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식은 연애> 열세 번째 이야기

by 옥광



삐비비빅~ 경수의 핸드폰 알람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바로 이어


“안녕히 계세요!”


경수가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선생님이 수업 끝이라고 말하기 전이었으니 오늘의 수업은 경수가 끝내버린 꼴이 되었다. 선생님은 반듯한 90도 인사를 하며 동시에 물감 투성이 앞치마를 벗어던지는 경수를 향해 말없이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미 한 시간 전부터 배가 고프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보았으니 저리 뛰쳐나가는 것이 놀랍지도 않았다. 경수는 수업 끝나기 몇 분 전부터 붓이며 물감들을 착착 정리 해 놓고, 교복 재킷도 입고 책가방도 등에 멘 채로 초조하게 핸드폰 시간만 보고 있었다.


“어어~ 같이 가! 선생님, 선생님! 저도 이제 안녕히 계세요!”


경수의 알람 소리에 부리나케 뒷정리를 한 두영이 경수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교복 재킷의 소매에 한쪽만 겨우 넣은 채 책가방을 제대로 메지 못 하고 봇짐마냥 움켜쥐고 뛰어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걷던 경수는 핸드폰으로 도착할 버스를 확인하고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곧 버스가 도착할 것이고 이 버스를 놓치면 15분을 기다려야 한다. 뒤에서 쫓아가던 두영은 빨라진 경수에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경수를 놓칠 거란 의심은 하지 않았다. 경수는 그 간절함에 비해 몸이 날래진 못했다. 두영은 충분히 경수를 따라잡았고 이내 경수를 앞질러 경수보다 먼저 도착한 버스를 붙잡고 경수가 제 때 버스에 탈 수 있도록 도왔다.


“허억! 허억! 버스 미친!! 핸드폰보다 빨리 왔어, 젠장…”


경수는 버스 뒷좌석 2인석을 다 차지하고 앉아 숨을 헐떡였다. 평상시의 경수는 뛰지 않는다. 아침 등교 때도 눈 앞의 교문이 닫혀 가는 걸 두 눈으로 보면서도 지각을 택하는 경수였다. 양 옆으로 가까스로 지각을 면해보겠다며 전력질주하는 동지들 사이에서 경수는 당당하게 경수만의 속도로 걸었다. 그런데 지금은 뛰었다. 오빠놈이 치킨 주문 인증샷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올해 대학생이 된 오빠놈은 알바비로 식구들 인원수에 맞춰 1인 1 닭을 주문해 놓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럼 그렇지! 이 오빠놈이 순순히 선행을 베풀 놈이 아니지! 자기 몫의 닭은 이미 다 먹었다며 내 몫의 닭이 탐난다는 것이다. 오늘 미술 학원 오기 전에 참치 김밥 두 줄에 불닭발 컵밥까지 먹었는데도 너무너무 배가 고파왔다. 뛰어 오느라 얼굴이 상기된 경수는 열까지 받아서 벌겋게 닳아 올랐다.


경수 바로 뒤에 앉은 두영은 책가방을 봇짐처럼 움켜쥐고 오느라 필요 이상으로 힘을 주었던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앞에 앉은 경수의 뒷모습을 보았다. 큰 숨을 몰아쉬는 경수의 뒷모습은 불곰 같았다. 두영은 동갑내기 경수보다 키가 작다. 허리도 훨씬 가늘다. 주변에선 그런 두영이 비리비리한 사내라며 수군거렸고 반대로 경수에겐 여자애가 쓸데없이 덩치만 커서 어디다 써먹겠냐며 놀려댔지만, 경수도 두영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두영은 눈 앞, 인간 불곰 위에 진짜 곰 머리가 보였다.


“야 이 미친년아! 머리에 그 수건 두른 거, 그건 빼야지!”

“뭐?! 뭐래 이 미친놈이! 빼면 되잖아! 이 미친놈아!!”


