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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라 Mar 29. 2021

꿈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공존하는 하루 속에서도 꿈을 내버려 두지 않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외면하고 있는 꿈이 있으신가요?

지금 주어진 현실을 쫓아 살아가기 바쁘기에 '꿈이란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추구할 수 있는 상위의 욕구'라고 생각하거나 '젊은 시절의 판타지'라고 여기진 않으신가요?


'내게 주어진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고 말하면서도 '운명은 변화시킬 수 없고, 미래는 내가 예견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며 자기의 가능성을 한계 짓고 있진 않으신가요?


꿈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억압된 꿈의 열망은 아쉬움과 후회로, 열등감으로, 끝없는 자기 연민으로 모습을 바꾸어 내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제까지 와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비난했던 타인의 삶이 실은 내가 열망했던 것임을 알아차린 적이 있다면,


나도 모르게 소망하는 미래를 떠올리다 울컥 솟아오른 뜨거운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면,


당신 안엔 꿈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용기 내어 바라보지도 못했고 외면하기만 했던 꿈을 이루어 가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와 공존하는 하루 속에서도 꿈을 내버려 두지 않는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


나 만의 심리치료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 가진 꿈]

나는 이제까지' 무언가를 이룬다'던지,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던지,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특정한 열망이 없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내에 성적이 맞는 곳을 찾아 지원했고, 대학 시절엔 무려 학사경고를 받을 정도로 공부를 등한시 했으면서, 그렇다고 딱히 기억에 남게 놀지도 못했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하루하루 그저 그렇게 보냈던 것 같다.


첫 직장은 전공이랑 상관도 없는 뮤지컬 회사 기획팀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 쫓아 선택한 첫 직장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에 불합리한 근무여건, 성희롱 경험들, 아직도 용서하기 힘든 최악의 직장 상사를 만나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꿈은커녕 지옥 같은 내일이 오지 않기를 소망했었다.


24살 겨울. 일 년 만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쌩 시골'에 살게 되었다. 주변에 편의점도 없고 도시가스도 연결되지 않는 원룸에서 지내며 한 학년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의 미술강사를 시작으로 미술심리치료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14년간 천천히 한 계단, 두 계단 목표를 성취해왔다.

자격증을 따고 학위를 이수하고, 프리랜서 미술심리치료사로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진행할 수 있는 임상기관들을 한 군데씩 늘려갔다.

경력이 쌓여가고 인정도 받으며 일과 관련해서 나름 만족하며 지내왔었다.


그러나 늘 아쉬움과 씁쓸함의 감정이 함께 했다.


난 프리랜서 형태로 정신건강, 사회복지, 교육 관련 기관에서 주관하는 심리정서 관련 사업의 미술심리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해왔다.


프리랜서로서 우선, 수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금전관리를 하기 힘들었고 경제계획은 생각도 못해봤다.


특정 사회 집단에 소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긴 하지만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어서 외로웠다.


또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이루어도 그것은 내가 일하는 기관의 실적이 되는 것이기에 보람은 있었지만 직접적인 성취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미술심리치료사 동료들이 하나 둘 자기만의 심리치료센터를 개원하는 것을 보며 '아.. 나도 나만의 치료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치료실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사업을 기획할 수도 있고 그곳에서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모임의 장소로 만들어 외롭지 않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겐 공간을 임대할 자금도 모자랐고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니 시간마저 없어졌다.


사실 돈은 둘째치고 육아를 하며 치료실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국가 보육지침상 나의 경우 다민이를 어린이집에서 4시까지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하고 그 이상의 시간을 떨어뜨려 놓고 싶지도 않았다. 고로 내가 일을 할 수 있고 치료실을 운영하는 시간은 다민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한정된다.

그러나 경험상 내담자들은 주로 3시는 넘어서 센터를 찾기 때문에 시간이 어긋나 치료실을 운영할 수 없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그냥 지금처럼 사는 게 내 인생에선 가장 최선이야...
[이루어 내지 못할까 봐 외면하고 억압하는 꿈]

심리치료실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밀려드는 속상한 감정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켜야 했기에 나는 꿈을 솔직한 태도로 바라보지 못하고 합리화하며 진정한 욕구를 외면했다.


"진정으로 사명감 있는 심리치료사는 돈을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돈을 벌고 싶은 욕구를 억압했다.


"지금은 아이에게만 집중할 때야.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해 낼 순 없어, 그건 욕심일 뿐이니 그냥 주어진 일만 하자."라고 되뇌며 창조에 대한 욕구를 억압했다.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피곤한 일이야.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야."라며 소통의 욕구를 억압했다.


