빚을 지게 시작했다. 빚은 빚을 낳는다. 빚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빚은 100만원 빌려서 110만원 갚는 구조다. 나는 100만원 빌려서 100만원 갚은 줄 알지만 이자가 녹아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렇게 하다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물론 나의 모든 월급을 부모에게 쏟아부은 것은 아니다. 내 주제와 분수에 맞지 않게 넘치게 그들을 봉양했다는 게 문제였다. 왜 그렇게 인정을 받고 싶었을까? 왜 그렇게 착한 딸이 되고 싶었을까? 처음엔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할 수 없을까봐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다. 여행을 간다던지, 용돈을 준다던지, 운전 기사 노릇을 한다던지. 하자는 건 정말 거의 다 했다.
결혼하고 나니 더 많이 볼일이 생기고 남편까지 끌어들여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잦았다. 그래도 착한 사위 데려온 착한 딸 프레임은 여전했다. 아빠, 엄마가 남편을 대하는 무례함이 극에 달하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게 너무 익숙해서 무례한 건지도 몰랐다.
결혼한지 거의 10년만에 아이를 낳았다. 제왕절개로 낳았는데,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그 때부터 시작이다. 처음엔 엄마도 제왕절개를 했기 때문에 얼마나 아팠을까 공감됐다. 우리 아빠는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인데 엄마 혼자 감당했을 생각하니 짠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해가는 건 그것 뿐이다.
잠시 엄마가 아이를 봐주러 집에 온 2주는 거울치료를 당하는 것과 동시에 엄마에 대한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다. 오직 자기 위주로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을 상대방의 생각, 마음,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한다. 자기가 먹고 싶은게 있으면 그것만 사오고 내가 먹고 싶어하는게 뭔지, 그런건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나는 사실 엄마가 무능력한 아빠를 만나서 고생한 세월이 길어서 엄마에게 항상 짠하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이 때부터 깨졌다.
아이가 50일만에 아파서 입원하게 되었다. 엄마한테 감기를 옮은게(의사 피셜), 폐렴까지 되어서 거의 10일을 입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는 병원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집에 가게 되고, 종종 통화를 했는데 이 일이 별일 아닌 듯 굴었다. 50일짜리가 산소마스크에 링거를 꽂고 있는데 별일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그거 별일 아니라던데 라는 말을 50번은 들은 것 같다. 나는 엄마에게 20대 이후에 화낸 적이 없다. 그 때 누가 그딴 소리를 하냐고, 별일 아닌데 입원까지 하고 이 난리를 치고 있냐고, 대체 뭔소리 하냐고 화를 냈다. 엄마는 그냥 이 일을 뭉개고 싶은거다. 자기 탓도 되고 싶지도 않고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기 형제들 말만 듣고 있는거다. 엄마는 이모들이랑 너무 가까운 게 항상 문제였는데, 나에게 돈을 빌려가서 이모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은 경우가 허다하다. 엄마에게 가족은 내가 아니고 이모였다.
아빠는 평생 돈을 벌지 않았다. 아예 안벌었다고 볼 수 없겠지만, 나의 생에 90%는 돈을 벌지 않았다.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 겨우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그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 하지 않고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허다했다. 어릴 때니까 당했지,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랄까. 나에게 돈을 달라는 소리를 뻔뻔하게 하는데도 왜 나는 멍청하게 그걸 주고 앉았을까. 그냥 자랑스럽고 돈 잘 버는 딸이 되고 싶었나보다.
아이를 낳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같이 이기적인 사람도 속까지 뜯어고쳐서 아이를 위해 무조건 최선을 다해 희생한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게 부모인걸 이제서야 알 게 된거다. 평생 요리를 하지 않았어도 이유식을 전부 다 해먹이려고 노력을 한다거나, 원래의 나를 버린지 오래다.
그러니 부모가 이해가지 않기 시작했다. 자식을 위해서 어떤 것도 희생하거나 바꾸지 않은 아빠, 그런 아빠를 감싸고 본인은 본인대로의 삶을 지속했던 엄마.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거나 주고 싶은 마음 보다는 무엇을 받았는지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만 가득한 부모는 부모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부모가 끔찍하게 싫어졌다. 그동안 줬던 용돈, 호의 전부다 거둬들였다. 그랬더니 들은 말은 "변했다. 우리는 뒷전이 되었다" 라는 말이었다.
부모가 되면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는 건 그 희생을 해봐야 희생으로 내가 이렇게 컸구나를 알게 되는 거겠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는데, 그냥 이 세상에 태어나 겨우 어른이 되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유도 자신이 없어서였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두려웠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다 해내는 나를 보면서 이런게 부모구나 싶었다. 그러니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그렇게 어린 나에게 함부로 대했는지. 왜 그렇게 내 것은 자기의 것처럼 함부로 썼는지. 상세하게 적으면 수도 없을 사건들은 뒤로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것도 해주고 싶지 않아졌다. 안하고 있으니 훨씬 마음이 편하다.
드라마에서처럼 아빠는 딸에게 끔찍한 사랑을 베풀고, 엄마는 항상 푸근한 존재인 건 나에겐 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