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는 피할 수 없다

고통 속에서 중심을 잡는 감사의 태도

by 코털이 공학박사

세상에 고통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자기 삶에 긍정적인 일로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누군가는 평안하고 싶고, 누군가는 신나는 일들로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각자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원하는 인생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고통스럽기를 원하는 사람음 많지 않습니다. 아니,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겠죠.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고통이란 건 상대적입니다. 누군가는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인 때도 있습니다. 가벼운 예를 들어보면, 불닭 볶음면처럼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에게 이런 매운 음식을 먹으라고 하는 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음식을 예로 들었지만 이것만 그런 건 아닙니다. 수학을 잘 못하는 학생에게 수학문제를 풀라고 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수학과 교수님에게는 좋아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죠.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상황은 다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고통은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고통스러운 게 없는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고통은 그저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순간은 온다


사람들은 어떨 때 고통을 느낄까요? 기대하는 것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갈 때 고통스럽다고 느낍니다.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졌을 때, 잘 못하는 일을 해야 할 때 또는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잘 안 풀릴 때 등등, 기대하는 상태와 현재 내가 처한 상태의 괴리가 발생하면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연하게 항상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배우자나 자식, 부모님, 친구와의 사별은 매우 고통스럽죠. 좀 가볍게 생각해 봐도 자주 사용하던 레이저 포인터에 배터리가 떨어져서 중요한 발표를 마치게 된 상황도 고통입니다.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사라지며 고통으로 이어지는 상황이죠. 잘 못하는 수학문제를 억지로 풀라고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우리 팀에서 중요한 발표를 시킨다면? 잘 못하는 일을 하게 되니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한 업무라 자신 있게 시작했는데, 상황이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결과를 얻는데 실패했다면 그 역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내 기대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고, 내 마음 상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든 내부든 내가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통제하지 못하면 그 기간이 길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럴 수 있어" 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넘기는 자세와, "아... 난 망했어" 하고 고통을 실패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분명한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죠. 그러니, 고통을 실패가 아니라 시련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실패는 결과물입니다. 시련은 결과물이 아닙니다. 시련은 시험할 시(試), 단련할 련(鍊) 자를 사용합니다. 시험을 받으면서 단련되는 것이 시련입니다. 즉, 시련은 과정입니다. 시련에는 이걸 넘어서서 단련된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지금의 상황을 넘어서면 성장의 뒷받침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고통을 넘어서는 과정에 동기부여가 됩니다. 질병이나 소중한 사람과의 사별과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성장'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역시 언젠가는 내가 넘어서서 살아내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지나며,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겠죠.


고통은 이미 일어난 사실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에 대하여 결과(실패)가 아닌 과정(시련)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시련이라는 과정을 지날 때 내가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회가 생겼음을 "감사"의 태도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인생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가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감사는 고통으로 인해 '상실'되는 것에 집중되어 있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을 도와줍니다. 그러니 마음이 힘들다 할지라도 고통에서 시선을 돌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면, 힘든 마음을 내려놓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마가복음에는 예수께서 폭풍우를 잠잠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간략하게 이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다가 피곤해서 배에서 잠드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호수에 엄청난 폭풍우가 불어왔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든 해보고자 모든 수를 다 써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잠에서 깨지 않으셨죠. 모두가 죽게 될 지경이 돼버리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웁니다.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 어찌 가만히 계시냐는 것이었죠.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폭풍우더러 잠잠하라고 말하자, 비바람이 그쳤다고 합니다. 종교적인 기적 이야기입니다만, 우리가 배울 점이 있습니다. 바로 폭풍우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부 출신이 많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사람도 있었죠. 누구보다 배를 모는 데는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베테랑이더라도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폭풍우를 받아들여야 하죠. 고통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제자들은 죽을 지경이 되기 전에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폭풍과 같은 고통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온다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폭풍 속에서 중심을 잘 잡고 시련의 시간을 이겨가야 합니다.


시련을 통과하는 법


운동능력 성장 곡선에 대해 혹시 들어보셨나요? 고통의 시련을 이겨내고 우리가 단련되는 과정은 운동 능력이 발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스포츠 종목이라도 꾸준히 하면 운동능력이 향상됩니다. 능력이 연습한 양과 비례해서 선형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운동능력 성장 곡선은 이를 설명해 줍니다. 총 4가지 단계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성장-플래토우-슬럼프-성장의 4단계입니다.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이 과정을 반복해서 거쳐가면서 운동능력이 발달해 가지요. 처음에 운동을 시작하면 연습하는 만큼 거기에 비례해서 능력이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플래토우라는 구간을 만납니다. 플래토우는 성장이 정체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능력이 올라가지 않고 정체되는 거죠. 굉장히 답답합니다. 플래토우 구간만 벗어나면 다시 성장할 거라 굳게 믿었지만, 그다음에는 슬럼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장이 멈추는 것을 넘어서서 실력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을 의심하면서 포기하게 되죠. 하지만 슬럼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운동을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다시 성장하는 날이 옵니다. 그러면서 계단식으로 운동능력이 좋아지게 됩니다.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은 오직 운동만 하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플래토우와 슬럼프 기간에 운동을 꾸준히 하라는 것은, 운동하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말에 가깝습니다. 더 좋은 방식이 있는지 고민하고 조절해 보면서, 때로는 휴식도 취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피드백받아가면서 운동을 멈추지는 말고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죠.


운동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통스러운 순간(플래토우와 슬럼프)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걸 극복하는 비법은 하던 대로 꾸준히 하는 것이죠.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의미 없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구간을 잘 넘어가려면 감사가 큰 도움이 됩니다. 플래토우와 슬럼프를 지나 성장할 나를 기대하면서 감사하는 거죠. 이건 내가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할 시련이야. 그리고 이 시련이 있기에 내가 더 성장할 테니 감사하게 생각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꾸준히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때로는 쉬기도 하고, 방법을 바꿔보기도 하고, 생각을 달리하기도 해 보면서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태도로 나아간다면 그 과정이 어렵지만은 않겠죠. 감사는 성장의 파이를 더 크게 만들어 주는 촉매제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해 봅시다. 고통은 없을 수 없습니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이 반드시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통을 과정으로 실패가 아닌 시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련의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태도는 바로 '감사'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고통이 찾아왔을 때 실패로 만들지 시련으로 바꿀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감사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나 혼자서 실천할 수 있는 감사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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