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에서 손을 잡는 한 마디

감사는 결국 신뢰로 돌아온다

by 코털이 공학박사

와튼 스쿨의 조직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자신의 저서 기브 엔 테이크에서 사람을 이렇게 나눕니다. 테이커(taker), 매처(matcher), 기버(giver). 테이커는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탐내는 사람이죠. 매처는 나눠준 만큼 돌려받아야 하는 사람. 그러면 기버는 받는 것보다는 나눠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애덤 그랜트는 이 책에서 기버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크게 성공하거나, 실패한다고 합니다. 나눠주느라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챙기지 못하는 기버는 실패 확률이 높고, 나눠주는 것을 동기부여 삼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크게 키워나가는 사람들은 크게 성공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성공하는 기버는 감사하고 나누는 삶을 통해서 나를 발전시키는 사람들인 셈입니다.


감사와 나눔(give), 두 가지는 친구처럼 붙어 다니는 관계입니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물질, 정성, 노력을 나누면 여기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게 되죠. 나눔에서 관계가 나옵니다. 나눔의 결과에 감사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기버라고 할지라도,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 계속 가진 것을 나누어줄까요? 어느 정도까지는 나누겠지만, 영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버도 감사함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고 더 많이 나누게 될 가능성이 크죠.


나눔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화답하면서 나눔이라는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호혜의 고리로 이어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나누는 관계가 형성되죠. 기버가 나눔으로 성공에 이를 확률이 높다면, 감사함으로 화답하는 사람은 그 선순환 피드백에 함께 탑승할 수 있습니다. 선순환의 피드백은 점점 파이를 크게 만들어 줍니다. 그 효과로 얻게 되는 것들도 함께 점점 커지게 되겠죠. 감사함으로 화답하고, 다시 나누는 일이 처음에는 느려 보이고 어리 석어 보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빠르게 함께 성장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감사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결국 개인의 성장에도 중요한 셈입니다. 우리가 앞에서도 계속해오던 이야기가 이와 연결되어 있죠.


감사의 효과는 알고 있더라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감사하며 살면 호구가 되기 쉽다는 인식 때문일까요, 우리는 감사에 인색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 나에게 가진 것을 나눠 주는 사람에게 '혹시 사기꾼인가? 나에게 원하는 게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를 실천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앞서 우리는 감사일기를 쓰고, 내 생각을 바꿔 가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함께 감사하며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감사일기를 쓰고 산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한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심리를 활용하는 것이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선언을 하고 나면 그 말에 책임을 지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누가 뭐라 하지 않더라도 실천하게 만드는 강력한 심리적 기제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감사일기를 쓰고 감사를 실천하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감사를 '행동'으로 옮기는 장치


선언하기는 스스로에게 동기부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감사의 힘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째는 감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됩니다. 제가 일하면서 감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많이 하곤 합니다. 파트너들에게 감사해라. 조그만 도움이 있더라도 서로 감사해라. 불평할만한 상황이 있더라도, 먼저 감사하다고 말하면 우리를 향한 감정이 날이 서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등. 감사하면 좋아지는 일들에 대해서 많이 합니다. 그리고 더러는 동료들이 따라 하고 피드백을 주기도 합니다. 감사의 효과가 점점 퍼져나가는 걸 보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내 모습이 긍정적으로 변하며 롤모델이 됩니다. 회사에서 일할 때 사람들은 서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마치 일만 잘하면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크기가 다를 뿐 사람들은 서로를 의식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일을 잘하고, 늘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해 보인다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뭐가 좋아서 나와 달리 회사에서 행복해 보일까 궁금해집니다. 감사를 표현하고 나누는 모습이 비결이라는 것을 머지않아서 알게 됩니다. 물론, 이 모습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치한다는 등, 저래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등등. 초기에는 온갖 노이즈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인정하게 됩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감사하면서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구나. 이 사실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면, 감사를 나누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전파됩니다. 감사로 인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롤모델이 되어주는 것이죠.


