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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추억상자 - 일본 도쿄

아이에게 전하는 엄마의 여행 1

by 김유정

에필로그

아이의 태명인 봄봄을 사용합니다. 김유정 작가의 봄봄을 떠올리며 지은 태명입니다. 봄에 생겨 가을에 낳은 아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봄봄에게

봄봄이는 이제 막 서는 걸 하고 있어. 이제 걷기 시작하면 얼마나 더 넓은 세상을 보려고 뛰어다닐까. 그러는 동안 엄마는 넘어지지는 않을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겠지. 근데 생각해보면 엄마도 어렸을 때 내가 다 알고 다 할 수 있는데 어른들은 왜 못하게 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그래서 봄봄이에게 너무 제한을 두지 않는 엄마가 되려고 해.


알다시피 엄마는 봄봄이를 낳기 전까지 여행기자, 여행작가로 지냈어. 그래서 많은 곳을 다녔지. 엄마가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감정을 봄봄이에게 전하고 싶어. 엄마가 처음으로 해외를 가본 건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면서야. 당시에 가장 싼 비행기 표를 구하려다 보니 도쿄-시드니 이렇게 경유편을 타게 됐어. 그래서 잠시 도쿄에 머물렀지. 그때는 너무너무 돈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랑 디저트를 사먹었는데도 뭔가 설레고 해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하더라. 삼촌도 엄마랑 똑같이 그 다다음해에 호주에 갔는데 돈이 없어서 도쿄에서 즐기지 못했대. 엄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엄마랑 삼촌이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추억 덧칠'을 하러 도쿄에 같이 갔었어.



추억덧칠. 엄마가 만든 말인데, 안 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덮어서 좋게 남기자는 의미로 추억 덧칠이라고 해. 삼촌이랑 도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돈 걱정 없이 맥주도 실컷 마시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왔더니 어느새 도쿄는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이 되더라.


그 이후로 엄마는 도쿄를 몇번이나 갔는지 셀 수도 없이 갔어. 추억 덧칠 덕분인지 도쿄에 좋은 기억이 많아서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됐어. 그리고 엄마가 소설 속 장소나 애니메이션의 장소를 실제로 가보고 싶었는데, 그런 곳이 도쿄에 많아서 더 많이 가게 됐어.



특히 아빠랑도 여러번 갔는데, 아빠랑 좋아하는 장소는 매번 방문했어. 바로 카페 드 람브르라는 커피숍이야. 아주 작은 커피숍으로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이야. 마치 1960-70년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주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멋진 곳이지. 나중에 봄봄이들과 도쿄를 가게 된다면 꼭 같이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해. 같이 갈 수 있으려면 아직 멀었겠지만.




엄마에게 도쿄가 의미 있는 곳인 건 다른 이유도 많지만 바로 시모키타자와라는 곳 때문이야. 엄마가 20대에 엄청 힘든 일을 겪고 있었는데,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의 <안녕 시모키타자와>를 읽고 힘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야. 모퉁이를 돌면 있는 그 가게만 보아도 안심이 된다는 문구를 보고 바로 그곳으로 갔지. 엄마는 음식으로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는 하지만 단촐한 카레 한접시가 어느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해줄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알았어. 엄마는 그 카레 덕분에 지금까지 잘 견뎌올 수 있었단다. 봄봄이도 언젠가 너무 힘이 들 때 봄봄이를 구원해줄 소울 푸드를 만들어 놓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카레집에서 아빠가 프러포즈도 해서 결혼도 하고 봄봄이를 낳았으니 엄마에겐 그 카레집은 정말 중요하겠지? 언젠가 우리 다같이 카레 먹으러 가자.


사실 엄마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지만, 봄봄이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물론 읽으면 좋은 점이 많으니까, 좋아하고 읽으면 좋겠지만 강요하고 싶지 않아. 책은 누군가가 강요한다고 좋아지지도 읽혀지지도 않거든. 엄마처럼 책에 나오는 장소에 갈만큼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그런 책을 만나면 좋겠다는 마음이야. 그런 것이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거든. 근데 그게 영화거나 애니메이션이거나 게임이어도 좋아. 엄마는 네가 좋은게 많은 취향이 있는 사람으로 크면 좋겠어.


가장 최근에 도쿄에 갔을 땐 엄마가 잠시 프리랜서로 일할 때야. 글로벌 공유오피스를 이용했는데, 그때 우연히 한국인 스태프를 만나 같이 점심을 먹었어. 아직도 SNS를 통해 연락하고 지내고 멋진 사람이라 좋은 영향도 받아. 여행은 참 알 수 없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 해주기도 하고, 그게 좋기도 싫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와 타인의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 그게 낯선 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이런 곳 말고도 엄마가 데려가고 싶은 도쿄의 장소가 많은데! 네가 클 때까지 그들이 기다려줄지 모르겠다. 그럼 봄봄이랑만 간 곳을 추억으로 더하면 되겠지? 앞으로 엄마가 보내는 편지를 재밌게 읽어주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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