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믹스 유기견 반려 일기
“혜원아 일어나봐, 이 녀석이 잠을 안 자네. 좀 일어나봐!”
아빠의 짜증 섞인 목소리. 간신히 눈을 떠보니 시간은 아직 새벽 네 시. 잠에 들 때까지만 해도 옆에서 얌전히 있던 삼순이가 부모님을 깨운 모양이었다. 방으로 데리고 와, 한참을 쓰다듬고 안아줘도 소용없었다. 빨리 자고 싶었다. 얘가 왜 이러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평소보다 사료를 조금 먹었던 것 같다. 새벽 네 시 반. 특식을 만들었다. 계란을 삶아 노른자만 걸러내 사료에 비벼줬다. 삼순이는 한 그릇을 금세 비우곤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잠깐일 것 같았던 삼순이의 잠투정은 두 달간 계속됐다. 처음엔 낑낑대다가 아무도 깨지 않으면 점점 크게 짖는 ‘크레센도’ 형식의 괴롭힘이었다. 몸집이 큰 만큼 짖음은 어마어마했다. 다 같이 못 잘 바에야, 한 명만 고생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돌아가며 새벽 보초를 섰다. 어쩔 땐 극단적으로 하루씩 돌아가기도 했고, 피로가 누적된 날엔 두, 세시간씩 깨서 삼순이를 돌봤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보초 담당자’가 잠시라도 눈을 감으면 삼순이는 바로 짖어댔다.
삼순이와의 지난 4년은 파란만장했다. 실외배변만 하는 ‘진도믹스’ 삼순이는 매일 하루 두 번 산책한다. 나와 남동생이 번갈아 가며 하는데, 유독 내게 작은 시비부터, 언어폭력까지 다양한 일들이 발생했다. 늦은 밤, 여성으로서 ‘조신하지’ 못하게, 그것도 토종견을 데리고 나온 게 잘못이었다. “XX년이 밤늦게 돌아다니고, 세상 살기 좋다! 옆에 개는 잡아먹기 좋게 생겼다”. 토씨 하나 잊을 수 없던, 어느 취객의 시비. 그간의 산책길이 안전치 못했던 이유를 정확히 설명했다. 별일을 다 겪어 보니, 작은 시비에는 덤덤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스스로 꽤 단단한 보호자가 되었다고 자부했다. 이런 내게 느닷없이 찾아온 삼순이의 잠투정은 보호자로서의 자존감을 흔들기 충분했다. 나는 반려견 잠투정 하나 제어하지 못하는 무능한 보호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좋은 보호자’여야 했다. 강아지 행동 교정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별로인’ 보호자가 되기 싫었다. 삼순이의 나쁜 잠버릇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행동 교정에 관한 책도 읽어 보고, 유명한 훈련사의 유튜브 채널을 보며 온갖 방법을 다 따라 했다. 그러나 삼순이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잠을 못 자니,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낮에는 조느라 공부도 잘 못 했고, 몸도 여기저기 쑤셨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님이었다. 삼순이를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중요해, 얘가 중요해”.
삼순이가 기적처럼 다시 밤에 잠을 자게 된 건,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였다. 우리 가족은 자연스레 외부활동이 줄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배변만 마치고 끝내던 아침 산책 시간을 조금 늘려, 삼순이와 산에 자주 갔다. 좋아하는 터그 놀이를 좀 더 길게 해줬고, 더 많이 쳐다보고 쓰다듬어 준 것. 그게 전부였다. 돌이켜보면 아침 산책 후 가족 모두가 외출하면 삼순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의무처럼 하던 하루 두 번 산책이, 삼순이의 외로움을 해소할 것이란 내 생각은 착각이었다.
삼순이의 ‘잠투정’ 사건은 보호자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어쩌면 나는 토종견을 입양하고 마주하는 갖가지 차별에 대한 보상으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던 것일지 모른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데에 있어서 ‘교만’은 치명적이었다. 돌봄에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의 원인을 찾는 데에 긴 시간이 걸렸다. ‘잠투정’ 사건이 내게 제시한 길은, 끊임없이 부족한 보호자로 남는 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