인간 불곰, 경수의 머리엔 귀엽고 동글동글한 라이언 머리가 매달려 있었다. 경수는 그림 그릴 때 머리카락이 얼굴에 흘러내리는 건 싫은데 고무줄로 묶고 있자니 얼굴이 땡겨 싫고 시중에 나와 있는 헤어밴드는 머리통이 죄는 게 싫다며 보들보들 극세사천으로 만들어진 세안 밴드를 머리에 두르고 그림을 그린다. 지금 급한 마음에 뛰어나오느라 라이언을 그대로 머리에 얹은 채 버스를 탄 것이다.


“근데… 이거 그냥 계속하고 있어야겠는데, 좋은데?”


경수는 고개를 몇 번 갸우뚱했다. 라이언이 까딱까딱 움직였다.


“아! 빼!!”


두영이 경수 머리의 라이언을 낚아채려고 손을 뻗었지만 두영의 손은 실패했고, 대신 경수의 손에 손목을 붙잡혔다. 60kg도 안 되는 두영의 연약한 손목은 70kg을 훌쩍 넘긴 경수의 손아귀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버스 안이라 아픈데 소리도 못 지르겠고 콧소리만 냈다. 경수는 그대로 라이언을 얹은 채로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굴러댔다. 내 몫의 치킨에 손을 댔다간 죽여버린다고 보낸 톡에 1씹인 오빠놈 때문이었다.


“아흐흐흥~ 그만… 그만 놔… 이 미친년아…”

“아! 응.”


두영은 하얗게 질리도록 붙잡혔던 손목에 갑자기 피가 통하자 전기가 저릿했다.


“치킨이 뭐라고 그렇게 뛰어? 아무리 급해도 나 챙겨준다고 했잖아… 그렇게 먼저 가버리면 나는 어떡하냐?”


경수가 자기만 혼자 남겨 놓았을 상황을 생각하니, 두영은 갑자기 무서워졌다. 경수는 두영과 유치원 때부터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학교도 쭉 같은 학교로 진학했고, 고2 때부터 미술학원도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경수가 절실하지 않았다. 고3 올라가던 겨울 올해 초, 학원에 민희가 나타났을 때부터 경수가 절실해졌다. 두영은 민희를 보고 소위 ‘첫눈에 반하다’를 시전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민희는 두영이 여태껏 태어나서 본 사람들과 완전히 달랐다. 두영 눈에는 다른 나라 사람으로 보였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의 외형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달랐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다른 나라 사람이 학원에 나타난데 이어 같은 단지에 살고 있다고 했다. 맙소사! 때문에 두영은 학원에서 집에 가는 길에 경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경수 없이 이 다른 나라 사람과 단 둘이 함께 있게 된다면 두영의 심장은 터질 것이 분명했다. 두영은 죽는 게 무서웠다.


“아이씨! 차 막히는 거임?”


인간 불곰이 씩씩거렸다.


“아니잖아. 미친년아. 신호 걸린 거야.”

“왜? 왜? 신호 고장인 거임? 왜 차가 안 가는데??”

“아 쫌. 진정 쫌. 정말. 진짜... 너는 진짜 왜 그러냐?”

“뭐가 미친놈아! 다 합당한 이유가 있잖아! 너야말로 미친놈아! 민희한테 제대로 말 한 번 못해보고 맨날 이게 뭐냐? 너 진짜 내일 민희 고백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뭐? 민희가 고백을 받는다고? 뭔 소리야?”

“에베베베베베~~~~~”

“아 뭐야?!!! 미친년아! 말 좀 해봐! 뭔 소리냐고?”


인간 불곰 머리 위, 라이언 곰까지 두영을 약 올리고 있었다. 아니 두영이 딱 그렇게 느꼈다. 두영은 인간 불곰까진 어떻게 못 하더라도 저 라이언 곰놈은 꼭 제압하리라 눈을 이글거렸다. 이글거리던지 말든지 에베베거리던 경수는 긴 신호가 바뀌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입을 뗐다.


“오늘 김도현 스케치북 사건 몰라?”

“김도현?”

