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말벌과 함께 노는 법

벌에 쏘이지 않는 법에 대해

요 근래 말벌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사실 숲길을 걸어도 웬만해선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말벌인데, 요즘 집 근처 산책로, 특히 한내천 옆의 길가에서 쉬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말벌을 만나게 되더군요. 좀 지나치게 개체수가 많다는 느낌이어서, 시에 민원을 제기하고 나니, 오늘은 말벌 이야기가 끌리네요.


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꿀벌이 일등, 말벌이 이등, 땅벌이 삼등 정도로 유명합니다. 셋 모두 집단생활을 하는 벌들이고, 이외에도 개체로 땅에 집을 짓고 거기에 알을 낳아키우는 벌들도 꽤 많죠. 어떤 벌들은, 이게 벌인가 파리인가 헷갈리는 아이들도 꽤 있습니다. 파리도 그렇고요. 아무튼 벌의 세계도 참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벌들 이야기라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오늘은 말벌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벌에 대해서 말할 때 주로 듣는 이야기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벌을 만나면 꼼짝 말아야 한다” 등이죠.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거의 99% 그렇게 대답하더군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우선 꿀벌이 여러분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다면, 사실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앞에서 터키명상댄스를 추지 않는 이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죠. 꿀벌들은 당신 옆에서 유유히 날아다니며 꽃가루 모으기에 집중해 있을 것입니다. 사실, 꿀벌이 이유 없이 사람을 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뱅글뱅글 돌며 명상하는 터키명상댄스

그저 꿀벌 옆에서 걸어 다닌다는 이유로 쏘이지는 않으니 걱정 마세요. 당신이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숨을 쉰다고 하더라도, 꿀벌이 도망가면 도망갔지 당신을 쏘지는 않습니다. 단, 손으로 잡으려고 하거나 꿀벌 옆에서 손을 휘두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벌에게 ’ 손 휘두르기는 = 나를 공격한다 ‘입니다.


 그렇다면, 말벌은 어떨까요? 아시다시피, 꿀벌이 초식성인데 반해, 말벌은 육식성 벌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죠.


초식성인 소가 주변의 풀을 뜯어먹으며 평화롭게 돌아다니는 것처럼, 꿀벌들도 평화를 사랑하는 곤충입니다. 하지만, 사자나 호랑이가 사냥영역을 가지고 있고, 영역 안에 누군가가 들어온다면 싸움이 일어나듯이, 말벌도 그렇습니다.

참나무 수액을 파먹는 장수말벌, 장수말벌은 나무의 뿌리에 집을 짓고 삽니다

만약 당신이 말벌의 사냥터 근처에 서있다면, 말벌은 당신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경고하고, 그래도 가지 않는다면 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벌은 한 번에 열 번 이상 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천 번도 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보통은 3~4번 정도 쏘이는 것 같습니다. 한 번에 말이죠. 이렇듯 말벌의 공격능력은 살면서 단 한 번만 쏠 수 있는 꿀벌과는 전혀 다릅니다. 거기에다가, 한 번에 배출되는 독의 양도, 꿀벌의 수십 배 이상이어서, 그 통증도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검색해 보면, 마치 뜨거운 발톱으로 계속 쑤셔대는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네, 맞습니다. 저는 아직 말벌에 쏘여본 적이 없습니다. 벌에게 쏘인 경험이라곤, 땅벌집을 파내다가 세방 쏘인 것이 전부랍니다. 늘 조심하며 다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벌이 주변에 나타났을 경우,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을까요?


우선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자세를 낮추는 것입니다. 자세를 낮춘 후에 두 손을 무릎에 가져가서 자세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자세를 낮춘 후에는, 천천히 그 자리를 떠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오 미터에서 십 미터 정도 움직이면 말벌은 떠납니다. 그전까지는 경고비행을 하며 사람의 어깨정도 높이를 배회하죠.


