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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Jul 24. 2020

서울로 돌아온 삼촌의 이야기



떠돌이 생활 17년


나는 20대 중반에 석사를 마치고 용인에서 첫 직장을 다녔어.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의 절반을 거의 경기도에서 보냈지. 그냥 경기도도 아니고, 용인 바닥. 그때 용인은 진짜 시골이었거든. 어쩌다 친구들이라도 만나려고 퇴근하고 버스 타면 2시간도 더 걸렸어. 서울에 도착하면 밤 9시인거지. 그땐 지금보다 교통이 더 안 좋았거든. 그게 진짜, 너무 비참했어.


용인에서 적응하고 계속 회사를 다녔으면 아마 정착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거야. 결혼하고, 가정도 꾸리고. 근데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갔어. 미국에 가기로 한건 내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론 꽤 오래 떠도는 생활을 하게 됐지. 17년을 그렇게 살았어. 여러 경험을 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



울산이나 서울이나, 별거 있겠어?


미국에 건너가 생활하면서 미국에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은  번도 해본  없었어. 내가 미국에서 사는  싫어했던 이유는 언어 때문이야. 일상생활은 가능해도 한국말만큼은 못하니까, 너무 답답했어. 말을  못하니까 거기에  이방인이 되는  당연했지.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어. 최대한 빨리 직장을 잡아야 했는데, 그때 마침 울산에 자리가  거야. 내가 살던 뉴욕 시는 우리나라보다 . 거기서  때는, 서울이나 울산이나 거기서 거기 같아 보였어. ‘ktx 타면 2시간밖에  걸리는데,  정도 차이 별거 있겠어?’ 그렇게 울산으로  거지.


울산은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야. 게다가 난 학교에서 일했잖아.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외지인들이고, 서울에서 온 사람들도 많아서 대화에도 어려움이 없었어. 그런데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잖아? 내가 어디 식당에 들어가서 말이라도 하면, 밥 먹던 사람들이 다 쳐다봐. ‘어디서 서울말 쓰는 사람이 왔네?’, 이런 눈으로 나를 막 쳐다보는 거야. 어쩔 땐 내가 그 사람들 하는 말을 못 알아듣기도 해. 경상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도 사투리를 쓰지만,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잖아. 근데 그곳에 직접 가면, 진짜 못 알아들어. 다른 나라 언어처럼 들려.


그래도 그 동네에 적응하고 살았으면 재밌게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 근데 좀 힘들었어. 울산에 살 때는 몇 달 전에 음악회 티켓이랑 기차표를 끊어놔도, 작은 일 하나만 생겨도 갈 수가 없었어. 그래서 심지어 한 번은 기차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음악회 보고 그날 밤 12시에 다시 기차 타고 내려간 적도 있었어. 진짜 스트레스받았지. 서울에 살지 못하니까 이런 것 하나 여유롭게 못 즐기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결국 내가 몇 년 전에 서울로 학교를 옮긴 것도, 솔직히 말하면 서울에 정착하고 싶어서야.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는 이유이긴 하지. 직업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었어. 그런데 나한텐 그게 되게 중요했어. 심정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환경,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



서울에 오니 좋긴 좋아


서울에 오니 좋긴 좋아. 생활은 그전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 지금 사는 옥수동은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 같다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음악회 보러도 자주 다녀. 영화도 자주 보고, 사람도 자주 만나고. 나는 지금 사는 동네가 정말 좋아. 나이가 들어서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살 수만 있다면 계속 거기 살고 싶어.



추억의 원천


어릴 때 서울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근데 이상하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서울이든 울산이든, 기억에 남는 게 잘 없어. 그런 걸 보면 어릴 때 살던 서울이 내 기억에 가장 큰 부분이 되어있는 것 같아. 내 추억의 원천이지. 그래서 서울은 나한테 조금은 특별한 곳인 것 같아. 대단히 멋있진 않지만, 말하자면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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