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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Jun 28. 2023

습관성 웃음 증후군

표정 주름 너란 녀석

나는 자주 놀란다, 가 아니라

나는 자주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전혀 내 의도와 상관이 없이 말이다.

예를 들어 오늘처럼.


- 박쿠쿠님, 오늘은 저녁부터 비가 온대요.

- 아, 정말요. (전혀 놀랍지 않지만 이미 아주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음)

- 뭘 그렇게 놀라세요? 장마인데. 우산 없으세요?

- (자주 들어서 흥미롭지 않음) 아니요. 저 비 오는 거 알고 있었고, 우산도 있는데요? 저 지금 100% 잔잔한데요?

- 아닌데? 방금 엄청 놀란 표정 지으셨는데? 아, 박쿠쿠님이 말씀하실 때 표정을 많이 쓰시는구나. 어머! 박쿠쿠님 그러고 보니 표정주름이 많으시네요!


표정주름… 표정주름…

아 요새 거울 속 내 모습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 하였더니 그것이 바로 표정주름 너 녀석 때문이로구나… 단어도 참 직관적이기도 하지. 표정으로 만들어진 주름이라니.

그래. 놀란 표정은 이마 주름을 유발하겠지. 아무렴. 그럼 내 눈가와 입가에 있는 빗살무늬 토기처럼 자글자글한 주름들은?


사실 놀라는 표정만이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 병이 하나 있다.

너무 일찍 발현하여 불치병이 되어 버린 병. 익히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치료약이 전무하며 민간치료도 손을 대지 못한 이 병.

이 병은 바로 ‘습관성 웃음 증후군’이다.


웃는 게 뭐가 어때서?라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꽤 많은 비율로 웃는 얼굴은 살아가는데 큰 무기가 된다. 크게 애쓰지 않아도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의심 및 오해를(여기선 이 단어들이  적절하다) 받을 수 있고, 이 오해들이 세월과 함께 모이고 한 땀 한 땀 누벼져 단단하고 아름다운 갑옷으로 나를 보호해 준다.


며칠 전에도 처음 보는 타 부서 직원과 업무적으로 마찰이 발생하여 강하게 의견을 표출하고 돌아오면서 후회되는 마음에 옆에 있던 후배에게 물었다.

- 동글님, 저 방금 너무 싸가지가, 없었죠… 기분 많이 나쁘셨을까요…?

- 박쿠쿠님, 세상에서 제일 상냥하셨어요 지금. 오 마이 갓.


이래서 나의 본능이 이 갑옷을 벗지 못하고 이고 지고 한 세월을 모시고 다니는 걸지도 모르지.


습관성 웃음 증후군이 100% 등장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초면’의 상황이다. 모르는 사람과 대면하면 나는 바로 웃는다. 그냥 웃는다. 반사적이다. 40년 가까이 쌓아놓은 뇌세포들의 디폴트 데이터 값이기 때문에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 만약 박쿠쿠 웃기기 콘테스트가 열린다면 참가자는 초면인 분을 추천한다. 등장과 동시에 대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럼 습관성 웃음 증후군이 단점으로 변질되는 상황은 언제인고 하니, 당연히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이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은 대부분 우려, 걱정, 심각, 분노, 절망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공유되는 상황인데 그중 최고는 당연 슬픔이다. 슬퍼야 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습관성 웃음 증후군 환자의 고통. 짐작들 하시겠는지.


King of 슬픔이 흐르는 공간은 단연 장례식장인데.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분과 관계된 장례식장에서는 내가 슬픔 속에 빠져있을 테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웃음 증후군 역치 도달 불가)

허나, 만약 상주가 초면이라면? 그때부터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상주가 초면인 상황이 과연 빈번할까 의구심이 생길 수 있지만 밥벌이의 지겨움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회사원에게는 그리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현 부서 전임 팀장님(전배 온 지 얼마 안 되어 초면임)의 빙모상 또는 회사 전 경영 고문님(입사 전에 퇴사하심) 본인상 혹은 신랑의 회사 선배의 부친상(우리 아이 돌잔치에 오셨다고 하지만 기억에서 사라져서 사실상 초면임) 같은 경우이다.


내 뇌가 상대방이 초면임을 감지하는 데이터 값을 입력하고, 표정을 통해 웃음이란 입력값을 여과 없이 출력한다. 아, 아찔.


그런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단체 조문객 틈에 끼어 머리를 깊이 숙이고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 방법으로 어찌어찌 모면하기는 하지만, 도리를 다하러 간 곳에서 제 도리를 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 같아 매번 마음 한 구석이 영 불편한다.


신랑에게 이런 나의 고민을 털어놔 보았으나 신랑은 ‘우리 색시는 사이코 패스가 아니야. 웃지 않을 수 있어.’라는 식의 이상한 당부를 가장한 용기를 주는데.


얼마 전 한 드라마에서 나와 증상이 99% 일치하는 심리 상담사의 고민을 만날 수 있었다.


무표정이 안 돼요. 눈앞에 사람이 보이면 자동적으로 웃는 표정이 돼요. 그래서 상갓집 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그 상담사는 해방클럽이라는 동아리를 통해 몇 가지 연습을 하게 된다.

1.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2.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3. 정직하게 나를 보겠다.


아, 나의 습관성 놀람/웃음 증후군은 나를 밝은 사람으로 치장하기 위한 그저 마감 상태가 그럭저럭 훌륭한 인형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놀람이 이마에 새겨지고 즐거움이 눈과 입가에 새겨진 것이 어쩌면,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지 않은 대가로 치른 주홍글씨가 아니었을까.

표정 주름을 없애는 방법은 피부과가 아닌 나 자신에게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지켜줬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날 거울을 보며 나의 표정주름들이 매우 불편하게 마음 쓰이는 그런 날, 오늘의 너는 얼마나 너 자신에게 정직했는지 물어보려고 한다.

박쿠쿠, 오늘 너에게 새겨진 주름은 정직한 주름인가? 진정 그러한가?


그리고 전정한 정직이 3회 쌓이면 그때 보상으로 피부과를 알아보는 것으로…(질척)


피부과 예약을 미처 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칭찬하며, 오늘의 퇴근곡으로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을 선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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