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사가 무너지는 과정
한 사람의 입장에서 감사가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 이야기했듯, 감사는 여유의 토양에서 겸손을 받침대 삼아서 자라납니다. 감사가 무너지는 이유 역시 여기서 찾아가야겠죠. 나를 낮추지 못하니 고마움을 알 수 없고, 여유가 없으니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죠. 나, 그리고 다른 사람, 이렇게 둘을 모두 바라볼 때 감사가 자랄 수 있습니다. '나'라는 한 사람의 내면으로 한정 짓는다면 어떨까요? 겸손보다는 여유가 감사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집니다. 개인의 차원에 있어서 감사가 무너지는 원인은 여유 부족입니다. 관계의 문제 보다는 상태의 문제가 도드라지기 때문이죠. 여유가 사라질 때 감사가 어떻게 없어지는 과정, 겸손하기에 앞서 무너져버린 여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봅시다.
제 이야기를 해봅시다. 퇴근길이었습니다. 언제나 퇴근길은 즐겁습니다. 집에 가서 5살 아들과 아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에 이미 마음이 행복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아내가 정육점에서 제가 좋아하는 육회를 사둔다고 했죠. 그렇지 않아도 즐거운 퇴근길이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일하느라 힘들었던 것도 모두 잊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이 차오릅니다. 아내에게 집에 가면 맛있는 육회 사다 줘서, 내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야지 다짐도 하면서 운전대를 잡습니다.
이 날은 1월 말입니다. 밤 새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질 거라더니 날씨가 엄청 춥습니다. 그래도 즐겁습니다. 퇴근길이니까요. 마음에 여유가 넘칩니다. 지하차도 옆길로 가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멘트가 나옵니다. 평소에도 옆길로 가면 막히기 때문에 차선을 바꿀 준비를 합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끼어들려고 눈치를 많이 봐야 하거든요. 앞차가 속도를 서서히 줄이길래 함께 속도를 줄이려고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그런데 속도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쾅'. 앞차와 충돌해 버립니다. 퇴근길 즐거운 마음과 감사는 이렇게 잊혀버립니다.
사고가 난 뒤의 상황을 하나씩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감사가 사라져 버린 과정에 대해 돌아봤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여유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고 직후 생각난 건, 아... 몸이 움직인다. 그리고 나가자마자 사고상황을 돌아보려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 생각보다 사고가 크다는 마음에 여유가 한번 사라집니다. 보조석으로 이동해서 문을 다시 열어봅니다. 다행히 여기는 열립니다. 밖에 나가 보니, 내 차 뒤는 아수라장입니다. 뒤늦게 비상등을 켜고, 앞 차 운전자에게 갑니다. 괜찮으시냐고 문을 두드려봅니다. 다행히 운전자가 나옵니다. 이제 자동차 사고 상황을 봅니다. 앞 차 범퍼 휀더가 파손된 게 눈에 들어오고, 내 차 앞범퍼 휀더 운전석 문이 찌그러져있습니다. 이제 자동차 수리비 생각이 납니다. '하아...' 여유가 한번 더 사라집니다. 아침에 주식이 조금 올라서 10만 원은 벌었다고 좋아했었는데, 주식 값의 50배는 나올 것 같았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하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더라고요. 보험회사 부르겠습니다. 전화를 걸고, 기다립니다. 이제 가족 생각이 납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말합니다. 오늘 늦을 것 같다고... 아내도 사고상황이 궁금하겠지만 빨리 끊어야 합니다. 견인차 기사님이 오시면 전화를 받아야 하니까요. 이제 바닥이 눈에 들어옵니다. 얼어있네요... 블랙아이스, 말로만 들었지 내 일이 될지는 몰랐습니다.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아오.... 진짜....' 견인차 기사님이 오시자마자 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만 사고 8건 났어요. 그나마 이게 제일 작게 사고 난 거네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기사님께 화풀이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집니다. 어깨 근육이 살짝 뭉쳐옵니다. 이제 걱정도 올라옵니다. '아....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지?' 그때 또 기사님이 말합니다. 요즘 사고가 많아서 렌터카 대차가 잘 안 나오는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쩌라고....'라는 마음속 생각과 함께 대답했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사실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대책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기계적으로 대답했을 뿐이고 머릿속에는 온통 걱정뿐입니다.
다시 상황을 돌이켜봐도 마음이 힘들어집니다. 분명 평소 같으면, "아빠 왔다~"하고 부르는 아들 목소리가 들리고 같이 밥 먹고 신나게 놀아야 하는데, 그날은 전화기만 계속 울립니다. 보험회사, 카센터, 견인차 기사님...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분명 회사에서 나올 때는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고와 함께 여유도 같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역시 감사는 여유에서 자라납니다.
