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 즘 들려오는 노벨상 수상 소식. 한동안 한국 문학계에서는 한국인 시인이 노벨상 후보자로 거론되며 수상 가능성 기대를 걸던 뉴스가 도배가 되기도 했었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10월 7일에 발표가 난다. 때가 때인 만큼 떠오르는 시인이 한 명 있다. 바로 앤 카슨. 그녀는 캐나다 태생의 시인으로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근 3, 4년 사이에 하나 둘 그녀의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고 있다.
앤 카슨은 1950년 캐나타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시인, 에세이작가, 그리스고전문학 전문가, 번역가...그녀는 그녀의 문학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역할로 존재하는 작가이다. 작가로서 그녀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십대 시절부터 빠진 라틴, 고대 그리스어에 대한 애정이다.
그녀가 고대 그리스어에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도록 한 것에는 와스카 와일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와스카 와일드? 1950년 태생의 캐나다 십대 소녀와 아일랜드 태생의 19세기 말 탐미주의자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카슨이 직접적으로 고대 그리스어를 접하게 되는 시점은 1965년. 온타리오 어느 쇼핑몰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보게 된다. 그것은 사포의 그리스어, 영어 대역 시집이었다. 그녀는 그 이국적인 언어에 매료 당하고 운좋게도 전학 간 고등학교에서 그리스어를 배울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스어를 아는 라틴어 교사의 도움으로 카슨은 점심 시간을 쪼개 그리스어를 배우게 된다. 그녀의 고전문학, 고대 그리스어에 대한 애정은 단순히 집어든 대역 시집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십대 시절 그녀의 우상은 놀랍게도 오스카 와일드였다. 그리스어를 배우려는 열망의 일부는 그 시절 꽂힌 오스카 와일드(고전에 대한 교육, 우아한 옷차림, 재치..)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리스어를 배우면, 더욱 더 오스카 와일드처럼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때때로 특별한 행사 때 입는 오스카 와일드 코스튬도 있었지요."
그녀는 자신이 "부활한 오스카 와일드"였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선망과 열정은 그의 고전문학에 대한 심취 때문이 아닌, 와일드의 옷차림새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녀는 "오스카 와일드 정장"(슬림한 플레이드 바지, 옷깃에 흰색 실이 박힌 어두운 색 긴 코트, 그리고 밝은 빨강색의 넥타이)”을 읽고 퍼포먼스 등 행사에 참여한다.
그녀의 글쓰기는 시 또는 산문, 하나의 독립된 형식으로 나눠 떨어지지 않는다. 시이면서 에세이 같고, 산문 같기도 한, 어떨 때는 '탱고', '오페라'라고 이름 붙는 그녀의 글쓰기. 그녀의 작품에 대한 양립적인 평가는 그녀가 다루는 주제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이런 글쓰기 형식에도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과 창작 방식에 대한 대중과 비평가들의 평가는 양립적이다. 그녀의 작품을 두고 한쪽에서는 독창적이고 뛰어난 스토리텔링이라고 칭찬하는 반면, 한쪽에서는 억지스럽고,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허세가득한 글쓰기라고 비판한다.
2011년 가디언 지에서 다섯 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현존하는 작가 중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최애' 작가를 뽑아달라는 물음에, 다섯 명의 시인 중 2명이 앤 카슨을 뽑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고국, 캐나다에선 호된 비판을 받았다. 몇몇 남성 작가들이 그녀의 글쓰기를 두고 '허세'라고 몰아붙였다.
고전학자이자 시인인 그녀의 글쓰기는 하이브리드적이다. 신화적 인물과 실존 인물을 뒤섞고, 시와 소설과 산문이 하나의 작품에 혼재한다. <빨강의 자서전>은 그리스 서정시인 스테시코로스 장편 서정시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이 시 속 게리온과 헤라클레스 두 인물을 현대 미국의 게이 청소년으로 설정한 '시로 쓴 소설'이다. <레드 독>은 <빨강의 자서전> "속편"으로 나왔지만 인물과 장소 등 속편으로 부르기엔 무리가 있을 만큼 재구성되었다. <탈창조>는 시이면서 산문, 오페라이다. <남편의 아름다움> 책 커버에는 "29개의 탱고로 쓴 허구적인 에세이"라는 말이 쓰여져 있다.
