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의 경쟁에서 감사가 무너지는 순간
문 열고 집밖으로 나가면 경쟁사회입니다. '우리 회사', '우리 팀' 등등 우리라는 말로 묶어두었지만, 서로의 익을 위해서 만나는 관계입니다. 같은 우리라고 할지라도 '우리 가족'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감사는 이런 이익 관계에서도 힘을 발휘합니다. 사람의 '뇌'는 감정을 스위치로 동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데이비드 이글먼의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등 다양한 뇌과학, 심리학 서적에서 뇌가 감정으로 인해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반복적으로 나오는 소재입니다. 아무리 상대방이 꼼짝할 수 없는 완벽한 논리를 앞세워서 상대를 설득할 수는 있다 한들, 사람을 움직이게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일회성으로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관계를 잘 맺어나가면서 그 사람과 내가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데는 감정적으로 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직장생활과 같이 '우리'가 하나의 목표를 만들어 나가는 상황, 고객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 굉장히 유리해집니다. 감사는 감정을 건드리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감사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내 말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도구 하나 더 가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관계에서 내가 높아지면 감사가 무너집니다. 즉, 겸손하지 못하면 감사가 무너지며 '우리'라고 묶어주던 인간관계도 무너지기 쉬워집니다.
같은 팀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경쟁 관계입니다. 서로 도와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해가야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한 명의 리더에게 평가를 받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한정된 고과를 두고 경쟁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이런 걸 의식하지 않고 함께 일을 합니다. 하지만 함께 해낸 일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한 일 보다 상대가 한 일이 더 돋보여 보일 때 '우리 팀'안에서의 경쟁 관계가 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관계가 무너져 내립니다. 네가 한 일 내가 한 일을 따지게 되고, 상사에게 역할과 책임 범위(Role and responsibility)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하게 되죠. 분명히 혼자서는 할 수 없고, 함께 할 때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서로의 역할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질투가 일어납니다. 질투가 감사를 압도하기 시작하면 팀워크가 무너져 내립니다.
이번에도 제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엔지니어입니다. 우리 팀은 반도체 소자의 동작 원리를 개선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반도체 장비들을 이용해서 공정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있고, 만들어낸 반도체 소자를 만들어내면 이걸 측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공정을 설계하는 역할을 합니다. 조금 더 쉽게 풀어서 역할을 설명해 보자면, 측정해 주는 역할을 하는 팀원들이 이번에는 결과가 이러이러하게 나왔으니 다음에는 이렇게 조정해서 만들어봤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면, 제가 속한 공정을 설계하는 팀원들은 그건 이런 식으로 만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고 유관부서와 협업을 통해서 소자를 만들어 옵니다. 그러면 측정하는 팀원들이 만든 소자의 특성을 측정해 보고 다시 피드백을 해줍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반도체 소자의 동작을 개선해 나갑니다.
저는 측정을 해주는 팀원들에게 굉장히 감사합니다. 이들이 없다면 제가 측정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들을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혼자 하게 되면 절대로 시간 내에 이 모든 것을 연구하고 개발해 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측정을 해주는 팀원도 제게 감사하다고 생각하겠죠. 소자를 만들어 오지 않는다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항상 일은 생각처럼 굴러가지 않죠. 문제가 자주 발생합니다. 평가한 결과가 생각대로 잘 나올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해피하죠. 서로의 덕분을 논합니다. 서로의 공을 높여주게 되죠. 하지만 반대로 평가 결과가 잘 안 나올 때는? 서로의 탓이 시작됩니다. 공정이 잘못되니 측정을 제대로 할 수가 없던 거잖아요, 공정이 안될만한 아이디어를 적용해 달라고 하니 만들 수가 없잖아요. 이러면서 서로의 탓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지난달 나온 실험 결과를 가지고 새롭게 실험을 디자인하려고 다 같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이번 평가는 공정에서 박막 두께를 제대로 못 맞춰와서 제대로 된 결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측정 담당자 B가 말합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받아들이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얻어낼 수 있는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 두께가 잘 안 맞더라도 결과를 시뮬레이션해서 분석을 더 해보면 좀 더 알아낼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습니다". B가 대답합니다. "아니요, 이번에는 정말 알 수 있는 게 없어요. 이 평가를 다시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박막 두께 잘 맞출 수 있도록 조건을 잡아주세요". 사실 지난달 평가를 시작하기 전에 박막 두께를 이렇게 만드는 건 현재의 기술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다 같이 이야기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지난번에 평가하기 전에 분명히 다 같이 동의하고 시작했잖아요, 이 평가 두께는 제대로 만들 수 없다고요." 그러자 측정 담당자 B는 "그래도 중요한 거니 한번 만들어 오겠다고 하셨던 거 아닙니까, 한다고 하셨으면 어느 정도 결과를 볼 수 있는 수준으로는 만들어 주셨어야죠". 서로의 책임을 탓하기 시작하자 결국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합니다. 함께 참석한 사람들도 기운이 빠지죠. 이런 얘기 듣자고 귀한 시간을 내서 참석한 건 아닐 테니까요.
