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AI, 방향은 사람

효율의 시대, 판단과 책임 그리고 감사

by 코털이 공학박사

AI시대의 감사에 대하여 논하기 위해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AI 시대에서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AI는 자동화에 유리합니다. 주변 환경과 상황에 맞춰서 가장 적당한 행동을 AI가 판단할 수 있죠. 특히 컴퓨터로만 하는 작업, 그러니까 엑셀, 파워포인트, 프로그래밍 같은 작업은 AI가 잘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주어진다면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이드라인'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해,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정확히 가이드를 주어야 합니다. 직접 AI가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표를 알려주고, 그를 달성하기 위한 상황판단을 직접 하도록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AI 로봇이 청소를 하는 걸 생각해 봅시다. 이 책을 읽으시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만, AI가 청소하기 위해서 충분히 발전했다고 가정합시다. 제가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3월 23일의 로봇 청소기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청소하려면 먼저 바닥의 물건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AI는 이게 쓰레기인지, 아니면 사용하는 물건인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명확하게 쓰레기라는 판단이 들 정도라면 직접처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쓰레기와, 쓰레기가 아닌 것의 그 애매한 경계에 있는 물건입니다. 예를 들면 신다가 구멍이난걸 발견해서 바닥에 던져둔 양말 같은 거 말이죠. 직접 펴보기 전에는 구멍이 났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AI입장에서는 빨아야 할 양말인지, 아니면 버릴 양말인지가 굉장히 애매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면 쓰레기라고 봐야 해라는 가이드라인이 주어져야지만 AI는 물건을 치울 수 있습니다. 애매한 경계 수준에서의 판단 가이드라인이 명확해야지만 이어지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쓰레기가 아닌 물건을 잠시 옮겨둔다거나 원래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는 판단이 AI의 영역이 되겠네요. 그리고 나면 적절한 청소 방법을 선택할 것입니다. 바닥을 청소기로 먼저 빨아들이고, 물걸레질을 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먼저 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네요. 이 정도만 하더라도, 글을 쓰는 시점의 제가 바라보기에는 아주 훌륭합니다. 제가 해야 할 청소를 대신해 준다니 매우 만족스럽고 감사합니다.



AI가 잘하는 일, 사람이 남는 일


문제는 기술이 사람이 사는 세상에 점점 더 빠르게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AI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틈도 없이 삶 속에 파고들어 와 버렸습니다. 이미 사람의 역할을 대신해내고 있고, 앞으로 더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기술이 사람사이에 들어온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청소에 필요한 판단, 설거지에 필요한 판단, 분리수거하는데 필요한 판단을 AI가 내려준다고 해도 그 보다 중요한 판단은 사람이 직접 내리게 될 것입니다. AI는 간단한 판단을 내릴 수는 있지만, 핵심적이고 중요한 일에 대한 결정권자는 아닙니다. 결정하는 행위가 자동화될 수 록, 책임은 오히려 사람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따라서, AI 시대가 될 수 록 중요한 결정은 더더욱 사람이 직접 내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물론 중요한 판단 근거는 AI 가 가지고 올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거라는 시나리오와 경우의 수를 만들어 오겠죠. 하지만 그 데이터를 보고 내리는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하게 될 것입니다. AI가 판단을 해올 지라도 최종 승인의 책임과 책무는 사람에게 남아있겠죠. AI 시대가 될 수 록 사람이 직접 내리는 결정의 중요도와 그 무게감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AI는 이미 훌륭한 조언자입니다. chat 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등 LLM AI 알고리즘에게 고민하고 있는 것을 질문하면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설명해 줍니다. 저도 반도체 엔지니어 이후의 커리어 패스에 대해 AI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해외로 나갈 때의 커리어상 이점, 현지에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우리 가족의 생활환경 등등 AI에게 물어보고 답을 듣는 과정이 그리 어색하지 않습니다. 직접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서칭하고 정리한 뒤 읽어보면서 판단을 내리던 시기와 비교하면 정말 편리해졌죠. 이미 AI가 준 편리함과 명료함에 젖어버려, 나보고 이 과정을 스스로 처리하라고 한다면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봅시다. 도움이 됩니다. 그뿐입니다. AI가 이 이상의 결정을 내려주지는 못합니다. 결국 결정하고 판단을 하는 건 인간인 '나'의 영역입니다. 인터넷 서칭을 해서 직접 찾아낸 데이터와 AI가 알려준 데이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저 데이터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 데이터의 사실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책임, 그리고 능력은 인간인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AI와 대화하다 보면 기분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대화가 너무 잘 통하기 때문이죠. 일단 AI는 긍정적입니다. 직접 비판하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 내 아이디어와 생각에 부정적인 면을 언급하기를 적게 합니다. AI가 이렇게 답변하는 경향을 가진 원인에 대해 제 나름대로 유추하자면, AI 알고리즘 역시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든 제품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유저, 즉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알고리즘보다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AI가 더 많은 유저를 끌어모으는데 더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말이 잘 통하는 AI와의 대화 결과를 믿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대화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면 자칫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AI는 데이터만 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우리의 대화내용이 사실과 진실, 그리고 아주 큰 가치를 가진 너와 나만이 가진 아이디어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데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커다란 문제는 AI는 대화 내용에 대한 책임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과의 대화와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제가 AI와 함께 해외 취업 커리어 패스에 대해 고민한 내용을 예로 들어봅시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마치고 해외 반도체 연구소로 이직해 글로벌 커리어를 만들고, 한국의 대학에 교수로 임용이 되고 싶다고 AI에게 이야기를 했죠. 해외로 나간다는 건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AI는 여러 가지 해외 기관을 추천해 줬습니다. 벨기에의 IMEC, 싱가포르의 A*star 등등 해외 기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줍니다. 여기에 더해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성공적으로 교수에 안착한 사례를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연세대, 서울대, 카이스트 등등 다양한 학교의 교수님들의 성공 사례를 이야기해 줍니다. 마치 밝은 미래가 있는 것처럼, 제 커리어 정도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줍니다. 이런 말들을 들으니 용기가 많이 생기더군요, 당장에 도전해서 해외생활 3~4년 정도면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제가 알고 있는 하이닉스 임원에서 커리어 전환에 성공한 교수님의 사례에 대해서 AI에게 전달해 주고 이야기해 봤습니다. 이 분의 사례를 더하면서 AI는 다시 한번 제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줍니다. 저와 교수님의 커리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쭉 비교해 줍니다. 논문, 특허, 거쳐온 회사 등등을 비교하면서 제가 해외로 나갔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교수님의 커리어가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분은 선도적인 반도체 선행 연구로 업적을 많이 쌓아오신 분인데, 마치 반도체 대량 생산 전문가인 것처럼 말을 하더군요. 여기서 깨달았습니다. AI가 마치 자기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현실과 가상의 사실이 교묘하게 섞여서 책임질 수 없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던 거구나...