그녀의 창작 활동은 단순히 장르 혼종, 혼합의 글쓰기로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동반자 로버트 커리와 함께 자신의 작품을 무대 위에 공연으로 올리는 일에도 열정적이다. 여러 예술가들, 공연 예술가들, 댄서, 비디오, 사운드 아트 등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가지고 있다.
이쯤되면 고전문학과 번역을 자신의 글쓰기 속에 포함시키고, 장르 혼종의 작품을 이어가는 그녀가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을지 궁금할 것이다. 놀랍게도 그녀만의 뛰어난 스토리텔링은 그녀에게 문학적, 상업적 성공 모두를 가져다 주었다. 2001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T.S. 엘리엇 상을 수상하고, 2021년 4월 펜/나보코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그녀는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창의적인 그녀의 스토리텔링은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신화와 자서전적인 서사가 결합할 때, 또는 영감을 받은 다른 예술가의 작품과 자기 고백적인 서사가 결합할 때 그 독창성은 더욱 돋보인다.
<남편의 아름다움>은 존 키츠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시와 메모 등을 인용한 글이 각 장의 서두에 등장한다. 그리고 앤 카슨의 자전적인 경험, 사랑과 이별의 경험이 담긴다. 어린 시절 사랑에 빠진 한 남자와 결혼에 이르고, 그의 배신과 이별을 다룬다. 책 속에는 남편이 카슨 몰래 그녀의 시를 자기가 쓴 것처럼 속여 발표하고, 그녀의 노트를 훔치가버린 일화가 나온다.
<유리 에세이>에서 시적 화자는 캐나다 어머니의 집을 방문하고 에밀리 브론테의 시를 읽는다. 에밀리 브론테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그녀는 자신을 떠나버린 남자친구에 대해 생각한다. <녹스> 는 평탄치 못한 삶을 살다 떠난 그녀의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쓴 애도시이다.
1979년 그녀의 오빠 마이클은 약물중독과 마약판매 등의 혐의로 캐나다에서 도피한다. 이후 인도와 유럽 등으로 22년을 떠돌다 코펜하겐에서 그는 삶을 마감한다. 죽기 얼마 전 그녀의 오빠는 카슨에게 전화를 했고, 카슨이 코펜하겐으로 가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하지만, 그녀가 출발하기 일주일 전, 그녀는 오빠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 한통을 받는다. <녹스>는 고대 로마 서정 시인 카툴루스가 쓴 시 <카툴루스 101> 의 시가 실려있다. 카슨은 라틴어 원문과 자신의 번역을 함께 담았다. 카툴루스의 이 시는 트로이에서 죽은 그의 형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이다.
이렇듯 앤 카슨은 자전적인 서사를 시공간을 초월한 영감의 대상과 결합한다. 그녀에게 시와 번역과 시적 산문과 에세이, 소설... 글의 형식적 구분은 무의미하다.
"형식" 간의 경계선은 우리들이 만든 것이다. "창의적인" 시도에서 "학문적인" 것을 분리하려는 일은 명백히 잘못되었고 무의미하다. 이런 카테고리들을 떠받는 척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달콤씁쓸한 에로스>(1981)는 내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나는 박사과정 학생들이 박사학위 주제로 종종 그들 존재의 구심적인 문제를 고립시키는 주제를 택하는 것을 알고 있다. 칸트의 첫 박사학위 논문은 <불에 관하여>이었다.
형식과 카테고리에 관한 그녀의 생각은 첫 책 <달콤씁쓸한 에로스>에서부터 반영되어 있다. 이 <달콤씁쓸한 에로스>를 말하기 위해 먼저 카슨을, 그리고 그녀의 까다롭지만 황홀한 글쓰기를 이야기 해야만 했다. 자, 이제 시작부터 이미 완성된 앤 카슨의 첫 작품을 만나볼 시간이다. (2부에서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