처음에는 분명히 서로 잘해보자고 모였을 텐데,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더라도 상대의 역할과 노력을 칭찬해 주었다면, 서로 자기 입장을 낮추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죠. 실험결과가 변하진 않았을 겁니다. 어차피 안 되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평가 방향을 만들어 낼 수는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에 제가 B가 처음에 말한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반응했다면 어땠을까요? 한번 이야기를 재구성해봅시다. B가 말합니다. "이번 평가는 공정에서 박막 두께를 제대로 못 맞춰와서 제대로 된 결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 우선 공정 결과가 흔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지 않은 결과라도 어느 정도 우리가 방향성을 잡아갈만한 포인트가 있었을까요?"
이렇게 전달했다면 아마도 분위기는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통해서 자기 노력을 인정받았고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대화 초기에 공정에서 두께를 잘못 맞춰 왔다면서 날을 세우던 것을 한발 물러줬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렵더라도 시뮬레이션이나, 계산을 통해서 추가 분석을 해오겠다고 대답했을 수도 있겠지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함으로 책임을 따져야 하는 경쟁관계를 벗어나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대화의 온도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화를 재구성하면서 생각해 보았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렵습니다. 저도 제 잘못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문제가 커진거라고 지적하는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먼저 인정해 주는 관용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죠. 내가 낮아져야지만 상대가 만들어낸 문제에 맞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했더라도 저런 문제에 똑같이 부딪혔을 수 있겠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 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정말로 문제라고 생각하고 대화한다면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리 효과가 없었을 것입니다. 의례적으로 말하는 감사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죠. 겸손한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나를 낮춰야 합니다. 그러면 내 시선을 먼저 '문제'에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상대방'에게 시선을 맞춰주고 그의 능력과 노력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관계에서 여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에 여유가 없다면 겸손하게 나를 낮춰보려고 한 들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여유는 문제에서 시선을 돌려서 상대와 나의 마음을 바라보는 그 한순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진정성 있는 감사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여유, 그리고 겸손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서로 감사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일이 잘 풀려간다면 서로의 공을 칭찬하면서 시너지가 발생합니다. 문제는 일이 잘 풀려가지 않을 때죠. 서로의 귀책을 따져야만 하는 때가 가장 힘듭니다. 우리 팀의 민낯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럴 때 감사가 무너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무너뜨리지 않는 기반은 겸손한 태도입니다. 겸손함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평소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어려울 때 발현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나를 방어하고자 하는 본능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감사는 무너지기 쉽습니다. 특히 '우리'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회사에서 겸손하기 힘들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겸손은 마치 내 잘못을 인정하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겸손한 태도와 패배의식이 연결되어 버리는 거죠. 이번에 겸손하게 내가 나를 낮추고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말해버리면, 이 일이 잘되더라도 저 사람이 고과를 다 가져가는 거 아냐?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 쉬운 거죠. 실제로는 겸손하게 나를 낮추고 감사를 표현한 그 사람이 우리 조직의 분위기를 풀어주고 시너지가 나게 만드는 키 플레이어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겸손이 오히려 벌점처럼 작용할까 두려워 나를 더욱 앞세우게 됩니다.
조직에서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습니다. 바로 '마감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감시간의 존재는 여유를 무너뜨립니다. 시간만 부족한가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리소스도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사람의 심리상태는 어떻게 바뀔까요? 여유가 사라지겠죠. 우리가 앞서 살펴본 감사에 필요한 조건, 여유가 사라지는 겁니다. 사라진 여유는 조직 안에서 남 탓을 불러오게 되죠.
많은 회사들이 조직 차원에서 서로 감사함을 표현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효과를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이미 조직에 속한 개개인들에게서 겸손과 여유가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이걸 아무리 제도화시켜서 구성원들끼리 감사를 표현하라고 해봐야 잘 먹히지가 않는 것입니다. 취지는 좋지만, 구성원들이 감사를 관리 도구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이건 진심이 아니게 됩니다. 오히려 감사보다는 냉소로 바뀌게 되겠죠. 회사가 더 득을 보게 만드는 게 싫다고 느끼고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에는 반드시 진심이 더해져야만 합니다. 진심이 있어야지만 감사가 구성원들의 행복으로, 업무 효율의 시너지로, 조직 성과 창출로 이어지게 됩니다. 앞서 우리가 이야기했던 펩시코의 인드라 누이,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의 사례 기억나시나요? 인드라 누이는 회사에 신임 리더가 뽑히면 그 사람의 부모님께 감사편지를 썼죠. 하워드 슐츠는 직원들을 파트너라고 부르면서 감사함을 말로, 그리고 복지제도를 바꿔가면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고 표현한 결과는? 아시다시피 조직의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감사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진심이 반드시 더해져야만 합니다.
감사에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여유와 겸손이 동반되어야 하며, 거기에 진심이 더해져야지만 감사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마치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하듯 '감사합시다!'하고 반복적으로 외친다고 상대방에게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의지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감사가 가능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나가면 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여유와 겸손을 먼저 신경 쓰는 거죠. 예를 들면,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황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여유를 만들기, 상대의 입장을 잠시 떠올리면서 겸손할 이유 찾아보기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겸손과 여유를 꺼내어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 기억합시다. 누구나 감사할 제목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숨어 있을 뿐이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숨어버린 감사를 꺼내는 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행복, 그리고 감사가 힘을 발휘하도록 만들어 가는 방향입니다.
오늘도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