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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Feb 08. 2022

새로운 사랑, 새로운 사람, 새로운 도시를 마주할 때

 이상과 미정이 함께 누워있는 방 안으로 어슴푸레 새벽녘이 밝아왔다. 그들은 밤새 사랑을 나누었다. 말할 수 없는 신비와 관능, 몸과 영혼이 하나 된 듯한 충만함이 이상의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아무 말 없이 서로의 가슴에 기대어 규칙적으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다음날, 비가 심하게 내렸다. 기분 좋은 피곤함이 침대 속의 두 육체를 감싸 안았다. 


"뭘 좀 먹을까 우리?"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맞이한 아침에 들은 '우리'라는 표현속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육체와 영혼의 어느 경계선에 서 있는 푯대 같은 것이다. 


 톡 쏘는 발사믹 식초에 올리브유를 뿌린 샐러드와 살짝 구운 토스트에 잼과 치즈크림을 발라 그녀가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에 '우리'라는 두 사람만의 잔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창 밖으로 그렇게 시끄럽지는 않지만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 내며 시원한 비를 바라보았다. 비가 오는 창 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따뜻한 커피 한 잔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미정은 전에 없던 삶의 행복,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안정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한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그 사이에 한 명, 혹은 두 명의 아이들이 태어나 일상적인 삶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이 지나면서 미정 자신과 이상이 점점 늙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말없이 창 밖에 내리는 비와 이상의 부스스한 얼굴을 번갈아 보며 미소 지었다. 


 "왜 그래 갑자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이상의 질문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분명 그를 만나 모처럼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강한 느낌과 어떤 기대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러한 지금의 시기, 몸과 영혼이 하나로 엮어져 가는 이때에 새로운 인생의 한 껍질을 벗고 있는 중이었다. 함께 먹고,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밤마다 사랑을 나누면서 하루에도 수 십 번씩이나 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안정감과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을 경험함으로써 세계의 또 다른 책장을 펼쳐보는 중이라고만 말할 수 있다. 세계는 다양한 종류의 책을 뒤지는 일이며, 삶은 그 가운데 활자가 튀어나와 함께 살아서 돌아다니는 일이니까 말이다. 


 미정에게 있어서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세계는 언제나 그녀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새로 자리 잡은 생활공간 주변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내고,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소품 가게, 가끔씩 기분 전환을 위한 꽃 한 다발을 살 수 있는 꽃집을 발견할 때마다 그녀는 아주 큰 행복감과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있어서 '내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랑의 감정이 그녀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명령이자 붉은 피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상에게 끊임없이 '지금 나를 더 사랑해주어요.'라는 명령어를 입력하도록 여러 가지 신호를 보냈다. 


 과연 언제까지 서로의 가슴에 기대어 고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여전히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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