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와 결혼
요즘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 안 하는 비혼족이나, 골드 미스 혹은 미스터들이 계신데 혼기를 앞둔 자녀를 가진 부모님이라면 아마 속이 뒤집어지실 겁니다. 그런 부모님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1822-1890)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클래식 팬들의 사랑을 받는 곡입니다. 유명한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이자이(1858-1931)의 결혼을 축하하며 1886 년에 작곡되어 결혼식 당일, 신부에게 배달되었고, 이자이는 결혼식 피로연에서 이 곡을 자신의 처제와 함께 급히 연습해 연주함으로 거장의 호의를 보답했습니다. 이 곡은 이후 40여 년에 걸쳐 이자이의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전 세계에서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연주되었고, 바이올린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는 필수로 공부해야 하는 레퍼토리 리스트에 끼게 됐습니다.
세자르 프랑크
정작 이자이 부부에게 이런 아름다운 결혼 선물을 안겨준 프랑크가 정작 자신의 결혼까지는 몇 개의 험난한 고비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벨기에령이었던 리에지에서 태어난 프랑크는, 음악적인 재질이 있는 자식을 가진 많은 부모님들이 원하는 영재 교육을 받으며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남동생과 함께, 리에지 음악원을 걸쳐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을 했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이론이며 다른 과목들을 듣고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들을 파리 국립음악원을 중퇴하게 하고,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 연주자로 성공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벨기에는 당시 음악을 특별히 후원할 만한 후원자가 없었고 경제적으로 쪼들리기 시작하자 프랑크는 다시 파리로 옮겨 살롱에서 연주를 하며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20세가 넘은 프랑크는 어릴 적 알던 유진이란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문제는 유진의 부모님이 아주 높은 귀족이 아니시고, 극단에 소속된 희극인(지금으로 치면 방송사 공채 개그맨 정도?)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열렬히 반대하고, 어머님은 싸움을 말리고, 온 집안이 초토화됐겠지요?
게다가 프랑스에는 만 25세가 되기 전에는 부모의 허락이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는 법이 있었답니다. 아버지가 법을 들먹이며 결혼을 반대하겠다고 선언하자, 만 24세였던 프랑크는 집을 나와 여자 친구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은 프랑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만 25세가 되자마자, 프랑크는 유진과 결혼하겠노라 아버지에게 통보하고, 1848년 2월 22일에 결혼식을 잡았습니다. 아이로니 하게도 1848년은 프랑스 대혁명까지는 아니어도 유럽이 폭동으로 난리인 해였고, 특히 파리는 2월 달에 시위와 폭동이 잦아, 결혼식에 참석하려면 폭도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높은 담벼락을 올라가야 했다니, 참 결혼 어렵지요?
이 결혼은 프랑크를 피아니스트가 아닌 오르가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게 합니다. 정규적인 수입이 필요했던 프랑크는 처음에 노트르담 성당의 부수석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하며, 새로운 오르간이 만들어지는 것과 발달되는 과정을 보며, 오르가니스트의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는 파리의 바실리카 교회의 수석 오르가니스트로 평생을 재직하고, 많은 오르간 곡들 써냅니다.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건반악기와 오르간을 위한 작품들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생과 스승으로 파리 음악원에서 만난 유진 이자이의 결혼을 위해 쓴 바이올린 소나타가 그의 어떤 곡들보다 유명해짐으로, 프랑크는 그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63세의 노교수님이 28살의 이제 막 시작하는 학생에게 동료로, 스승으로 가르쳐주신 결혼의 맛은 어떤 것일까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라 뭐 그런 것 아니었을까요? 이자이는 이 곡을 받아 연주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참고로 프랑크는 자신의 부인과 백년해로했는데요, 이자이는 이 결혼 선물을 받은 부인과 38년을 살다가 사모님이 돌아가시자마자 44년 연하의 자신의 학생과 결혼을 해 함께 하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니, 노교수님의 조언은, 결혼이 아주 좋았더라, 아닐까요?
38년 결혼생활 후 44년 연하의 아가씨와 결혼하신 이자이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