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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성장애, 공황장애, 성인 ADHD인데 엄마가 됐다

육아일기인척 하는 나의 성장기 3

by 김유정

2016년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 있었는데, 애플워치 상으로 심박수가 거의 160-170 가까이 올랐다. 그리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소설여행을 같이 진행해준 편집자님에게 말씀 드렸더니 아무래도 공황장애 초기 증상인 거 같다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실용서를 많이 한 분이라 거기서 읽은 증세와 비슷하다는 거였다.


공황장애?


그냥 좀 긴장할 때, 스트레스 받을 때 누구나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을 먼저했다. 근데 그 얘기를 남편에게 전했더니 병원에 가보는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정신과를 찾았다. 이런 저런 질문지와 상담 등을 통해 나의 진단명이 나왔다.


양극성 장애, 공황장애, 성인 ADHD. 이야 종합선물세트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부터, 혹은 더 어릴 때부터 양극성 장애, 공황장애, ADHD를 겪어왔던 것 같다. 그 땐 그게 그런 증세가 이런 병인지 몰랐으니까 넘어갔는데, 되돌아 보면 그 증세 모두 병 때문에 나온 증상이었다.


내가 처음 정신과 의사에게 한 말은 "사람들 저 이런지 몰라요. 저 사회생활은 잘하거든요."였다. 나는 사회적 가면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이다. 나는 내 속에서 속을 끓이고 들들 볶는 사람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별로 티나지 않았다. 아주 가까운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가 이런지 거의 다 몰랐다. 그걸 알 수 있는 일은 내가 <소설여행>을 냈을 때였다. 주변 사람들이 너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사람이었어? 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나는 쾌활하고 유쾌한 사람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소설여행> 속 우울한 혹은 진지한 나를 보고 놀란 것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밤에 잠을 잘 못 잤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초침 시계는 초등학생 때부터 소리 때문에 쓰지 못했다. 오직 디지털 시계로만. 그것도 지금도 마찬가지. 양극성 장애를 보통 조울증이라 불러서 막 좋았다가 울었다가 하는 줄 아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된다. 에너지가 넘쳐서 허황된 생각을 한다던지, 나는 여기다 ADHD까지 있어서 충동적인 일을 한다던지, 충동 쇼핑을 한다던지 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정신과를 옮기게 되었는데,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종합심리검사 및 전두엽 검사를 하기로 했다. 사실 아이가 없었으면 안했을거다. 아이가 있으니까 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치료도 받고 바꾸고 그러고 싶으니까. 아이들에게 나의 병으로 인해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제일 간절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자극에 아주 예민해서 다른 사람들은 느끼거나 보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고, 지능이 100명 중 5등 안이라서 ADHD가 맞았지만 지능으로 다 커버해서 사회생활이나 학습에서 뒤떨어지는 결과는 얻지 않았다고 했다. 충동성이나 좋아하는 일은 잘 하는데 싫어하는 일은 마구마구 미루는 그런 증상도 약으로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정신과 선생님은 아이가 셋인 여자 의사선생님인데, 육아를 알다보니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내가 자꾸 일을 미루는 것 때문에 자책한다고 하자, 그게 뭐 때문이냐고 물었다. 이유식 제조에 관해서였다.


"원래 요리를 좋아해요?"

"아뇨. 저는 혼자 살 때 인덕션 위에 신발장 놓고 살았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이유식 시판 너무 잘 나온다고 사서 먹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책하지 말라고. 요리를 원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이유식을 하고 아이들은 안 먹고 그러니 쳐지고, 자책하고 악순환이라고 했다.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맞다.


나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 짓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도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게 나를 압박하고 힘들게 해서 쳐지고 또 미루고, 그래서 자책하고 악순환을 만드는데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의 이런 병 때문에 내가 잘 못하는 일이 많이 생길거다. 그럴 때엔 이걸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정확하게 판단해서 깨끗하게 포기하고 잘하는 걸 더 잘해야 겠다. 이유식을 이번주부터 사서 먹이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뭔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직접 만드는 엄마는 좋은 엄마, 사서 먹이는 엄마는 불성실한 엄마라고 내가 스스로 프레임을 씌우고 나를 들들 볶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의 엄마를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메타인지해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걸 주는 엄마가 되어야 겠다. 양극성 장애, 공황장애, 성인 ADHD도 엄마를 잘할 수 있다.


잘하지 못한 것들을 깨끗이 포기하면서 그렇게 엄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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