감사는 결국 신뢰로 돌아온다


이런 말 하기는 쑥스럽습니다만, 저는 일을 잘하는 편입니다. 이유를 더듬어보면 감사를 표현하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특별히 꼼꼼한 편도 아니고, 일에 어마어마한 열정을 쏟아붓는 편도 아닙니다. 특별히 남들보다 아는 게 많지도 않습니다. 저는 제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도 합니다. 반면, 저에 대해 들리는 평판을 생각해 보자면 이러합니다. 편안한 사람이다. 저 사람이랑 일하면 최소한 억지는 부리지 않는다. 일을 될만한 방향으로 생각해 본다. 여유 있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랑 잘 지낸다. 제 평판과 달리 일하는 건 저도 항상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회사에 10년 가까이 다녔지만, 단 한 번도 회사가 위기가 아니란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부서 일은 항상 위기였고, 매주 임원들은 실적을 내라고, 결과를 가져오라고 난리를 쳤죠. 그런데, 제 평판은 그래 보이진 않습니다. 하다못해 여유로워 보인다는 말을 듣는 건 저도 좀 신기합니다. 저도 여유 있게 살아야 한다고 마음에 늘 다짐하고 살고 있을 뿐, 실제 삶이 여유가 있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제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닮고 싶은 모습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바쁘게 일하는데 여유로운 태도로 일하면서도 성과는 어느 정도 내는 저 사람이 부러워서 그런 걸까요?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는 후배직원들을 만나면 저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너한테 싫은 건 다른 사람한테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금요일 퇴근준비하려고 하는 세시 반 이후에는 바쁘다면서 일 시키지 말아라. 그건 네 평판을 깎아먹는 거다. 그리고 이어서 꼭 이 말을 해줍니다. 상대방이 나랑 같이 일하고 있다는 거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라. 내가 잘나서 일을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상대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성과를 만들 수 없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반드시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해라.


이게 제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제 동료들은 저와는 달리 우리가 일하고 있는 반도체 분야에서 대학교 학부, 대학원까지 10년씩은 공부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저는 박사까지 했더라도 바이오, 기계를 전공했기 때문에 지식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인정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가진 지식이 저보다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지식과 앎에 대해서 감사함을 표현하자 나의 부족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표현한 감사, 때로는 고마운 마음에 건넸던 커피 한잔, 밥 한 끼가 점점 누적되면서 효과를 발휘했던 거죠.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모르는 걸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말 뒤에 덧붙인 구체적인 감사의 상황을 표현하면서 진심이 전달되고,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 사람과 일하면 적어도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겠구나, 내 뒤통수를 치지는 않겠구나, 동료들로 하여금 이런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줬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게 신뢰관계가 쌓여가는 과정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뢰가 형성되면서 서로 돕는 관계가 형성되면 부족한 지식도 함께 메워져 갔다는 것은 덤입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감사를 표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자기 체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도와주고 베풀고 감사하다고 표현해 봤자. 잊히면 그만이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있다는 거죠. 하지만, 주변에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면 상황은 변합니다. 나만 감사할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그 역시 체면의 문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감사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퍼져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시작점이 누군가는 있어야 할 텐데, 내가 된다면 그 역시 가치 있는 일이겠죠. 그리고 그 시작은 감사를 선언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부터일 거라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는 유리알과 같다고 합니다. 고무공과는 달리 유리알은 한번 깨지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붙여도 그 흔적이 남아있죠. 완전히 다시 녹여서 새롭게 만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관계는 깨지기 전에 조심해야 하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감사는 관계를 관리하는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깨어지기 전에 유리구슬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단단해진 관계는 고통을 넘어가는 든든한 배가 됩니다. 작은 배는 작은 파도에도 흔들리지만, 한데 묶인 큰 배는 큰 파도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게 되죠. 결국에는 파트너가 있다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번 장을 쓰면서 참 조심스러운 것 중 하나는, 마치 감사가 만병통치약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감사하면서 살기만 하면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일까 조심스럽습니다. 애덤 그랜트가 사람을 기버, 매처, 테이커로 나눈 것처럼, 감사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반응하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감사를 표현해도 그에 대해 응당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감사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도 파레토의 법칙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나온다는 거죠. 전체 매출의 80%는 충성 고객 20%에서 나오고, 업무성과의 80%는 전체 근무시간 중 20%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감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긍정적인 반응으로 돌아오는 감사를 성공한 감사라 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거나 심지어는 배신으로 돌아오는 감사를 실패한 감사라고 한다면, 내가 감사를 선언하고 감사하는 태도로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긍정적인 효과의 80%는 성공한 감사 20%에서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숫자는 절대적이지는 않기에 비유 정도라만 받아들여야겠지만, 이건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감사가 성공할 수는 없다는 거죠. 내가 생각하는 대로 감사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성공한 감사가 20%가 전체의 방향을 바꿔줄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날 때더라도 서로에게 감사를 표현하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키아 벨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베풀 때는 조금씩 자주 베풀어라, 이렇게 하면 그 감사함이 오래 지속된다". 이 말을 감사에 적용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조금씩 자주 감사해라, 이렇게 하면 감사의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감사 표현하기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조금씩 자주 표현하는 감사가 고통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시간을 보내게 하는 지지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감사하면서 고통을 넘어갈 든든한 배가 되어줄 것입니다.


감사는 결국에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여 AI가 사람의 일을 대신해 준다 하더라도 감사의 방향은 결국 사람을 향해가야 합니다. 급변하는 시대에도 감사하는 삶은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오늘도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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