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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Dec 26. 2023

은행원의 퇴근일지 26. 나나나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이승연님의 아버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딸이 마음 아파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전복이 질겨서 못 먹겠다 말하는 아버지.

눈물을 멈추고 전복에 칼질을 하는 딸.


모름지기 사람이란 거의 다

자기 아픈 것이 가장 우선이지


그래도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는 척 해야 하는데


때론 이렇게 사회화를 등지고

오직 나만 보는 경우도 있긴 하다.


오늘 만난 분도 그랬다.


기초생활 수급자이며

중증 질환을 앓고 계신다는

한 할아버님이 오셨다.


수급자를 위한 적금을 하신다길래

수급자 증빙서류를 가져와 주십사 했고


통장 내역으로, 혹은 복지카드로 안 되냐며

한참을 실갱이하다 주민센터로 향하셨다.


다시 돌아오신 할아버님은

9%짜리 특판 적금을 하신다 했는데


그것은 기초생활 수급 증빙이 아닌,

기초연금 수급 증빙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그때부터 고성이 시작되었다.


감당하지 못할 데시벨로

다 확인한 걸 또 확인하려 한다며

소리를 지르시는 할아버님께


다른 고객님들을 위해

소리만 낮춰주시면 좋겠다 했지만


그럴수록 소리는 더 커질 뿐이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지

알아봐 드린다고도 했건만.


본사에 수 차례 전화를 하고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주민센터에 양해를 구하고

비대면으로 서류를 발급하기까지

30분 넘게 고성이 지속되었다.


살아오며 이런 방식이

할아버님껜 가장 편리하셨을까.


무튼 일은 해결되었으니 

본인에겐 참 되신 일이다. 


하지만, 그때 한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지른 소리에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소음도 공해로 분류되는 건

그만큼 타격을 주기 때문이니까.


일이 잘 마무리되고

마음이 누그러진 할아버님은


본인은 귀도 잘 안들리고

몸도 아프고 돈도 별로 없으니

참 안된 노릇이라며 한탄하셨다.


가만히 들을 뿐,

그 말씀에 선뜻 동조는 하지 못했다.


내 머리와 귀가 아픈 것이나

하루에 힘든 기억이 남은 것이


제3자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유롭고 헐거운 것 같지만

힘든 일도 꽤나 많은 연말이다.


내년엔 더 좋은 사람,

단단한 사람이 되라는

신의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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