“그래, 김도현. 몰라? 너 없었냐, 그때? 상담 중이었나?”


김도현. 공식적인 키가 187에 어깨가 각 한 뼘이 넘는 아이돌상인 친구였다. 그 녀석은 그림 실력도 좋아 학원에서 경수와 1,2등을 겨루었다. 정확히 두영에겐 그냥 같은 학원 지인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두영은 도현이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가끔 경수 옆에서 도현이가 경수에게 쏘는 빵 같은걸 얻어먹을 때 고맙다고 말한 게 다였다. 도현이가 사 주는 빵은 빵이 아니고 빵쪼가리라며 투덜댔지만 맛은 또 있다며 경수는 두영이 몫까지 다 먹어버리곤 했다. 그런 도현이에게 비밀 스케치북이 있었는데 오늘 그 스케치북을 선생님한테 압수당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그려진 어떤 그림 때문에.


“그 그림이 김도현이 자기 첫사랑을 그린 거라고 했다고?!!”

“응!! 선생님이 완전 개깜놀했다니까. 그러더니 아무튼 수업 시간에 딴짓하지 말라고 압수해갔어.”

“그, 그러니까… 그 김도현, 김도현의 첫사랑?”

“그래! 그 김도현 첫사랑. 그게 누구겠냐? 딱 고민희지!”

“헐!”


아이돌이 다른 나라 사람을 좋아한다는 소문은 이미 암암리에 학원 내에 널리 퍼져 있었다. 도현이는 우리와 반대 방향 동네에 살면서도 종종 우리와 같이 버스를 기다리곤 했었다. 그때마다 민희 옆에서 둘이 도란도란 떠들었는데 둘은 척하면 척하며 말이 잘 통해 보였다. 그 모습이 웹드라마 같았다. 그래서 민희가 도현이와 이야기할 때, 두영은 민희 얼굴을 모니터 속 연예인 얼굴 보듯 볼 수 있었다. 민희 눈에 두영은 안 보일 것이다. 그런 민희를 바라보는 도현이의 얼굴도 기억한다. 그 상냥한 눈 빛, 민희가 하는 그 어떤 말 한 개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환한 집중력. 그 너머엔 인간 불곰 경수가 빵쪼가리를 먹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론 빵쪼가리의 크림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일 김도현이 그냥 고백하지 않겠냐? 이왕 다 뽀록난거.”

“어? 왜?”


두영은 멘탈코마 상태였다.


“미친놈아, 정신 차려! 왜는 뭐가 왜야? 김도현이 고민희 좋아하니까 고백하는 거지.”

“어? 정말?”

“내일 학원 난리 나겠네~ 사실… 김도현 괜찮지. 생긴 것도 완성형이고 애 하는 짓도 완성형이고.”

“그치… 김도현 괜찮지… 너무…”

“그치…”


두영에 이어 경수도 말이 없어졌다. 버스가 둘이 사는 단지 앞 정류장에 정차했기 때문이다. 경수는 학원에서처럼 두영을 남겨 놓은 채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내렸다. 멘탈코마 상태인 두영은 하마터면 못 내릴 뻔했다. 항상 이 시간에 여기에서 내리는 두영을 기억한 버스 아저씨가 “학생은 안 내리나?”라고 물어봐줘서 겨우 내렸다. 앞에 불곰이 뛰어가는 게 보였다. 두영은 내리면서 아저씨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는 잊지 않고 했고, 대신 불곰에게 잘 들어가라는 인사는 잊었다. 어차피 민희는 그냥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는데 막상 내일 도현이와 커플이 될 거라 생각하니… 그냥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수는 얼굴이 띵띵 부어 있었다. 어젯밤, 오빠놈이 쏜 1닭을 무사히 먹고 라면까지 끓여 밥까지 깔끔하게 말아먹은 탓이었다. 띵띵 부은 얼굴로 학원 가기 전, 분식집에서 또 참치김밥 두 줄을 먹고 뭘 더 먹어야 배가 좀 잠잠해지려나 고민 중이었다. 지난밤 먹은 라면 맛이 입에 맴돌아 치즈라면을 시켰다. 분식집 사장님은 빨리 먹어야 학원 시작 전에 들어갈 수 있다며 라면을 내놨고 기본 김밥 한 줄도 서비스로 주셨다.