참고로, 말벌이 일반적인 비행을 할 때에는 별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부웅~”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일부러 경고를 하기 위해 들으라고 내는 소리입니다. 걸리적거리니 가라는 소리죠. 만약, 그렇게 해도 가지 않는다면 본격적으로 공격직전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딱딱딱”커다란 턱으로 소리를 내며 다리를 확 벌린 채 한자리에서 정지비행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거기까지 경험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 부웅 소리가 나면 바로 자리를 떠서 거기까지 간 일이 없죠.

새집 아래에 지어진 말벌집

하지만, 말벌집 근처에서 얼쩡거리거나, 실수로 말벌집을 건드렸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럴 경우, 말벌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하는데, 보통 10~15마리가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말하자면 소대병력이죠. 이 정도 숫자면, 꿀벌 몇만 마리가 사는 꿀벌집 하나 정도 깔끔하게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장수말벌의 경우가 그렇고, 일반적인 말벌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상당히 위협적이죠.


이렇게 본격적인 말벌의 공격이 시작되었다면, 무조건 뛰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줄행랑, 그렇게 한 이십 미터만 떨어져도 말벌들은 쫓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넘어지지 않고 그렇게 빨리 뛸 자신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는, 그냥 천천히 걷거나, 두 손으로 목을 가리고 자세를 낮춰서 아주 조금씩 움직이며 이십 미터 정도를 움직여야 합니다. 끔찍한 일이죠. 하지만, 그게 최선입니다. 만약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끝장이죠. 말벌을 포함한 모든 야생동물들은, 공격대상이 넘어지기만을 기다렸다가 제대로 달려들기 시작하거든요.


좀 무섭죠?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거의 없습니다. 보통은 벌초하다가 땅에 있는 장수말벌집을 건드려서 화를 당하곤 하죠. 참고로, 장수말벌은 땅에, 나무의 뿌리 속에 집 짓기를 좋아합니다. 장수말벌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말벌들은 나뭇가지에 펄프재질의 커다란 집을 짓고 산답니다.


자, 오늘은 말벌에 대해서 조금 수다를 떨어봤습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말벌을 만났다면, 무조건 자세를 낮추고, 팔은 절대로 흔들지 않으며, 천천히 자리를 뜬다.


2. 말벌이 내 몸에 앉았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한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천천히 움직이면 나를 떠나느게 말벌이다.


3.  말벌이 적극적인 공격행위를 한다면 줄행랑이 최고다. 불가능하다면, 목을 최대한 감싼 체 천천히 자리를 피해야 한다. 목을 감싸는 이유는, 쏘이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절대 넘어지면 안 된다.


4.  말벌에 쏘였다면, 지체 없이 119를 부르고 병원에 가서 항히스타민주사를 맞아야 한다. 주사만 맞으면 보통 삼십 분 안에 진정된다. 그전까지는 극한의 고통이다.


자, 이 정도가 말벌에 쏘이지 않고 자연에서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 외에도 두꺼운 옷을 입거나 헬맷을 쓰면 괜찮을 수 있겠지만, 조심할 것은, 말벌이 귀신같이 그 틈을 찾아서 쏜다는 것입니다. 우주복이 아니라면 말벌을 막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죠.

동료에게 다가가는 장수말벌, 보통 몇몇이 멀리 떨어져서 다니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팁.


말벌이나 꿀벌, 개미 등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들은 페로몬으로 소통을 하는데, 이를 통해 먹이가 어디에 있는지, 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서로에게 알리고, 만약 내 친구가 공격당하거나 갇혀있다면, 구하러 몰려가죠. 그러니, 벌을 가지고 놀거나, 싸우거나, 가두는 일은 엄청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해야 합니다.


사회적 곤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조직적으로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만약 말벌, 특히 장수말벌을 죽이고 싶다면. 최고의 무기는 배드민턴채입니다. 파리채로는 죽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배드민턴채로 쳐서 땅에 떨어뜨린 후에 발로 짓밟아야 간신이 부서뜨릴 수 있을 정도로 장수말벌의 갑옷은 단단합니다. 특히 머리가 그렇죠.


또한, 약을 친다고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농약을 뿌려도 금세 다시 옵니다. 그러니, 약으로 말벌을 쫓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암튼, 다들 말벌 조심하세요. ~ ^^





작가의 이전글 소심한 뒷북치기, 후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