그리고 치료실을 차리지 않는 갖가지 이유들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지금이 가장 만족스러운 상황임을 인식하려 했다.


"임대료 맞추는 걸 생각하면 금전적으로 손해일 수 있어. 지금은 적어도 손실 날 일은 없잖아"

"치료실을 열면 그곳을 계속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아." 

"치료실을 운영하면 괜히 책임질 일도 많아지고 부담스러워질 거야."


그렇게 내 마음을 보호하면서 나만의 치료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부정했다. 애초에 나는 그러한 바람 따위는 가지지도 않았던 사람처럼...


그러나 억압된 마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꿈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감정의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는 억압된 꿈의 열망]

억압된 마음은 무의식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유 없이 느껴지는 허무함으로,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갈등으로... 고통스러운 감정의 이름표를 달고 나를 엄습했다.


두 번의 유산 끝에 만난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한 우리 아이와의 시간임에도 육아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고,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지 않고 내가 전담해서 다 하기 때문에 내 꿈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어.', '남편이 돈을 좀 더 잘 벌었더라면 라면 나를 지원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며 착한 우리 남편을 못나게 끌어내리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많이 쉬었는지 어느 날 다민이가 "에휴~"하고 그 소리를 따라 하는데 심장이 철렁했다.


내 안에서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새어 나와 아이에게 전달되고 있구나!


나는 내 마음을 용기 있게 직면하기로 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노트북을 켜면 나만의 심리치료실이 열리는 거야!
[아이와 공존하는 시간 속에서 꿈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다]

'그래, 나는 사실 나만의 치료실을 가지고 싶다.


그러나 치료실 그 자체는 꿈이 아니다.

치료실은 일종의 내 꿈의 상징이다.


내 꿈은 나의 열정이 다름 아닌 나를 빛내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며,

좋은 영향력을 주면서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다.'


나는 우선 내 진정한 욕구를 인정하고 나의 꿈을 정의했다.


그리고 아이와 공존하는 시간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으며 용기 있게 실현해 보기로 했다.


다민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4시부터 9시까지는 충분히 다민이한테 몰두하며 엄마의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가 잠든 후, 그리고 일어나기 전 적어도 5시간은 꿈의 시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꿈의 시간 동안 나는 엄마가 아닌 오롯이 꿈의 실현에 도전하는 미술심리치료사가 되어 공부를 하고 일을 하기로 했다. 프리랜서다 보니 일하지 않는 날도 있어서 그런 날은 꿈의 시간이 덤으로 생긴다.


엄마로서의 시간과 꿈의 시간. 즉 엄마가 아닌 나의 시간을 분리하니 이전과 다르게 더욱 집중력 있게 일을 하고 아이를 돌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꿈을 이루어갈 공간을 인터넷에 만들었다.

내 이름을 그대로 딴 '아름나라'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 노트북을 켜면 그 안에 나만의 심리치료실이 열리는 거야."


내 꿈은 물리적인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하고 그에 맞추어 꿈의 스텝을 밟아 나가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꿈의 본질이 무엇이냐'이다.


나는 노트북 안에 있는 나의 치료실에서 내 꿈을 이루어 갈 것이다.


그동안 참아왔던 창조적인 욕구를 마음껏 발산시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멋진 프로그램들을 기획해 그것으로 돈도 벌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친한 이웃들도 많이 만들 것이다. 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를 브랜딩 할 것이며 내가 꿈꾸는 삶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나는 꿈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꿈을 실현하는 길엔 자기실현의 길이 함께 한다.
[내 안에 꿈을 꾸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어쩜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하기에 그것을 이루지 못할 때의 좌절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미리 실패를 예견하고, 꿈을 이룰 수 없는 갖가지 핑계를 만들며 시도 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느껴지는 큰 괴리에 이상적인 삶으로 감히 한 발자국도 딛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 스스로를 꿈 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규정지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억압한 꿈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고 자기를 괴롭히는 다양한 감정의 모습으로 출현해 주변에 머무르게 된다.


먼 훗날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았을 때 내가 살아내지 못한 삶을 아쉬워하지 않도록 내면에 억압해왔던 꿈을 솔직한 태도로 바라보고, 그 꿈을 정의하고, 실현해보는 용기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나의 마음 안엔 꿈을 꾸고 있는 또 다른 자기가 있을 수 있다. 억압하고 인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살려낸다는 점에서 꿈을 실현하는 여정은 자기실현의 여정과 행로를 같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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