결국 저는 처음부터 해외 취업에 대한 데이터 조사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고, 저와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분들을 소개받기 시작했습니다. AI가 알려준 대화 내용이 너무나 실제와 흡사해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데이터가 나오기 전 까지는 저도 AI의 말을 믿고 있었습니다. 희망에 가득 차 있었죠. 심지어 더 무서운 건, 저는 AI에게 제 커리어를 상담하기를 비판적으로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자 제 커리어에서 걱정이 될만한 포인트들과, 해외 생활의 어려움 등을 적절히 잘 버무려서 비판적인 시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조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대화 내용을 점점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마냥 칭찬과 격려만 해줬다면 너무 긍정적인 말만 한다고 못 미덥다고 여겼겠지만, 긍정과 부정적 반응을 적절히 섞어서 말해주니 정신을 못 차리겠더군요. AI는 다양한 정보를 줄 수 있지만 오히려 헷갈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점은 AI는 이 대화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는 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결정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대화했지만, AI는 그에 대한 책임이 없습니다. 마치 입 바른 소리만 하는 경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충신이라 생각하고 썼더니, 사실은 간신배였던 거죠.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십상시의 난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대는 충언과 간언이 교차하는 시대입니다. 황제는 결정권자입니다. 신하들을 통해서 세상이 흘러가는 정보를 얻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듣습니다. 좋은 정보, 바른 판단, 나쁜 정보, 나쁜 판단이 섞여 있죠.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집니다.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거짓을 섞어서 황제를 속이는 십상시들입니다. 이들은 관직도 없고, 가족도 없기 때문에 책임이 없는 자들입니다. 신하들에 비해서는 잃을 것도 없었죠. 하지만 황제는 이들의 말을 듣기 시작합니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해줬기 때문이죠. AI를 맹신하기 시작하기 시작한다면, 양질의 정보와 근거를 가지고 판단력을 높여서 AI를 사용했지만, 오히려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걸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AI는 기계이므로 십상시들처럼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속이려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그럴듯하게 마치 진실인 것처럼 표현하는 능력이 AI에게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도움 되는 것은 AI와 사람의 대화 모두 필요합니다. 효율의 측면에서 AI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게 시대의 흐름인 것이죠. 산업'혁명'이라고 불러가면서 까지 변화가 창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AI를 배척하는 것은 나는 시대에 뒤처지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결정과 판단의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남는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대화 내용은 책임감이 담깁니다. 돈이 걸린 거래라면 법적인 책임도 지게 되죠.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대화 내용에 대해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게 됩니다. 거짓을 고한다면,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이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 역시 책임감을 가지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이런 것들이 발전하다 보면 사람 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죠. 사람이나 AI에 대해 똑같이 대화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하지만, 대화에서 오는 책임의 무게감은 다릅니다.



속도는 AI, 방향은 사람


역설적으로, AI는 사람을 대체하지만 결국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게 만듭니다.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사람을 더더욱 사람답게 대해야 하는 시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에게 바른 조언, 바른 도움을 주고 함께 방향성을 만들어 갈 사람은 점점 더 귀해지는 시대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꼭 붙들어야겠죠. AI는 속도를 만들어 주겠지만, 사람은 방향을 만들어갑니다.


즉 여전히 사람을 모을 줄 안다는 것은 AI 시대에 있어서도 성공을 위한 중요한 요소인 셈입니다. 성공할 확률을 높여줄 좋은 판단과 결정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모으기 위한 구심점에 감사가 있습니다. AI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올라가 버리는 신뢰의 비용을 낮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신뢰를 이끌어내는 언어입니다. 앞선 장에서 표현했듯 감사는 관계의 접착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내 판단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표현이 감사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사 외에도 사람을 모으는 매개수단들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금전적인 보상, 돈입니다. 돈을 많이 주는 이에게 사람이 모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같은 돈을 준다면? 기왕이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모일 것입니다. 그 편이 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뜻을 펼치기 좋은 환경과 문화를 갖출 확률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다양한 기업들이 자기 기업에 감사 문화를 심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결국 관계가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전히 AI 시대에도 관계를 맺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거죠. 시대가 발전하면 로봇을 대면하고,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사라질 것 같았는데 여전히 관계가 중요하다니...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죠? 관계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AI 시대에도 여전히 감사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수긍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팔로우와 라이킷은 글을 쓰는데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file_00000000512c7206be3223a6e70489c7.png


이전 24화기술의 중심에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