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우드 Oct 14. 2022

아이를 등원시키는 효과 빠른 방법

오늘은 무사히 등원하였습니다.

휴직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의 루틴(정해진 일과)이 필요하다.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 따뜻한 밥을 지어 여유롭게 먹고 아이들을 등원시키는 일상을 꿈꿨다.  그 후의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아이를 하원 시키고 신나게 놀다가 저녁을 먹고 쉰다. 그리고 퇴근하는 남편을 반갑게 맞아주는 생활.  이런 하루가 가능하려면 전적으로 아이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무사히 등 하원해야 나머지 계획이 착착 이루어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유치원 등원을 해결하지 못했다. 둘째가 유치원에 안 간다고 버티는 것이다. 유치원에 처음 가는 둘째는 유치원 입구까지는 신나게 가는데, 벨을 누르고 선생님이 나오시면 “무셔워” 하면서 슬금슬금 뒷걸음친다. 담임 선생님도 ‘읭?’ 당황하시고, 나도 민망했다. 기관이 낯설어서 그런가. 아직 5살밖에 안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 마음이 조급해진다. 일주일이면 적응하겠지 하는 생각을 비웃듯 2주 넘게 매일 30분 이상 유치원 문 앞에서 실랑이를 하니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하였다.  이러다 나의 휴식은 물 건너가는 게 아닐까. 퇴소해야 하나. 왜 매일 아침부터 나에게 이런 시련을 ㅜㅜ


문 앞에서 헤어지기 싫어서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억지로 들여보내고 가면 출근도 안 하는 내가 너무한 건가 싶어 한동안 자책감이 들었다. 한 번은 뭐가 무섭냐고 물어보니,  대답하지 못한다.  ‘엄마랑 하루 종일 놀고 싶어’라고 말하는 아이.  그동안 출근하느라 늘 바쁜 엄마였는데, 자기 눈에도 엄마가 한가해 보였는지 내 눈치를 슬쩍 본다. 안돼!! 엄마에게도 휴식이 간절하단다.


이런 상황을 2주 넘게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 살짝 도움을 청했다. 혹시 아침에 1시간 늦게 출근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9시에 애들을 등원시키고 출근해주면 좋겠다고. 외벌이로 전환하면서 평일 육아와 살림을 도맡겠다는 의지 충만한 나였지만, 아이 등원이 복병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남편은 스케줄을 확인한 후 내일모레쯤 가능할 거라고 자기가 한번 해보겠다고 한다. 오랜만에 남편에 대한 사랑이 샘솟는 듯하다.


드디어 남편이 아이들을  등원시키기로 한 날. 초조한 내 마음과는 달리 10분 뒤 남편의 문자가 도착했다. 아이들 손잡고 잘 들어갔으니 걱정 말라고. 출근한다고. 다정한 문자를 보는 순간 허탈했다. 왜 나는 안되고, 남편은 된 거지?


아침 등원을 9시 30분에 하는 것은 올해 일곱 살 된 첫째 아이의 소원이었다. 작년까지 엄마와 같은 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던 첫째는 8시 15분에 1등으로 등원하여 서늘한 교실에 늘 혼자 있었다. 아이는 자기도 9시 30분에 10등으로 오고 싶다고 했다. 1등이 아니라 느긋하게 친구들이 다 와있으면 9시 30분에 등원하여 따뜻해진 교실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나는 휴직을 했고, 첫째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9시 30분에 등원하면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미 놀고 있었고, 그 사이로 당당하게 쏙 들어갔다. 뒤통수가 웃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저녁은 핫도그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