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Sep 06. 2020

육식을 줄이자는 주장, 공허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뉴질랜드에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소 수천 마리를 수출하기 위해 태풍 속에 항해하던 선박이 전복된 것이다. 수천 마리의 소는 물론, 배에 타고 있던 선원 41명이 실종됐으며 1명은 숨진 채로 발견됐다.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이후의 모습이 그려지는가?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해경이 투입됐을 것이며, 사망한 이들을 향해 추모 여론이 형성됐을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귀중하므로, 이 모든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여기서 더 할 게 있냐고 반문하는 한국 사회의 통상적 인식에 있다.      

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된 소


뉴질랜드의 방식은 남달랐다. 해당 사건을 단순한 인재를 넘어, 동물이 무고하게 사망한 사건으로 조명한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은 뉴질랜드 내에서 가축 수출 무역이 동물에 미치는 위험성을 인지하게 했고, 동물 수출 전면 금지를 요구한 동물권보호단체 세이프(SAFE)의 주장은 너무 쉽게 받아들여졌다. 전면 금지는 아니었으나, 뉴질랜드 정부는 당분간 살아있는 가축 수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관련 기사를 읽다가 머릿속을 스쳐 간 장면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여러 동물권 단체들의 투쟁이었다. 개 식용 철폐, 더 나아가 육식을 멈추자고 하는 이들의 운동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권은 여전히 ‘마이너’ 영역이라 치부해버리는 다수의 무관심이 강세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_뉴스1

기록적인 장마가 이어지던 8월, 사진 한 장이 이슈가 됐다. 전남 구례군에서 출몰한 소 떼의 모습이었다. 사찰로, 지붕 위로 모습을 드러낸 소 떼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도망친 생명체였다. 다양한 플랫폼과 SNS에 소떼의 사진이 널리 공유되었다. ‘안타깝게 죽은 소들이 가엾다, 이들이 꼭 구출되어 살아남길 바란다’. 많은 이들의 염원처럼 발견된 소떼는 구출될 수 있었다. 구급대원 수십 명의 인력, 크레인 등의 중장비까지 동원되었다. 그런데, 소들이 돌아갈 곳은 농장이었다. 구조됨으로써 죽을 날에 더 가까워진 셈이다. 도축장에 제값에 팔리기 위해, 소들은 분주히 구출되고 있었다. 육식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이들도 생겨났지만, 언제나 그랬듯 특별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은 일어나야 했다. 이전까지 볼 수 없던, 육식을 줄이자는 레디컬한 집단 운동이 발생해야 했다. 이에 겁을 먹은 정부가 움직여, 뉴질랜드처럼 단기적인 대책이라도 제시했어야 했다. 단지 소들이 불쌍해서, 동물의 생명권을 재인식해서가 아니다. 축사와 도살장에 갇혀있던 소를 잠시나마 해방시켰던 기록적인 장마. 이는 단순한 폭우가 아닌 기후재난이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과도한 육식에서 비롯된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16%가 축산업에서 배출되며, 이로 인해 축산업은 기후위기의 중요 원인으로 꼽힌 지 오래다. 소 떼의 출몰은 생태계 파괴의 위기이자 경고였다.      



육식을 멈추자는 공허한 주장은 하기 싫다. 모두가 비건이 되어야만 기후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사고의 전환이 있을 때, 비로소 행동의 변화도 가능하다. 우리가 마주한 지금의 위기가 동물의 생명이 멸시되는 한계와 무관치 않다는 것을 직면하는 것이 먼저다. 동물권은 단순히 동물 복지 차원의 시혜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제발, 알아차리자는 거다.    


  

육식을 줄이기에 앞서 할 수 있는 일. 개 식용을 철폐하는 것이다. 이는 동물권 개념이 낯선 우리 사회에 적합한, 동물권 재인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가장 친밀한 동물인 개가 더 이상 식용견으로 취급받지 않고 이들의 권리가 개선될 때, 비로소 다른 동물의 동물권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일반적 육식’을 줄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개 식용이 일부에게 여전히 ‘식 취향’으로 인정받는 한, 더 나은 논의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즉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그 자체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기록적인 폭우를 통해, 이제야 기후위기가 피부로 와 닿는다. 증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병의 위중함을 뜻한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은 더 이상 미뤄선 안 될, 필수 과제가 되어버렸다. 동물권의 향상은 지속 가능한 인간 사회를 위한 진일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