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나는 주머니 Jul 27. 2023

그해 여름 우리는

잊고 싶지 않지만 잊혀 가는 것들과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기어코 기억되어지는 것들이 있다.

‘여름밤’

당신들에게 ‘여름밤’ 이란, 무엇으로 기억되는지. 나에게 여름밤은 '18살 수험생 시절 독서실 옥상'으로 남아있다.

 

'하면 된다'. 우리가 다녔던 독서실의 이름이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도 유치한 이름이지만 왜인지 그때는 '하면 된다'독서실에 다니는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만은’ 정말로

'하면'은 '될'줄 알았었다.


깜빡깜빡.

나의 독서실 개인 스탠드 불이 깜빡 깜빡이는 것은 '내가 왔어. 어서 나와'라는 신호. 그 당시 공부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야심 찬 다짐으로 휴대폰을 엄마에게 자진  반납하였던 나에게 우리 학교보다 늦은 시간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독서실로 오는 남자친구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깜빡깜빡 스탠드 그리고 걸 수는 있고 받을 수는 없는 공중전화뿐이었다. 남학생 층과 여학생 층이 분리되어 있어서 나를 직접 부르지 못하던 그가 생각해 낸 이 방법은 입실하며 비밀번호를 누르면 점등이 되고, 퇴실할 때 비밀번호를 누르면 소등이 되는 독서실 출석 시스템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가 문 밖에서 내 자리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또 누르면

깜 빡

하며(쿠쿠야)

누르고, 누르고, 누르고 또다시 누르면

깜 빡 깜 빡

하며(나야 나, 어서 나와)

 

그는 그렇게 그의 비밀번호가 아닌 나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가 눌렀던 나의 비밀번호의 횟수는 몇 번쯤 될까. 하루에 네 번씩만 눌렀어도 천 번이 훌쩍 넘는데. 나는 지금 나의 독서실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는 내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자리에 없을 때에도 그는 그렇게 문 밖에서 나의 비밀번호를 누르며 내 발자국 소리를 기다렸을 것이다. 오지 않는 나의 발소리를 들으며 설레었을 그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지금 생각하니 고맙다. 정말.

 

독서실 개인 신발장은 우리의 우체통 역할을 담당했다. 신발장을 안의 실내화 위에 어떤 날은 삼각커피우유가 있을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가나 초콜릿이, 비가 오는 날은 작은 우산이 놓여있을 때도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했던 어느 날에는 신발장을 열어보니 쪽지 하나가 올려져 있었고 그 짧은 쪽지는 기어코 나를 울려버렸다.


대학생이 되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게. 꼭.

그는 모를 것이다. 그 쪽지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공부를 하며 고개를 들고 볼 때마다 나는 이미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였었다는 것을.

대학생이 되면 나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그와의 사랑은 대학생이 되던 그 해의 늦여름밤에 끝이 났다.



다시, 18살의 여름밤으로 돌아와서.

 

깜빡깜빡

그날도 나를 부르는 그의 깜빡임에 밖으로 나갔는데 그날따라 독서실 분위기가 어딘가 들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날 밤에 백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별들의 쇼 ‘유성쇼!’가 있다는 뉴스 예보가 있었고,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수백 개의 별똥별이 떨어질 것이라는 추측들로 가득했다.

"우리 같이 소원 빌자!" 하고 잔뜩 신이 나서 독서실 옥상으로 삼각커피우유를 사들고 18살의 우리들은 뛰어 올라갔다.

처음에는 그와 나, 내 친구와 그의 친구 이렇게 넷 뿐이었는데 9시가 넘어가자 독서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옥상으로 모였다. 처음에는 서서 하늘을 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명 두 명 콘크리트 옥상 바닥에 눕게 되었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떨어지는 별들을 보며 우리는, 우리들은

밑도 없고 끝도 없고 결론도 없는 희망 만을 이야기했었더랬다.

 

우리들 이야기의 대부분은 '나중에 우리, 스무 살이 되면'으로 시작됐다.

내 친구와는

“은지야, 나중에 우리 스무 살 되면 츄리닝 입고 머리 질끈 묶고 치킨집에서 맥주 마시자!”

