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Aug 08. 2020

누군가에겐 식용견, 누군가에겐 가족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일전에 썼던 글에서, 유기견 입양을 결심했던 이유로 ‘구매 행위’에 대한 거부감을 언급했다.‘카드 가능, 현금 할인’.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느 날 펫샵에 무심하게 적힌 가격 흥정 문구를 보고, ‘동물 매매’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그 고민은 확장되어, ‘나는 왜 개를 키우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고 또 던졌다.      

TV동물농장 출처


표면적 이유는 ‘개를 좋아해서’였다. 자연스레 연상됐던 것은 선호하던 품종견의 종류들이었다. 유기견 입양을 결심하고, 내 ‘최애’ 품종견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솔직히 아쉬웠다. 그런데 그 아쉬움은 반려견을 입양하기 위해 센터를 한 곳, 한 곳 다닐 때마다 부끄러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과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미비한 동물 복지 시스템 하에서 기본적인 동물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한, 특정 품종견을 선호하는 것 자체가 개에 대한 ‘대상화’나 마찬가지였다. 특정 품종견 선호는 언제든지 펫샵에 대한 관심 및 합리화, 실질적인 소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아지 공장의 실태를 알고 있지만, 유행하는 특정 품종견을 펫샵에서 데려오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최근 삼순이의 산책 모습


“무슨 종이예요?”


삼순이와 산책을 나가면 자주 듣는 질문이다. 매번 말문이 막힌다. “음... 믹스견인데, 제가 입양을 해서 정확히 어떤 혼종인지는 몰라요”.      


반응은 제각각이다. 좋은 일을 했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느닷없이 본인 개가 무슨 종이고 어떤 혈통을 가졌는지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항상 같다. ‘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입양 초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삼순이를 자랑하려고 ‘개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삼순이 사진을 널리 노출하기 위해, 여러 해쉬태그를 붙이다가, 입양 당시 수의사가 삼순이를 지칭할 때 언급한 ‘진도믹스’가 생각났다. #진도믹스를 검색하니, 삼순이와 닮은 수많은 진도 믹스, 진돗개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진도’들의 삶은 극과 극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입양이 되어 고급 아파트 생활을 하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의 사진에는 시뻘건 글씨로 ‘곧 안락사 진행’이라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그 밑엔, 입양이 힘들다면 단 한, 두 달이라도 이 아이에게 작은 공간 하나라도 내어줄 수 없냐는 봉사자의 절규가 적혀있다. 또 다른 진도믹스는 ‘육견협회’의 개고기 합법화 시위에 끌려가 철장 안에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동물권행동 카라 출처

  

가족을 돈 주고 사는 게 싫어서 유기견 입양을 선택했고, 보호소에서 입양 후순위로 밀릴 것 같던 삼순이를 가족으로 맞이한 게 전부다. 어쩌다 데려온 삼순이 때문에, 불편한 사실을 자꾸만 마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렇게라도 실상을 공유하는 것뿐이다. 나는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집에 온 유기견, 똥을 숨겼던 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