제 교통사고 기록 속에서 여유가 사라지는 과정을 발견하셨나요? 사실 과정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블랙 아이스 때문에 브레이크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느낀 그 순간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도 사라져 버렸죠. 교통사고가 났는데 감사하다는 생각이 사라진 거는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집에 와서 씻고 나오면서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사람 크게 안 다친 게 어디냐... 그래도 참 감사하다." 씻으면서 마음의 여유가 돌아오니 그 와중에도 감사할 거리가 나옵니다. 상대방 운전자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분은 뒤에서 갑자기 받혀서 나보다 더 놀라셨을 텐데... 치료 꼭 잘 받으시라고 전해드려야겠다." 상황이 변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차는 박살 난 상태로 정비소에 들어갔고, 상대방 운전자는 일단은 괜찮아 보였지만 얼마나 아플지도 잘 모릅니다. 바뀐 건 내 마음 상태뿐이죠.
교통사고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사례는 일상에서 정말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경험해 볼 수 있을만한 이야기를 한번 보도록 합시다. 서울에 살고 있는 회사원 A를 떠올려 보죠. A는 오늘따라 푹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매우 기분이 상쾌했죠. 덕분에 오랜만에 운동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마음을 정돈했습니다. 아내가 커피를 내려 빵과 함께 가져다줍니다.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아침입니다. 이대로라면 아주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등교시킨 뒤 출근해야 해서 이제 아들을 깨우러 갑니다. 늘 그렇듯 잠자는 모습이 참 예쁩니다. 평안하고 감사한 하루죠. 조금 더 자게 두고 싶지만,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더 자겠다고 투정 부립니다. 잠시 더 기다려 줍니다.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까요, 스트레칭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간단히 노트에 적어본 뒤 다시 아들에게 가봅니다. 여전히 더 자겠다고 투정 부립니다. 이제는 더 둘 수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일어납니다. 아침을 먹으라고 식탁에 앉혔죠. 아침 식사가 맛없다면서 투정 부립니다. 한 숟가락이라도 먹으라고 실랑이를 벌입니다. 이제 회사에 지각하게 생겼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이미 마음속 여유는 바닥이 났습니다. 먹기 싫으면 밥 그만 먹으라고 하고 일어나려는 찰나,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그래도 애 밥 먹이고 가야지!", 이 말을 듣자 참고 참았던 말이 터져 나옵니다. " 나 늦었어, 이제 가야 된다고, 좀!"
이건 원했던 아침 모습이 아닙니다. 아내에게 오늘도 행복해, 아침에 챙겨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고 출근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죠. 분명히 감사한 마음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유가 사라지자, 감사가 머물 마음의 공간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중에 퇴근길에 떠오릅니다. 그러면 안 됐는데, 조금만 더 참을걸...
한 장면 더 생각해 봅시다. A의 아내 B는 화가입니다.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지내기로 A과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이라는 게 늘 마음같이 시간을 지키기가 어렵죠. 그래서 남편에게 가끔씩 집안일이나, 육아를 부탁하곤 합니다. A도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아내의 작업시간을 이해하고 양보해 줍니다. B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는 B가 유달리 바쁩니다. 전시회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몇 주째 저녁시간에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피로가 계속 누적됩니다. 남편도 매일 반복되는 상황에 피곤이 쌓였는지 이따금 눈치를 줍니다. 아직 멀었어? 얼마나 더 해야 해? B의 마음에 점점 여유가 사라집니다. 남편이 힘들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남편이 다시 와서 한 마디 합니다. "좀 쉬면서 해, 몸 상하겠어..." 참고 참았던 말이 터져 나옵니다. "누가 쉴 줄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체력과 여유가 먼저 고갈나버렸습니다. 감사한 마음, 분명히 있었는데 결국 무너져 내립니다.
이건 원했던 하루의 마무리가 아닙니다. 오늘의 일을 잘 마무리하고 남편에게 오늘도 힘들었지, 정말로 고마워,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여기까지 해낼 수 없었을 거야 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유가 사라지고 피로감이 쌓이자 참았던 말이 나와버렸죠. B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됐는데... 남편도 힘들었을 텐데... 남편 A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생각합니다. 내가 조금만 더 기다려줄걸, 걱정이 잔소리가 되어버렸구나...
그렇습니다. 여유가 사라지면 감사도 무너집니다. 여유가 줄어들면 당장의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감사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버리죠. 아무리 나는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다져 논들, 여유가 없으면 감사가 있을 자리도 없습니다. 나 혼자만의 상황에서는 더욱 여유가 중요합니다. 여유 없이 감사한 마음을 회복시키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심호흡을 한다거나 혼자만의 시간 가지는 등 여유를 되찾아야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이 되살아납니다. '우리'라는 상호작용관계가 있다면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상황을 풀어가 보는 등 여지라도 있지만, 나 혼자 있을 때는 그러기도 어렵습니다.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가 감사할 수 있는지에 큰 영향을 주죠. '나'라는 한 사람, 개인적인 차원에서 감사가 무너지는 첫 단추는 여유의 붕괴입니다.
이제 다음 장에서는 상황을 조금 더 확장해서 '우리'의 관계에서 특히 직장생활을 할 때 감사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살펴봅시다.
오늘도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