“쿠쿠야, 나중에 우리 스무 살 되면 짧은 치마에 높은 힐 신고 화장도 머리도 예쁘게 하고 고등학교 선생님들 찾아가자!”라는 식의 이야기를.

그와는

"나중에, 우리 스무 살 되면 면허부터 따서 차 가지고 드라이브 다니자. 나 운동신경 엄청 좋은 것 알지? 운전면허 따윈 지금 따라도 딸 수 있어!"

"에이,  운동신경이랑 운전면허가 무슨 상관이 있니 바보야."

"진짜야! 나 체력장도 특급이고 잔머리도 엄청 좋은 거 알잖아 너도. 근데, 나중에 말이야. 지금부터라도 내가 공부 열심히 해서 너보다 좋은 대학 가면. 너 되게 좋아하겠지.

그치? 나, 그래서 너보다 좋은 대학 꼭 가려고. 갈 거야 나. 나 믿지? 그러니까 스무 살 되자마자 가고 싶은 곳 리스트나 쫙 뽑아 놓으라구!" 라는 이야기를.

 

누군가의 휴대폰 MP3에서는 이승기의 누난 내 여자니까 가 흘러나오고, 별이 우수수 떨어지고, 바람이 산들대던

여름밤.

 

몇몇은 담배를 피우며 흥얼흥얼 ‘누난 내 여자니까, 누난 내 여 자 니까 - 아‘ 를 따라 불렀던 여름밤.

오래도록 고시를 준비하던 고시생 오빠는 하늘을 보며 간절히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무엇을 빌고 또 빌었던 여름밤.

한 때 수유리를 주름잡으며 조직에 몸 담았었지만 이제 '하면 된다'라는 문장은 몸에서는 깨끗하게 지우고, 학생들의 꿈 위에 쓰기로 맹세하셨다던 '하면 된다 독서실' 주인아저씨는

원. 투. 원. 투  쨉. 쨉. 니킥. 하이킥을 허공에 날리며 스텝을 밟으시던 ‘하면 된다 독서실’ 옥상에서의 여름밤.

 

그 여름밤에 내가 별똥별을 보며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별똥별을 보았긴 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진 것은 신기루 같은 희망 밖에 없던 그 여름밤의 내가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거의 모두 해 본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지금의 나보다 감히 행복했었다는 것 그것뿐이다.


'하면 된다' 독서실은  우리가 모두 그 독서실을 졸업하고 난 후 1년이 채 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내가 스무 살이 되고 몇 해 뒤, 약속 시간에 늦어 택시를 탄 내 친구는 택시 운전기사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시며 목적지를 묻는 '하면 된다'독서실 아저씨를 보았다고 했다. 내 친구는 아저씨에게 무엇 때문인지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고도 말했다.

 

'하면 된다'를 말하던 독서실 아저씨는 택시 운전을 하시고,

‘짧은 치마와 하이힐’을 말하던 내 친구는 야근과 실적의 압박에 휘청이고,

‘나중에 우리 스무 살이 되면'을 말하던 나는 지금, 쌍둥이 두 아이의 엉덩이 발진과 부족한 모유량을 염려하는데 하루를 온전히 보낸다.

사범대학에 다니며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하면 된다'아저씨의 하나뿐인 자랑이었던 곱디고왔던 첫째 딸 ‘된다 언니‘는, 선생님이 되었을까.

 


비는 자꾸만 내린다. 알 수 없는 고기압 때문이란다.

지표로 측정할 수 있는 고기압도 때론 알 수가 없는데, 사람의 마음은 오죽하려나.

잠든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깨어있는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 해 여름이 내 발치에서 머뭇거린다.


지금의 나는 18살의 나를 그리워하기엔 너무 가진 것이 많고, 18살의 추억을 그리워하기엔 해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세상엔 하면 되는 일보다 하고 싶지만 어림없는 일들이 대부분인 것을 안다. 희망은 더러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잊고 싶지 않지만 잊혀 가는 것들과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기억되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상 없는 그리움이 속상한 여름,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동네 친구 오레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