잠잠해진 배에 나른해진 경수는 라이언 세안 밴드를 머리에 두르고 어슬렁어슬렁 학원 실기실 향했다. 실기실엔 두영이 빼고 다 있었다. 두영이는 오늘 학원에 못 갈 거 같다고 하루 종일 엄살을 피웠었다. 도현이는 민희 옆에 앉아 있었다. 어제 압수당했던 도현이의 문제적 스케치북이 다시 도현이 손에 들려 있었고 민희는 그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었다.


‘이런… 오두영놈은 정말 안 오는 게 나으려나…’


경수는 두영이가 조금 짠해지려고 했다. 그런데,


“꺅!!! 민경수!!!”

“꺅!!! 어떡할 거야 민경수!!!”

“꺅!!! 웬일이야 민경수! 어쩌면 좋아!!!”

“아 몰라!!! 꺅!!! 민경수!!! 어떻게!!!”


경수를 발견한 다른 애들이 일제히 꺅꺅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너네 단체로 미쳤냐?”


심지어 경수를 발견한 민희까지 꺅꺅거렸다. 나른했던 경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꺅꺅 소리에 놀랬기 때문이다.


“김도현! 김도현!”


꺅꺅거리던 애들은 이내 김도현의 이름을 떼로 부르기 시작했다. 경수의 눈은 김도현으로 향했고 김도현의 작은 얼굴은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경수는 더 어안이 벙벙해졌고 실기실 입구에 선 체로 얼어붙었다. 민희가 꺅꺅 소리와 김도현을 부르는 소리를 비집고 이쁘게 경수에게 걸어왔다. 손엔 도현이의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다.


“경수야~ 이것 봐봐~ 웬일이야~”


민희가 경수에게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어! 뭐야? 다 민경수잖아?!”


뭐라 뭐라 해도 학원까지 쨀 배짱은 없던 두영이 뒤늦게 학원에 도착해 경수 뒤에서 스케치북을 보더니 외쳤다. 다 민경수라고! 스케치북엔 웬 경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이 여럿 그려져 있었다. 그림들은 뭘 먹는 모습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엔 구부정한 자세로 그림 그리는 모습, 그리고 조는 모습을 보였다. 먹을 땐 당연한 거고 그림을 그리는 때도 조는 순간에도 입을 벌리고 있어 입을 꼭 다문 그림은 안 보였다.


“어떻게 경수야~ 도현이가 다 너를 그린 거래~”

“왜? 왜? 김도현 첫사랑 그림이라면서? 민경수를 왜??”


민희는 너무 신나 했고 두영이는 말도 안 된다며 따지고 들었다. 그리고 다른 애들은 집단으로 흥분해 있었다. 구석에서 선생님은 경수 네가 맞다며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게… 이게 나라고?”


경수 눈에는 너무 과장이 심한 그림들이었다. 그림들이 하는 짓은 경수가 주로 하는 짓이 맞지만 그 그림들 생김새가 경수 자신이라고 하기엔… 김도현 표련력이 좀 별론데.


“야! 김도현, 내가 이렇게 생겼냐? 너무하잖아!”


그렇다. 너무했다. 경수라고 하기엔 도현이는 경수를 너무 이쁘게 그려놨다. 만약 그림들이 머리에 라이언을 얹고 있지 않았다면 그린 사람이 누구라고 밝히지 않는 이상, 경수라고 알아볼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야! 이건 누가 봐도 민경수네! 라이언이 딱 민경수야! 똑같네 똑같아.”


오두영놈만 흥분해서 경수랑 똑같다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그림의 현실 고증엔 관심 없었고, 오직 오늘 커플 탄생 예감에만 들떠 있었다.


