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BEL Apr 27. 2021

히가시노 게이고 ‘악의’를 읽고


활자화된 기록은  자체로 신뢰감을 준다.

충분히 검증되어 있는 글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저 기록되어 있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사실로 여긴다.

언젠가 인간에게 이러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 나는 이를 나름의 격언으로 삼아 비슷한 사례를 목격할 때마다 속으로 되뇌곤 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그리고  소설은 나의 그런 모든 노력과 그때마다 마음 한편 느껴졌던 얄팍한 자부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왜냐하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대목에서 드러나는 노노 구치의 서술 트릭에  역시 완전히 넘어갔기 때문이다.

작중 가가 형사는 최고의 트릭이라고 평하지만 감쪽같이 속은  입장에선 그저 부끄러웠을 따름이다.

이미 깨달은 바라 믿었던 것이 그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고 증명되는 것에서 오는 민망함이랄까.

소설 속의 얘기일 뿐인데도 진실이 밝혀졌을  느껴야 할 개운함 보다 이러한 감정이 먼저 드는 것을 보면 내가 자존심이 너무 센 거 같기도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진심인걸.

이런  감상에 관해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 해설이  설명하는듯해   옮겨 적는다. ( 해설 덕에 한층  수치스러워졌다.)

 책에는 인간의 ‘기록하고 싶은욕망, 또한 ‘기록된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욕망을 겹겹이 칠해 넣은 기묘한 맛이 있다.”

작가는 ‘기록이라는 것의 교활함에 대해 충분히 확신한 끝에 독자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책의 매력 요소를 꼽으로 한다면 뭐니 뭐니 해도  인물의 성격을 문체로 아주  묘사했다는 점이다.

책의 구성 방식이 특이하여 노노구치와 가가의 수기와 기록이 번갈아 나오는 식인데, 서술자가 바뀔 때마다 인물 각각의 개성이 느껴졌다.

글만으로 이러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책을 보는 내내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이러한 매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과거 2: 그들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앞서 언급한  화자 이외에 여러 인물들이 줄지어 등장하는데  캐릭터마다 겹치는 느낌 하나 없이 제각기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을 줬다.

이런  감상에 관해 언급한 바는 아니었지만 소설 속 가가 형사의 대사가 이에 적절한 듯하여  또한 옮겨 적는다.

이번 사건을 맡으면서 문학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접해보게 되었지만, 작품을 평하는 말 중에 독특한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간을 묘사한다라는 말입니다.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글을 써서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뜻일 텐데, 그건 단순한 설명문으로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아주 작은 몸짓이나  마디  같은 것을 통해 독자 스스로  인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도록 쓰는 것이 ‘인간을 묘사한다라는 것이라던데요? ”

  기억에 남는 구절을 정리하며  소설의 감상을 마친다.

1. 하지만  자신에 도취되지 않고서는  괴로운 시기를 견뎌낼  없었던 것이라고 이해해줄 수는 없을까요.

2. 예술 자체가 아니라 그저 예술가라는 간판에 침을 흘리는 속물

3. 우정이야말로 학교 폭력에 대항하는 최대의 무기이다.

4. 일부러 감추려 해도 우리가 써내는 글에 결국 드러나고 마는 인간적 품성이나 모종의 편견, 글을 쓴다는 것이 새삼 두려워지는 대목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리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