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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비번을 누르고 들어온다고?

육아일기인척 하는 나의 성장기 2

by 김유정

시댁 옆으로 이사 온 뒤에 우리집 비번을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등과 공유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모두 비번을 누르고 그냥 들어온다.


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이 것에 대한 불평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줄 알거다. 사실 나는 이게 전혀 상관 없다. 맘카페나 다양한 여성 커뮤니티에서 보면 시어머니나 친정 어머니가 비번을 알거나, 그걸 누르고 들어온다거나 하는 거에 대해 자주 논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비번 문제에 다들 날이 서있는 걸 안다.


시댁 식구들이 비번을 알고 비번을 누르고 들어온다 해서 나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오는 법은 절대 없다. 정확한 시간은 몰라도 대략 오는 시간을 알고 있고, 아이를 돌보고 있을지도 몰라서 기다리게 하느니 그냥 들어오는게 더 편하다는 결론이다.


지난번 내 글을 읽었다면 알다시피 나는 부모가 되어서 부모를 더 이해하지 못한 타입의 사람이다. 부모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을 우리 부모는 하지 않았다. 이러면서 동시에 얻어진 것이 있는데, 평범한 부모라면 자식에게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시댁 어른들에게 존경심이 생겼다. 우리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정말 밑바닥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온 분들이다. 정말 가게 한 켠에서 박스 깔고 쪽잠을 청하면서 열심히 일해 아이들을 돌봤다. 하루종일 일하고 와서도 시어머니는 아이 셋의 도시락을 직접 싸줬고, 자식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할 듯 희생을 많이 하셨다.


엄마가 되어보니 이유식 아침, 점심, 저녁 해서 먹이는 것도 정말 미칠 것 같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원래 요리도 싫어하고 하고 싶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해서 이유식을 만들고 있는 과정부터 너무 죽을 것 같이 싫고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먹을 것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만들고 먹인다. 그런게 부모구나 싶다. 내가 죽을만큼 싫어하는 일도 하게 만드는 힘. 결혼한지 10년차지만 명절에나 잠깐 보기 때문에 그동안 시댁 어른들과 데면데면 했던 것도 사실이다. 남편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알고 있었고, 어머니의 희생에 대해서도 아버지의 헌신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앞섰고, 특히 시어머니의 희생에 대해 말할 때는 속으로 나는 그렇게 못하는데? 강요하는건가? 라고 비꼬아서 들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시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은 아들 내외를 보면서 얼마나 속이 탔을지. 그런데도 말도 못 꺼내고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는지. 아이를 낳고 난 후 처음 맞는 남편 생일에 어머니 몫으로 먼저 미역국을 담아 남편을 통해 전달했다. 멋진 아들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희생한 부모만 부모고, 희생하지 않은 부모는 부모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닌가?) 부모니까 그냥 부모니까 나에게 어떻게 했더라도 그냥 핏줄이니까 잘해야 한다는 말이 개소리라는 생각이 든다는거다. 부모와 자식도 하나의 인간관계이고 기브앤테이크가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배려하지 않으면서 바라기만 하는 관계를 누가 이어나가고 싶겠는가.


지금도 아이를 보고 싶어도 내가 불편할까봐 자주 오지도 못하신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피곤하더라도 오시라고 하게 된다. 솔직히 같이 있는게 편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먼저 배려해준다고 느껴지니까 나도 더 배려하고 싶어지는거다.


비번을 알면 좀 어떻고, 그걸 누르고 그냥 들어오면 좀 어떤가. 그냥 그 상황만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 현상만 보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부모가 되고 나니 좀 본질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비번 아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서로가 얼마나 배려하는 사이인지가 중요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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