“웬일이야~ 오늘 김도현이 민경수한테 고백하는 거야~ 웬일이야~ 웬일, 웬일!”


경수는 도현이가 맘에 들었다. 자신과 1,2위를 다투는 그림 실력도 자극돼서 좋았고, 키가 큰 것도 괜찮았다. 잘 생긴 얼굴도 좋았다. 그러나,


“...김도현 나와.”


경수 말 한마디에 도현이는 눈을 반짝이며 경수 뒤를 쫓았다. 그 뒤를 또 남은 애들이 쫓아나가고 싶어 했고, 수업을 해야만 하는 선생님이 겨우 붙잡았다.


5시가 넘었고 선생님은 경수와 도현이 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둘이 알아서 정리하고 들어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수업을 시작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둘이 다시 돌아오면 이 아이들은 또 흥분할 테고, 그 생각을 하니 오늘 수업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었다. 둘이 나간 지 10분도 안돼서 실기실 문이 열렸다. 애들은 미어캣마냥 일제히 문을 돌아봤다. 도현이가 망연자실한 잿빛 얼굴로 들어왔다. 아이돌 같던 얼굴에 빛이 꺼져 있었다. 뒤에 경수가 예의 그 나른한 얼굴로 따라 들어왔다. 경수는 원래 얼굴 그대로였다.


“자~ 자~ 빨리 그려. 수업 중이다 이것들아.”


도현이의 어두운 낯빛 덕택에 아이들은 섣불리 흥분하지 않았고, 선생님은 오늘의 수업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경수야, 도현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민희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정말 작은 소리로 경수에게 물어봤다.


“뭐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왜 아무 일도 없어? 도현이가 고백 안 했어? 사귀자고 안 해?”

“응, 하던데.”

“그런데 도현이 얼굴이 왜 저래? 너네… 사귀는 거 아니야?”

“어, 안 사귀는데. 내가 싫다고 했어.”


민희가 정말 작은 소리로 물어봤었고 경수도 나름 작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실기실 안 모든 아이들은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둘이 대화를 시작한 순간, 이 대화를 듣고 싶어 한 모두가 뜻을 모아 숨소리를 죽여가며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별로거든. 김도현 안 좋아해.”


민희가 대답을 못 했고, 실기실 안은 더 극도로 조용해졌다. 경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도현이 역시 괜찮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수는 그 이상의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애들은 뭐라고 막 수군대고 싶었을 테지만 도현이가 버티고 있었으므로 입을 꾹 다무는데 노력했다. 선생님마저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버스 정류장엔 경수와 두영이만 있었다. 어제같이 급하게 나온 것도 아닌데 민희는 보이지 않았다. 민희는 다른 친구들과 도현이랑 야식을 먹고 가겠다고 먼저 가라고 했다.


“야! 넌 어떻게 김도현을 차냐?”

“뭐래? 미친놈이, 내 마음이지! 너나 똑바로 해, 미친놈아!”

“아, 너 때문에 민희가 도현이랑 야식 먹으러 갔잖아.”

“뭐래? 미친놈아! 너도 야식 먹으러 가, 그러면!”


버스가 도착했고 두영이는 투덜대면서도 경수를 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경수는 편하다며 라이언 세안 밴드를 계속하고 있었다.


“야, 너 진짜 라이언이라도 떼라. 도현이 그림 생각하면 안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미친 새끼! 야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라고 내가 이걸 안 해?”

“하, 진짜 불곰 같은 놈.”

“미친놈이 불곰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야! 나 서 있거든!”


원래 우리 동네 가는 버스는 이 시간에 자리가 많았는데 오늘따라 사람이 이상하게 많았다. 먼저 올라탄 경수는 하나 남은 빈자리를 차지했고 두영이는 그 옆에 서 있었다. 서서 가는 두영이는 버스가 초록불만 받아 멈춤 없이 쭉 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불곰과 라이언은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졸고 있었다. 침만 안 흘리면 다행이다.











첫사랑. by 옥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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